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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하석 박원규 기획전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 백수백복도'에 깃든 의미
1백 개의 ‘수 壽’ 자와 1백 개의 ‘복 福’ 자를 조합해 만든 거대한 그림 ‘백수백복도 百壽百福圖’. ‘수복 壽福’이란 제사를 지내고 나서 상에 올린 술을 음복하는 것, 즉 조상의 덕을 나누어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입체적 전시 공간 안에 병풍처럼 걸린 서예가 박원규 선생의 작품은 그러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을 담은 반가운 새해 인사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올 한 해도 복이 찰찰 넘친다. ‘백수백복도’ 속에 작가가 있다.

“서예란 붓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서예 작품 앞에 서면 눈을 뜨고 있어도 맹인이나 다름없다. 중국에서 전래되어 오늘날까지 쓰고 있는 한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로 글자 수만 해도 약 5만 자에 이른다. 더욱이 점과 획으로 이루어져 쓰는 사람의 필체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그지없어 기본 자를 안다고 해도 그 변형까지 식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뿐인가. 한자는 음을 읽고 뜻을 새기며 쓸 줄도 알아야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있으니, 그 배움의 과정이 바다보다 깊고 우주보다 방대하다. 중국인들이 나라의 보물 1호로 한자를, 2호로 서예를 꼽는 이유를 이해할만하다. 서예를 ‘궁극의 예술’ 혹은 ‘문자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1947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법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은 이토록 깊고 넓은 서예의 세계에 빠져 40년이라는 시간을 헌신적으로 살아냈다. 그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문하로 입문해 서예를 배웠고, 대만으로 떠나 독옹 이대목 선생에게 전각을 사사했는데, 그의 스승인 이대목 선생이 전각에 새겨 선물한 글에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원규는 서예와 전각을 공부하는 데도 법도를 준수하며 재능과 도량이 넉넉하다. 그는 예의와 법도를 존중하며 스승에 대한 도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참으로 정연한 양이 옛 군자의 풍도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당호 當號가 ‘아석재 我石齋’이고, 이 선생의 누명 樓名이 곡굉 曲肱인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실명을 ‘석곡 石曲’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하여 자신이 배운 학맥의 연원을 밝히고 그 뿌리를 기록한 것이다. 이로써 그의 넉넉한 마음가짐을 헤아릴 수 있겠다.”



安은 회의 문자입니다. <설문>에서 “安은 (편안할 정)이며, 여자가 안에 있는 모양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자가 남편을 따른다는 의미로, ‘여자는 남자가 있고 남자는 여자가 있어 서로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이 곧 자연의 이치다’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스승이 선물한 칭찬의 글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원규 선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압구정동에 마련한 작업 공간 ‘석곡실’로 나가 글을 쓰고, 그도 모자라 여름과 겨울에는 한 차례씩 기나긴 칩거에 들어간다. 그 수행 시간이 승려의 수도 생활이나 다름없어 스스로 하안거 夏安居(승려가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일정한 곳에 머물며 수도하는 일)와 동안거 冬安居(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라 이름 붙이고,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글에만 매달린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동안 그가 남긴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1985년에 펴낸 <마왕퇴백서노자임본>은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마왕제가 쓴 노자의 덕도경 임서본으로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도덕경>이 잘못된 표현임을 밝혀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도덕 道德’은 덕이 주어이므로 ‘덕을 인도함’이라는 뜻이고, ‘덕도 德道’는 도가 주어이므로 ‘도를 높임 혹은 키움’이라는 뜻이다. 노자의 사상은 도를 키우는 것이지 덕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므로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이라 불러야 맞다(박원규 선생이 이 책을 냈을 때 가장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본 곳은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이처럼 유의미한 작품집을 스물다섯 권이나 냈고, 1999년에는 서예 전문 잡지 <까마>를 창간해 7년 동안 서예사와 서예가를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선생이 한국 서예사에 기여한 공은 참으로 크다 하겠다. 또 최근에는 서예 평론가 김정환 씨와의 대담을 엮은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를 출간해 대중에게 서예의 가치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백수백복도’를 통해 얻은 깨달음 한길사 아트 갤러리 북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박원규 선생의 출간 기념 전시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형 서예 기획전이다.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헤이리의 지역 특성을 잘 살려 젊은 사람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현대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소개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이번 전시에는 총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특히 설을 맞아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쓴 ‘백수백복도 百壽百福圖’는 주목할 만하다. 박원규 선생은 이 작품을 위해 지난 5년 동안 눈에 보이는 대로 ‘수 壽’와 ‘복 福’ 자를 모았다. 고서, 병풍, 간판, 그림, 전각을 불문하고 모은 3천3백 개의 ‘壽’ 자와 2천5백 개의 ‘福’ 자 중 각각 1백 개씩을 골라 쓴 것이다. 선생은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壽’는 ‘福’ 속에 깃들어 있지만(오복 중 가장 큰 복은 장수다) 한자에는 ‘福’ 자보다 ‘壽’ 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를 통해 ‘시궁창에 굴러도 인간은 오래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는데, 얼핏 무슨 뜻인가 싶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말이다.

