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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의 중국기행] 북경의 동쪽, 황제들이 잠들어 있다
자금성 紫禁城이 살아 있는 황제들의 공간이라면, 청동릉 淸東陵은 궁극의 화려함이라 할 만한 그 자줏빛 성에서 살던 황제들이 죽어서 묻힌 곳이다. 황제들의 죽음을 위해 디자인된 이곳에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의 황제들이 비밀스럽게 잠들어 있다.


청나라 황제들의 주검이 묻힌 청동릉. 입구부터 수많은 문을 거쳐야 황제가 묻혀 있는 지하 황릉을 만날 수 있다.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용은 황제들이 잠든 이곳에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죽음의 공간에서도 하늘의 아들이라 믿은 황제의 욕망은 잠들지 않고 있다.

자금성을 처음 보았을 때 ‘얼음’이 되어버렸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핏빛 담벼락과 엄청나게 폐쇄적인 궁들의 끝없는 나열. 그리고 금빛 지붕과 기둥들. 그곳이 중국이 가장 융성하던 명·청 시대 황제들이 살던 자금성이다. 자색 紫色의 금지 禁止된 성 城. 자색은 황제의 색이다. 이 자줏빛 보라색은 북극성의 상징이라고 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최고 궁전이 있는 곳이고, 그런 만큼 황제의 거처는 자색이어야 했다. 북극성이 저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자금성은 이 세상의 절대적 중심이었다.

청나라 시대 황제들의 주검이 놓여 있는 청동릉 입구에서 자금성이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섯 개의 기둥이 다섯 개의 문을 만든 석패방 石牌坊에 한발 들여놓으면 ‘아! 한 세계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절로 받게 된다. 입구의 문턱을 넘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과 아득한 시간이 펼쳐진다. 사람들에게 ‘사후의 자금성’으로 불리는 이곳 청동릉은 청나라의 3대 왕인 순치제가 사냥하러 들렀다가 이곳의 산과 물에 감탄해 황제의 침릉으로 정한 이후 5명의 황제와 15명의 황후, 왕자와 공주를 포함해 161명이 이곳 청동릉에 묻히게 되었다. 중국을 가장 부유하고 강성하게 만든 강희제(청의 4대 왕)와 건륭제(청의 5대 왕) 그리고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절대 권력을 휘두른 서태후까지 묻힌 곳이기에 이곳의 완벽에 가까운 풍수와 건축의 정교함은 중국의 모든 황릉을 압도한다. 속된 말로 무덤 건축의 ‘발군’이라 할 수 있다.


청동릉 입구에 서 있는 석패방. 높이는 12m가 넘고 너비는 30m가 넘는다. 여섯 개의 기둥이 다섯 개의 문을 만들었다. 다섯 개의 문 중앙을 보면 금성산 金城山의 산세가 뚜렷하다. 청동릉은 하북성 준화 遵化의 산맥 사이로 넓게 열린 땅으로, 지관들이 ‘만년길지 萬年吉地’로 칭송한 곳인 만큼 좋은 터다. 걸으면서 풍경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의 기세와 공간 조직은 풍수에 무지한 사람이 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땅과 건축이다.


지하에 황제의 주검이 놓인 황릉 입구다. 저 멀리 경사져 보이는 저것은 계단이 없는 경사 길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같은 것으로, 영혼이 들어가는 길이므로 계단 없이 저렇게 경사만 만들어놓았다. 그야말로 죽음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중국인은 천 天, 지 地, 인 人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오래된 사고의 틀을 지니고 있다. 끝없이 범람하는 황하 黃河와 흙먼지 펄펄 날리는 황폐한 황토 대지, 사람을 압도적으로 위협하는 자연, 넓디넓은 땅덩이 안에 나와는 씨도 종도 다른 ‘겁나게’ 많은 사람이 엉클어져 있는 혼돈, 감당하지 못할 땅덩이와 위협적인 자연, 도저히 하나로 끌어모을 수 없는 다양한 민족들. 그 속에서 누군가, 무엇인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영원한 혼돈의 반복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삼라만상을 개념 화할 수 있는 추상, 혼돈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위계와 질서가 필요했다.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는 사람이 왕이 되었고, 왕은 하늘의 아들,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주 主와 종 從’.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혼돈은 이 주와 종의 관계로 간단해졌다. 우주의 삼라만상도 천지인으로 구분 지으니 간단해졌다.

그 생각의 틀은 건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국의 건축은 택중 사상이 지배적이다. 즉, 드넓은 세계 속에서 어느 한 지점을 택해(물론 완벽한 풍수 원칙에 의해서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높은 담은 중국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하여 중국의 건축물을 들여다보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폐쇄적이다, 대칭적이다, 이런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주와 종, 상과 하, 동과 서가 엄청난 위계질서에 의해 구획된 중국의 건축. 자연 속에서 묻히고 어울린 우리의 건축과 비교하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중국의 건축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중국과 우리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게 된다.

글 김은주(디자인하우스 단행본팀 편집장) 사진 배병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