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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이즈음 그의 책을 손에 들게 된 건 행운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과자 봉지처럼 타성적으로 흘러가던 삶. 내 의지대로 느끼고, 생각하며, 열렬하고 정직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책은 그러나 늦은 것이 아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듯 인문학의 숲을 여여하게 산책한 어느 철학자에게 지금, 우리에게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들어보았다.


“베개로 써도 손색없겠다”는 기자의 말에 강신주 씨는 자신이 쓴 <철학 vs 철학>을 베고 누웠다. 지난해 출간한 이 책은 철학서가 쉽게 넘을 수 없다는 ‘1만 권의 판매고’를 가뿐히 넘었다.

하루하루를 생활의 달인처럼 반복적으로,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낸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하던 날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달라고 청하셨다. 순간 아득해졌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가 책 읽는 모습을 뵌 적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풍경은 떠오르지 않았다. 딸 셋을 모두 4년제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아버지는 한 명당 16년씩 계산해도 48년치 교과서와 참고서, 소설책과 시집을 댄 셈이다. 그런데 정작 당신을 위한 책은 단 한 권도 갖지 못했다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을 읽고 싶다던 아버지의 말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산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는 거죠. 억지로라도 길을 뚫고 가보면 저 아래에 마을이 보여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고 철학이죠. 아버님이 책을 선물해 달라고 하신 건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다는 뜻일 거예요.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 거죠. 인문학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196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철학자 강신주 씨.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386세대’. 박사 학위를 마친 이듬해 그는 6.29 민주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군대에 갔다. 그리고 3년 뒤,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가난한 자는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였고,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실은 것처럼 사람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현실과의 거리 두기였다면 군대에 다녀오고 난 후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그 위압감은 상당했다. 그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행을 하듯 철학서를 읽어나갔다. 역사가 무엇이고,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탐독하기 위해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그랬더니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동네가 얼마나 누추하고 지저분했는지, 나는 얼마나 찌질하게 살아왔는지 고개를 돌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철학은 낯설고 불편한 것
솔직히 철학서나 인문서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삶과 동떨어진 얘기, 온갖 이해할 수 없는 개념어로 지식을 자랑하는 학자들의 전유물, 우리 사회에서 철학은 그런 용도로 쓰여진다. 대학에서 철학을 그렇게 가르친 탓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학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싫은 소리 하는 부모처럼 철학은 인간에게 ‘왜 비겁하게 사냐고, 앵무새처럼 남이 떠드는 대로 흉내만 내고 사냐’고 질책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온전히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산 적이 있나. 사회정의를 구현하자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에 귀 기울이며 산 적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에게서 주워들은 말을 내 생각인 것처럼 되새김질하며 살지 않았는지. 남이 끼워준 단추는 언젠가 다시 풀어 채워야 할 날이 온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우리는 철학을 교양으로 받아들이죠. 교양이요, 화장 같은 거.
잘 꾸민 사람은 막 뛰질 못하잖아요. 화장이 날아갈까봐, 옷이 더럽혀질까봐. 교양을 자랑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행동하지 않죠. 하지만 진짜 삶을 살면 남는 것이 있어요.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고요.”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는 김수영 시인
“김수영 시인이 쓴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가 있어요. 시인이 어느 집에 돈을 빌리러 갔는데 꼬맹이가 팽이를 돌리고 있는 거예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쓴 시인데, 저한테는 그 시가 참 슬프게 울렸어요.
우리 삶 하나하나가 팽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내가 팽이면 다른 사람도 팽이잖아요. 혼자 돌면 외롭고 둘이 돌면 안 외로워요. 하지만 붙을 순 없어요. 공통의 중심으로는 못 도는 거죠. 옆에서 봐줄 수는 있지만 누가 건드리면 넘어져요. 그 시를 읽으면서 인문학자들이 저렇구나, 팽이들이구나, 생각했어요. 허용된 자유 안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걸 다 실험해보고 사느냐, 벽까지 달려가서 쿵 하고 부딪혀봤느냐. 그걸 해본 사람은 자유로워요. 그다음은 뭐겠어요. 벽을 응시하고 살든가 아니면 벽 위로 넘어가든가. 넘어가면 위대한 거죠. 하지만 꼭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김수영 시인도 못 넘어요. 부딪힌 채로 벽에 있다고요. 독재자나 권력자에겐 민주주의를 얘기 못 하는데 설렁탕집에 가면 아줌마한테 막 욕해요. 설렁탕에 고기가 적다고. ‘이런 나쁜 년’ 이러면서 막 욕을 하는 거예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는 이유는 그거예요.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 있고, 얼마나 소시민적인지 잘 아는 사람이거든요. 우리도 김수영 시인처럼 벽에 딱 부딪혀 있잖아요? 김수영 시인이 그걸 보게 해준 거라고요. 스스로 팽이가 되어 돌면서 남에게 어떻게 도는지 보여주는 거죠. 그게 시인이고 철학자예요.”

