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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 제너럴 닥터 의원 김승범, 정혜진 원장
문턱이 높지 않고 생활 반경 안에 있으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친구 같은 병원. ‘동네 병원’ 아니 1차 의료 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습관처럼 달고 사는 소소한 질병과 마음의 병을 몸속에 쌓아두지 않는 방법은 바로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틈이 날 때면 ‘순이’와 시간을 보낸다.

홍대 근린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건물 외벽에 누군가 색색의 스프레이로 마구 낙서를 해놓았다. 뉴욕 브루클린의 후미진 골목을 연상케 하는 이 건물에 사람이 살까 싶어 가까이 가보니 작은 간판 같은 것이 눈에 띈다. 하얀색 커피잔을 그리고 그 가운데 파란색 더하기 표시를 해두었다. 재미있는 건 병원에서 X선 사진을 올려 두고 보는 라이트 박스에 그림을 붙여 건물 외벽에 걸어둔 것이다. 이건 분명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자 조그만 유리문이 보인다. 어릴 적 동네 병원 간판에서나 봤음 직한 옛 글씨체로 ‘제너럴 닥터’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작은 쪽지 하나. ‘이곳엔 고양이 네 마리가 살고 있어요’라는 손 글씨와 함께 고양이 네 마리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유리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여느 카페처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정제닥이 개발한 부드러운 치즈 케이크와 김제닥이 정성 들여 뽑아낸 블랙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허름한 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카페였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조금 전 건물 외벽에서 본 간판과 제너럴 닥터라는 이름, 하얀색 커피잔에 새겨진 더하기 표시는 분명 병원을 상징한다. 제너럴 닥터란 이름도 ‘일반의’라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이곳은 혹시 병원?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모두 환자?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 엉뚱한 상상은 놀랍게도 현실이다. 다섯 해 전에 문을 연 홍대 앞 카페 제너럴 닥터 General Doctor는 카페이자 병원이다.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즐기고 싶은 사람도, 두통이 심하거나 감기에 걸린 사람도 이곳에 올 수 있다. 제너럴 닥터에서는 의사가 커피를 나르고,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진료를 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물론 절대 불법 영업은 아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카페 주인 김승범ㆍ정혜진 씨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일반의이자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다. 제너럴 닥터는 기존의 병원 시스템을 벗어난 ‘문턱이 낮은 생활 속 병원’이다. 이곳에서는 감기나 두통 같은 경증 질환부터 만성 위장병,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 질환까지 폭넓게 진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 의료 취약 지구에서 공중 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에 지원했어요.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했는데, 병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진료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소아과에선 아이를 잘 달래는 의사능력 있는 의사죠. 저는 의학 서적을 뒤적이는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사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소아용 압설자(혀를 아래로 누르는 데 쓰는 의료 기구)에 사탕을 부착해 사용하기도 하고, 의료장비를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인형 배 속에 청진기를 넣어 아이가 인형을 꼭 껴안는 순간 심장박동이나 폐에서 나는 소리를 관찰하기도 했어요. 소소한 아이디어를 보탰을 뿐인데 아이는 물론 부모도 웃으면서 진료를 받더라고요.” 공중보건의 과정을 거치면서 김승범 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깨닫고, 의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의료 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1 카페 안쪽에서 환자와 상담하는 정제닥.
2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 마음이 편안해지는 ‘병원’.


문턱이 낮은 생활 공간 속 병원
그러나 삶을 아름답게 디자인 하고 의료 행위에 숨을 불어넣는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과자를 찍어내는 공장처럼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란 힘든 일이다.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그렇게 방황하던 시기에 김승범 씨는 잠시 의사의 길을 접고 홍대 앞에서 자그마한 술집을 운영하던 형을 돕게 되었다. 영화과를 졸업한 김승범 씨의 형은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문화를 이끌어나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카페 겸 병원’이라는 콘셉트를 생각해낸 것도 형의 도움이 컸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졌을 때, 김승범 씨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병원 이름을 ‘제너럴 닥터’라고 지은 것은 김승범 씨가 일반의이기 때문이다. “의대 6년을 마치면 누구나 의사 면허를 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죠. 그 자격을 얻으면 어디서나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반의를 만나기가 쉽지 않죠. 일반의를 동네 병원 의사 정도로 폄하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통계상 의사 10명 중 한명은 일반의죠. 이런 상황에서 일반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요. 요즘은 대부분 가정의학과에서 1차 진료를 받죠. 하지만 가정의학과는 마치 다이어트 클리닉 같아요. 사람들은 정작 몸이 아플 때 무슨 과를 가야 할지 몰라요. 그런 측면에서 반드시 ‘동네 병원’이 필요하죠. 문턱이 높지 않고 생활 반경 안에 있으며 의사와 환자의 유대 관계가 좋은 병원이요.” 실제로 제너럴이라는 단어에는 ‘일반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당연한’이라는 뜻도 있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찾아가서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 어디가 왜 아픈지 진단해주는 1차 의료 기관으로서의 병원. ‘제너럴 닥터’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왼쪽) 제너럴 닥터에는 네 마리의 유기묘가 함께 산다.
(오른쪽) 카페, 아니 병원 입구에 쓰여 있는 저 글씨체를 보라. 어린 시절 동네 병원에서 본 듯하지 않은가?


