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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세상 보기] 공감하는 인간
어린 시절, 듬뿍 사랑받고 마음껏 뛰어논 사람은 궁극적으로 ‘행복한 인간’이 된다.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이른바 ‘공감 능력’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아주 밀도 높고 생생한 것이며,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공감의 뿌리
“역시 보는 눈은 다 비슷해.” 내가 좋다고 느끼는 걸 남도 좋다고 느낄 때 당연하다는 듯 하는 말이다. 에르메스의 벌킨 백을 갖고 싶다거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멋있다고 느끼는 건, ‘사람 보는 눈이 다 비슷해서’다. 여기서 ‘보는 눈’이란 감정과 동의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사물이나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 인간은 누구나 공 감하는 능력을 타고난다. 인종, 문화, 사회계층, 연령, 성별은 달라도 공감하는 능력만은 균일하다. 생물학자나 인식 과학자들은 영장류나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건 뇌의 신피질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뇌의 여러 부위 중 가장 늦게 발달하며 뇌의 가장 바깥 부분을 이루는 신피질. 기억하고, 사랑하고, 염려하고,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일을 관 장하는 곳. 포유류가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사랑을 주는 것은 신피질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신피질이 없는 뱀은 자기 새끼를 사랑하거나 돌볼 줄 모르고 잡아먹는다).

물론 신피질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수준의 공감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공감 능력이 성숙하게 발휘되려면 반드시 자아 발달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 은 공감 의식이 생기는 것은 생후 18개월부터 2년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라고 말한다. 이때쯤 되면 아이는 자신과 남 을 구분하기 시작하며, 다른 아이가 겪는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공감한다. 두 살 난 아이가 제 또래의 다른 아이가 고통받는 장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장난감을 건네는 건 공감 능력이 형성됐다는 증거다. 공감이 발달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공감 의식은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개발되고 확장되고 심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부모와의 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된다.

(왼쪽) ‘진심의 다운로드_한지에 수묵 채색_70x140cm_2010’

세계적인 연설가이자 교육자인 메리 고든은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가 가진 힘’에 주목했다. 그는 “아기가 배고파서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는 울음소리를 듣고 아기가 배고픈 줄 알아채고 아기를 안아 젖을 먹인다. 아빠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기 이름을 부르면서 번쩍 들어올리면 아기는 아빠를 보고 꺄르르 웃으면서 팔을 뻗어 아빠의 얼굴을 만진다. 소통이 오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생후 몇 년 동안 이런 소통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공감의 뿌리가 점점 더 깊고, 넓게 퍼져나간다”고 설명한다.

고든은 아기와 부모가 소통하는 장면이 성장기 어린이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지역에 사는 갓난아기를 초·중등학교에 초대해 학생들이 한 학년 동안 아기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는 ‘공감 능력을 높이는 심리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공감의 뿌리(www.rootsofempathy.org)’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사회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노출되지 않은 갓난아기의 순수한 마음과 따뜻한 감정을 발견하고 자연스레 스스로도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을 했다.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10년 만에 캐나다 전역의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이 90%나 줄어들었다.


공감, 감정이입의 다른 이름
세계 각국의 사람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 속 주인공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지만 그 사람의 심경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사진을 여러 명의 사람이 관찰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화난 사람, 기쁜 사람, 우울한 사람, 평화로운 사람, 고집 센 사람, 독선적인 사람, 사랑하는 사람, 실연 당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가난한 사람…. 사진 속 주인공의 감정은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이입된다. 공감이라는 용어는 1872년 로베르트 피셔 Robert Vischer가 미학에서 사용한 독일어 ‘Einfuhlung(감정이입)’ 에서 유래했다. 감정이입은 관찰자가 흠모하거나 관조하는 물체에 자신의 감성을 투사하는 방법을 뜻하는 말로, 원 래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원리를 밝히기 위해 창안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는 이 미학 용어를 빌려와 일련의 정신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는데, 그가 주장한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E. B. 티치너 E. B. Titchener 역시 “공감의 ‘감(感, pathy)’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자가 공감을 다른 사람의 곤경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고 생각했다면 칼 로저스 Carl Rogers(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해 정신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내담자 來談者 상담 요법의 창시자)는 반대로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정 또한 공감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눈가가 촉촉해진다. 기쁨의 눈물이다”라며 공감이 소외감을 없애준다고 설명한다. 다른 누군가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이상하거나, 소외되거나,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로 인해 공감받는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외로움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감을 받는 이에게 강력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성숙한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때, 내가 기꺼이 타인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놀이는 공감 발달의 지름길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Jeremy Rifkin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나 포유류를 살펴보면, 집단의 크기가 ‘털 골라주기’에 쏟는 시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털 골라주기가 집단 구성원의 관계를 긴밀하게 해주고 응집력을 강화시켜주는 문화적 기능, 즉 놀이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수렵 생활을 하는 영장류가 하루 일과 중 털 골라주기에 할애하는 시간은 20%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신뢰감, 친밀한 관계, 사회적 결합을 이루며 공감을 확장한다.

그렇다면 가장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은 어떨까. 우리가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하던 소꿉놀이나 병원놀 이, 말타기 등은 알고 보면 공감을 발달시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이들은 말을 타고 싶으면 빗자루나 나무 막 대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고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린다. 막대기는 가상의 말이고, 달리는 행위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병원놀이도 마찬가지다. 종이컵이나 빈 깡통을 친구의 심장에 대고 숨죽여 무언가를 듣는 시늉을 할 때 아이는 의사가 된다. 상상을 통해 실제적인 경험과 순수한 정서와 추상적 사고를 하나의 종합적인 형태로 만드는 고차원적인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성장 시기에 즐기는 놀이는 애착, 배려, 신뢰, 애정,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성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왼쪽) ‘古物_한지에 수묵 채색_36x38cm_2008’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신경 과학자인 폴 맥린 Paul Maclean은 “놀이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유대감이 공감 의식의 발달을 촉진한다. 인간의 어떤 행동적 발달도 놀이보다 더 근본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놀이의 본질이 철저히 참여적이고, 공유된 즐거움을 추구하며, 마치 환상의 세계처럼 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놀이 환경은 공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실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페르소나, 다른 역할, 다른 상황에 대입해 상상력을 펼치고 행동한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이나 병원놀이를 하고, 장래 희망으로 학교 선생님이나 대통령을 꿈꿀 때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공감의 확장’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한없이 시시한 아이들의 놀이는, 놀랍게도 진정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애, 그리고 희망

삶이 핑크빛일 때보다 잿빛일 때가 더 많고,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 외면할 때가 더 많은 사람은 ‘공감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며 크게 후회할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오해하고 배척하며 살아온 무수한 시간을, 의미 없이 잘려나간 보상받을 수 없는 순간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타인의 안쪽에 뿌리 깊게 내려앉아 나를 돌아보고, 너를 이해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것.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충만한 세계로 걸어가보지 않겠는가. 공감한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고, 그들의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공감의 순간’은 인간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의미 있고 생생한 경험이다. 공감할 줄 몰라 경험을 제한받는 사람이 되지 말자. 그런 인생은 충만하지 못하고 우울하다. 인생을 즐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단단히 묶여 부대끼며 산다는 것이다. 그 황홀경 속으로 미친 듯이 걸어가보자.

글 정세영 기자 작품 이미지 제공 소담 주경숙(화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