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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손가족]75세 조부모와 사는 열 살 하민이 “할아버지, 할머니 저랑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초등학교 3학년 하민이의 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 거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하민이의 엄마, 아빠 역할을 해주신 분들이니까. 두 분이 돌아가시면 하민이는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는다. 위암 투병 중이신 할아버지, 고혈압과 당뇨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언제까지 하민이의 곁을 지켜주실 수 있을까. 지금 하민이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줄 ‘키다리 엄마, 아빠’다.

여성가족부 위탁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의 추천으로 하민이 가족을 알게 됐을 때 암담한 마음이 든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조손 가족 사례라고 추천을 받긴 했지만, 막상 그 생활상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드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위암 투병 중이지만 수술은커녕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이성무 할아버지, 고혈압ㆍ당뇨ㆍ어지럼증ㆍ오십견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집 안에서만 지내는 최락순 할머니, 그리고 경계선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 열 살이지만 네 살 지능인 하민이. 이 가족은 부엌 하나에 방 두개가 딸린 다세대 주택에서 할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장애자 보조금 50만 원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청소, 세탁, 요리, 학습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전혀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하민이네 집을 찾아간 날, 서울의 체감 기온이 영하 20℃로 뚝 떨어졌다. 덕분에 영등포구 대림동의 다세대 주택가는 보일러도, 수도도 꽁꽁 얼어붙어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침나절부터 배관공이 수도관을 녹이느라 애를 쓴 모양이지만, 수도 꼭지에선 물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는 근심이 가득하건만 철없는 하민이만 혼자서 신이 났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이닥쳐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맛있는 햄버거도 사주겠다고 ‘꼬시니’ 그럴 만도 하다.

하민이의 해맑은 웃음마저 없었다면 이 가족과의 만남이 영하 20℃의 날씨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는지 모른다. 낡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1층. 뽀얗게 먼지가 낀 창문 안쪽으로 무기력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거동이 불편하신 탓에 거북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며 “이 누추한 데를 뭐하러 와서 고생이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루에 올라가 앉는 순간 더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고개를 돌리는 곳곳마다 눈에 띄는 바퀴벌레, 걸레질을 하지 않아 여기저기 신발 자국이 난 장판, 쉰내가 풀풀 나는 설거지 통…. 사람이 살지만 사람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가족이 살고 있었다.
하민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건 한 살 때부터다. 끝내 그 이유를 들을 수 없었지만, 어느 날 하민이 아빠가 집으로 찾아와 하민이를 맡겨 두고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었다. 금방 올 것처럼 하고 간 탓에 할아버지는 보따리 하나 받은 게 없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가 벌써 7년째. 핏덩이던 하민이는 어느새 훌쩍 커 장난꾸러기가 되었다. 사실 처음 한두 해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들을 기다렸다. 자식새끼 버리고 어디 멀리 갔겠나 싶어 저녁이면 대문 밖에도 나가보고 전화도 기다렸지만, 아들은 그 7년 동안 연락 한 번이 없다. 자식을 잃은 것은 둘째치고 하민이의 미래가 걱정돼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척추 질환 때문에 노동을 안 한 지 오래된 할아버지는 생계비를 마련할 수 없고, 거동이 불편해 청소조차 하기 힘든 할머니는 하민이에게 엄마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척추 장애 판정을 받아 나라에서 나오는 50만원의 보조금과 자선단체에서 가끔씩 나눠주는 옷가지나 쌀 등이 하민이네 가족의 생계 수단 전부였다.

“지금으로선 암 치료는 꿈도 못 꿔. 수술을 하려면 몇천만 원이 든다는데 수술한다고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돈 있으면 하민이 앞으로 물려줘야지….” 지금 당장은 돈이 있어도 건강이 악화돼 수술이 불가능한 할아버지는 암을 진단받은 그 순간부터 수술할 생각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아직은 위암 1기라고 하니까 적어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겠지, 그동안 하민이가 좀 더 자라주면 마음의 짐을 좀 덜 수 있겠지, 그런 심정으로 버티고 계셨다. 자신의 병보다 더 걱정이 앞서는 건 하민이가 반 친구들에게 자꾸만 맞고 들어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하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혹시 멍든 곳은 없나 싶어 얼굴과 몸 여기저기를 살피는 게 일이 돼버렸다. “반에 이 뭐시긴가 하는 녀석이 있는데, 아마 그놈이 자꾸 하민이를 놀리고 때리는가벼. 그래서 내가 그놈이 한 대 때리면 너도 한 대 때리고, 그놈이 두 대 때리면 너도 두대 때려, 그렇게 가르쳐. 왜냐, 그놈들이 하민이를 무시해서 그러는 거거든.” 할아버지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할머니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애 옷이 지저분해도 내가 빨아 입힐 수가 없어요. 오십견이 와서 팔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집이 이렇게 지저분해도 그냥 보고 있는 거예요….”

(오른쪽) 할아버지가 노인정 가시는 길, 하민이는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되어 드린다. 하민이랑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 할아버지도 시름을 잊는다.

‘경계선 지능 및 정신지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하민이는 할머니가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다. 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는 하민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조잘댄다. 저도 학교생활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을 텐데, 할머니가 우울해 보이는 날이면 “할머니 속상해? 힘내, 내가 있잖아!” 그러면서 애교를 떤다. 할머니는 그런 하민이를 껴안고 ‘그래 이놈아, 네가 있으니까 산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인다. 하민이 때문에 사는 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니, 이제 할아버지에게 하민이는 아들처럼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다. “이제는 하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외출할 땐 할아버지 넘어진다고 지팡이 노릇한다고 하지, 내가 눈이 안 보이니까 우편물도 다 읽어주지, 심심할 땐 말벗까지 해주는 걸….” 가난을 병처럼 앓는 조부모와 부모 잃은 슬픔에 정신장애까지 얻은 손자. 이 불완전한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위태롭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루빨리 하민이 부모가 나타나 조부모와 하민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마음만 답답할 뿐이다. 그리 밝지만은 않은 하민이 가족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민이의 ‘키다리 엄마, 아빠’가 되어주세요”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조손 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손 가족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모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엄연히 살아 있으니 정부 차원의 지원도 받을 수 없고, 고령화된 조부모는 경제력이 없습니다. 하민이는 자꾸 커가는데 학습을 도와줄 사람도, 학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민이네 가족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할아버지, 할머니의 병을 치료하는 문제입니다. 할아버지는 위암 진단을 받고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수술을 하려면 수혈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 비용만 해도 2천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다섯 가지 질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는데, 모두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라 약값이 만만찮습니다. 약값이 턱없이 부족해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한의 약만 복용한다고 하니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하민이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형이나 누나가 생겨도 좋겠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집으로 찾아가서 공부도 가르쳐주고, 햄버거도 사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하민이 가족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주실 수 있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하민이 가족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문의 02-2262-7232(<행복> 편집부), 02-3140-2299(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