위기에 놓인 병원을 살려낸 치즈 케이크 제너럴 닥터가 문을 열자, 언론을 비롯해 세간의 관심이 쏠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카페와 병원을 한 공간 안에 꾸며놓았지만 아무래도 병원 손님보다는 카페 손님이 많았다. 카페 운영 경험이 전무한 김승범 씨는 손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날이 갈수록 카페 손님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동호회 친구에게서 동업을 해도 좋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친구의 친구는 대학병원 의사였다.
“처음 김승범 씨(이하 김제닥)를 봤을 땐 날라리 의사인 줄 알았어요. 카페 안에 병원을 차린 것부터 솔직히 의아했죠.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소신도 있고, 의료 철학도 확실하더라고요. 김제닥이 그런 말을 했어요. 의사도 사람이고 평생 환자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직업인데 행복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대학병원에서 기계처럼 일하면서 행복하냐고 묻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요. 처음 만난 날 8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면서 김제닥과 동업자가 되기로 결심했죠.” 정혜진(이하 정제닥) 씨의 말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김제닥과 정확하고 칼같은 성격에 논리적이고 셈이 빠른 정제닥이 ‘결탁’하자 위기에 놓인 제너럴 닥터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김제닥과 정제닥이 이처럼 절묘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 되고, 의사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기계처럼 돌아가는 대학병원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 병원을 차린 이유 또한 좀 더 인간적인 환경에서 의료 행위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병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왜 병이 발병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악화되는지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간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의사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김제닥과 정제닥은 하루에 최대 20명의 환자만 진료하고, 환자의 궁금증이 속 시원히 풀릴 때까지 진료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두 사람은 이걸 ‘끝장을 보는 진료’라고 부른다).
두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딱딱한 병원이 아니라 안락한 카페이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사람이 늘어갔다. 이제 제너럴 닥터에는 벽장 가득 진료 기록 노트가 꽂혀 있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적어놓은 일종의 ‘차트’인 셈인데,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의학 용어는 단 하나도 없고, 증상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기 때문에 눈에 쏙쏙 들어온다. 김제닥과 정제닥은 그렇게 환자를 상담하면서 얻은 정보를 더욱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블로그(gedoc.tistory.com)에 올려둔다. 지금까지 그들의 블로그에 다녀간 사람만 무려 96만 명이 넘는다.


모든 것은 소통에 달려 있다. 공감을 잘하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희망에 차 있다.

카페와 병원은 결국 ‘소통’하기 위한 공간이다
김제닥과 정제닥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블로그에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블로거가 다녀간다.덕분에 제너럴 닥터는 얼마 전 건물 3층을 임대해 카페와 진료실을 더 넓혔다. 또 최근에는 인터넷 기업 NHN의 제안으로 NHN 사옥 16층에 제너럴 닥터 2호점을 열기도 했다. 소신을 갖고 일한 덕에 마음 뿌듯한 일도 끊이질 않는다. 제너럴 닥터를 찾는 사람이 전보다 몇 배로 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제닥과 정제닥의 진료가 느슨해진 것은 절대 아니다. 두 사람이 진료하는 환자 수는 여전히 하루에 20명을 넘지 않는다. 이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제너럴 닥터의 정체성도 무너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 생각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인생 1막은 성공인 셈이다. 그리고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나르는 의사’가 꿈꾸는 인생 2막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일 것이다. 김승범 원장이 품고 있는 제너럴 닥터의 미래에 관한 생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제너럴 닥터가 궁극적으로 의료 생협의 형태를 갖추길 소망한다. 지역 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의료인과 함께 협동해서 직접 의료 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 의료 생협이야말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문턱이 낮은 병원이자, 환자와 의사가 진정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의료적 대안이다.

2009년 2월 19일, 김제닥의 알약 이야기
질문: 매일 먹는 혈압 약, 당뇨 약 이름은 알고 드시나요?

약 이름이라는 게 대체로 비슷해서 기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드시는 약이 뭐죠?”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 모양을 설명하신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당뇨 약을 ‘눈 사람 약’이라고 부른다. 모양 때문이다. 그런데, 요 눈 사람 모양의 약은 초록색, 하얀색, 풀색으로 다양하다.

또 눈 사람 모양의 약은 당뇨 약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약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내가 먹는 약을 정확히 기억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모양으로 기억하기와 정확한 이름으로 기억하기. ‘0.7cm의 흰색 정제로 분할선이 한 줄 있고, 한쪽 면에 LQ, 20이라고 적혀 있다’ 혹은 ‘라**정 20mg’.

먹고 있는 약 이름을 잘 외우려면 처방전을 꼼꼼히 보면 된다. 병원에서 혹시 처방전을 한 장만 주면 꼭 환자 보관용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