(왼쪽) 철학자 강신주씨의 저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로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히 서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_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개처럼 살지 않는 법
우리는 모두 살아가기 힘든 때가 오면 기댈 곳을 찾는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싶었던 것처럼 나라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워지니 사람들은 인문학을 찾는다. 최근 2~3년 사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온갖 잡지와 신문에서 인문학을 다루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철학서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강신주 씨의 전작을 소개하는 대형부스가 마련돼 있다). 대학원에서 <장자 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오늘까지 철학자 강신주 씨가 외친 건 ‘철학의 대중화’였다. 이즈음 그가 주목을 받는 건 우리나라에 철학자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멋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생각하고 살아낸 대로 써 내려간 그의 사유는 대중이 읽기에도 무리 없을 정도로 쉽고 친근하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철학 vs 철학>까지, 그의 책엔 나무줄기 같은 맥이 있다. 철학과 시가 공존한다는 것.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네그리와 박노해, 바디우와 황지우….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한국의 시와 서양 철학자의 사유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보여주고, 그것이 결국 인간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우쳐준다. 그리하여 시인의 옷을 입고 철학자의 신발을 신은 채 산봉우리를 완주한 듯한 정서적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오른쪽) 부모님 용돈 드리고 가난한 후배들 술 사줄 정도의 돈은 벌고 살지만 그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출근한다. ‘문사철’ 식구들과 함께 쓰는 종로의 사무실. 근사해보이는 저 방은 남의 방!

<철학이 필요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달나라 언어처럼 낯설게 들리는 개념어는 버리고 ‘개처럼 살지 않는 법’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궁금증이 샘 솟는 소제목으로 철학을 이야기 한다. 교양이라는 ‘화장기’를 없애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노력이야말로 철학자의 본분 아닐까. 나는 이 책이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이라는 부제를 단 것을 보고 ‘그래, 점집에 갈 게 아니라 이런 책을 읽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붓펜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 내려간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중국 명대의 유학자 이지(1527~1602)는 매우 중요한 철학자이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솔직한 정신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던 사람이다. (중략) 50세 이전에 한 마리 개처럼 살았다는 이지의 투철한 자기반성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50세 정도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삶이나 그로부터 얻은 학식이나 평판 등을 정당화하는 데 나머지 생을 할애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지는 비범했다. 물론 이것은 그가 50세까지도 인문학적으로 투명한 정신, 즉 동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한 마리의 개처럼 살았다고 토로하는 순간 그는 드디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지 그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개가 짖더라도 그는 이유가 없다면 짖지 않게 된 것이다.’

“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우리가 인생에서 겪어야할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그걸 일시불로 갚느냐, 할부로 갚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요. 일시불로 확 갚으면 나머지 36개월이 자유롭고, 할부로 찔끔찔끔 갚다 보면 늘 허덕이게 되죠. 하지만 일시불로 확 갚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미루고 미루죠. 하지만 그건 갚아야 할 빚이거든요.” 인생에 진 빚을 일시불로 갚을 땐 뭐가 좋으냐는 농담에 그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글쎄요…, 제 경우엔 찌질함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가난한 대학 시절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한 친구와 자주 술을 마셨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친구가 택시비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는 집이 멀고, 돈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돈이 없어 그가 택시비를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머니에 5천 원짜리 두 장이 있었지만 한 장만 꺼내 친구에게 내밀었다. 그는 친구가 떠난 뒤 주머니에 든 5천 원을 만지작 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도 못 되는 돈을 굳이 남긴 건, 불안했기 때문이다. 5천 원을 얻은 대신 친구를 잃었음에도 그 당시엔 그걸 몰랐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내가 참 찌질했었지’ 느낄 뿐이다.

“부모님 계몽 못 시켜요, 아이들 떠들게 놔둬야 해요”
가난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그릇을 깨면 손을 안 다쳤는지 먼저 묻지만 옛날 어른들은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였다. 오래된 가족사진 안에서 아이들이 하나같이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기 때문에 우는 표정을 짓거나 움직였다간 사진을 망친다고 된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제 부모님은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식들한테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부모 세대는 웬만한 일로도 자식을 때렸어요. 제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아버지가 그 노래를 부르는 날은 내가 맞는 날이었어요. 화가 많이 나셨거나 우울할 때 부르시는 노래거든요. 가난이 익숙한 사람들의 삶이란 때로 비참해요. 어쩌겠어요. 그분들은 그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사셨는 데. 그걸 건 드린다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가끔 여행이나 보내 드리고 책 몇 권 스윽 방에 놓아드리는 거죠.”

(왼쪽) 앞도 보고, 옆도 보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인문학자의 본분이다.

화목한 가족이란 식구들이 제각각 자기 소리를 내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은 부모님 방식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방식대로 모두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투덜거리고, 싸우고, 화해하고.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아이를, 부모를 재단하기 시작하면 집 안은 조용해진다. 서로 말이 없어지는 거다. 겉으로 보기엔 부모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 같지만 그런 아이는 자아가 형성되면서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온다. 가족이 우당탕탕 시끄럽게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정직하다는 뜻이다. 각자의 삶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다는 뜻이다.

“4월 초순쯤 여의도 윤중로에 가면 벚꽃이 피잖아요. 벚꽃이 피는 시기가 한 달 정도 될 거예요. 나무 단위로는 한 일주일씩 펴요. 그런데 겨울에는 거길 가도 그게 벚나무인지 모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벚나무라고 불러요. 꽃이 피는 시간, 그게 한 시간이어도 되고, 3년이어도 되는 거 같아요. 그 3년 때문에, 일주일 때문에 1년 내내 벚나무라고 불리는 거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살아가는 건, 그런 시간을 갖는 것. 정직하게 자기를 다 걸어 보여주고 넘어지는 것. ‘아, 행복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살았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죠.”

글 정세영 기자 사진 박우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