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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읽는 글] 독일 교육에 눈 시울이 붉어진 이유

내가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한국과는 너무 다른 독일 사회에 적응하면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때가 생각납니다. 큰아이가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행사가 열렸어요. 학교는 일주일 내내 수업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온통 아프리카 열기에 빠져 지냈어요. 아프리카 노래를 부르고, 아프리카 연극을 하고, 아프리카 춤을 배우며 예술 작품을 흉내 내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건, 어떤 부모도 자신의 아이가 공부는 뒷전인 채 이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즐겁게 하나 되어 움직이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모습이 제게는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독일 교사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안 시키는 거야!’라며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 학생들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기 위해 책상을 지키고 있는 동안 독일의 아이들은 가난한 이웃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르더군요.

세 살짜리 큰아이의 손을 잡고 독일에 온 지 13년째입니다. 큰아이는 김나지움(한국의 중ㆍ고등 과정) 12학년, 작은아이는 5학년이 되었지요. 이곳에서 한국과는 너무 다른 교육 방식을 겪으면서 이제는 어렴풋해진 제 학교생활도 떠올랐습니다. 학창 시절 제가 본 세계는 좁은 교실 벽과 녹색 칠판뿐이었죠. 학교에선 지금까지 한 번도 써먹지 못한 복잡한 수학 공식과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려운 영어 단어만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정작 살면서 필요한 것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수영을 못하게 태어났지만 교육을 통해 물개처럼 수영도 할 수 있고, 말처럼 빨리 달릴 수는 없지만 자전거를 배워 속도를 내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과정은 가장 단기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교육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독일인은 “수영할 수 있니?” 혹은 “자전거 탈 수 있어?”라고 묻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잘하기 때문이지요. 수영은 학교에서 이미 인명 구조 요원 자격증까지 받고 나오기 때문에 전 국민이 수준급의 수영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전거도 거의 모든 사람이 탈 정도로 학교에서 완벽하게 배웁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공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독일 도심의 오전은 날마다 학생들로 북적거립니다. 거리 곳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공책을 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있는 아이들, 설문 조사를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쑥스럽게 인터뷰 하는 학생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학교 부근에서도 수영장으로 이동하거나 박물관으로 견학 가는 아이들, 음악 선생님과 음악회에 가는 아이를 볼 수 있지요. 공부는 교실에 앉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독일에선 배우고, 토론하고, 비평하고, 함께 사는 법도 학교에서 배우지요. 혼자 하는 공부보다는 친구와 함께 어울려 배우는 수업이 많습니다. 꼴찌와 1등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발표해서 같은 점수를 받는데, 1등은 친구를 위해 조금 양보하고, 꼴찌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합니다. 경쟁이 없기 때문에 깊이 있는 수업과 전인교육이 가능한 것이지요. 입시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전략은 오로지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몸소 보여주는 나라, 학원이나 고액 과외 없이도 얼마든지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나라. 제가 13년 동안 아이들을 통해 경험한 독일의 교육법은 한국의 학부모와 선생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박성숙(<독일교육 이야기>저자) 캘리그래피 강병인

담당 정세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