(왼쪽) <설문해자>에서 “용은 비늘이 있는 동물 중 으뜸이다. 숨을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으며,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으며, 짧아질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다. 4구가 한 운이다. 춘분에는 하늘에 오르고 추분에는 물에 잠긴다. 2구가 한 운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은 상상 속의 신비로운 동물이지요. 그래서 갑골문의 ‘용’ 자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조합한 형태에 인간의 상상력을 덧붙이고 꾸며서 완성했습니다.

‘백수백복’도 앞에 서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흥미로운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선생의 전시를 사진으로만 본 어느 신문기자는 “모든 글씨의 한 획은 꼭 붉은색”이라는 부제를 달아 붉은 획이 디자인적 요소인 것처럼 해석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福’ 자의 기원은 제사를 지내고 나서 상에 올린 술을 음복하는 것, 즉 조상의 덕을 나누어 마신다는 의미가 있다. 바로 그 복 자에 빨간 획이 하나씩 있는데, 이는 제사상에 오르는 생고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로로 쓴 붉은 획은 상 위에 놓인 생고기를, 세로로 쓴 붉은 획은 고기에서 흘러나온 피를 뜻한다.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면 서예 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가 전시관에서 직접 쓴 대형 갑골문 작품.

“갑골문은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 즈음에 발견된 문자인데, 큰 글자는 거의 다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은 갑골문 자체 가 점사 点辭(점괘에 나타난 말 또는 점괘를 풀이해 길흉을 보는 괘사)였다는 걸 의미해요. 점을 친 결과를 새겨놓은 거죠. 그 당시에는 나라에 점을 치는 관리가 따로 있었어요. 왕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가 점을 치는 것과 전쟁을 치르는 거였죠. 한때 거북점은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한 점이에요. 거북의 등과 배 껍데기, 짐승의 큰 뼈 등에 글을 새겨 넣고 불을 지펴서 쩍 하고 갈라지는 걸 보고 길흉을 점쳤다고 해요. 그 결과를 등딱지나 뼈에 새겨 넣은 게 바로 갑골문이고요.”


글자에도 골과 근, 육과 혈이 있다 박원규 선생은 서예를 흥미롭게 감상하려면 ‘글자와 사람의 몸은 같다’는 명제를 먼저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글자에도 사람의 몸처럼 골과 근, 육과 혈이 있다는 것이다. “글씨란 사람이 움직이는 이치와 같아서 두 팔과 두 다리, 이 네 가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춰져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골 骨은 필획 중에서 힘을 나타낼 수 있는 골격을 뜻 합니다. 근 筋은 사람의 힘줄처럼 글자의 획 간에 기맥이 서로 통하도록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육 肉은 먹물의 농담을 비유해 선의 굵고 가늚, 즉 살찌고 마름을 뜻합니다. 혈 血은 필획이 윤택하고 생기가 있어야 하므로 먹물의 신선함을 피에 비유하지요. 문자의 점과 획은 점획 자체로는 그 기 氣를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점획의 운필법을 익힌 후에는 점획을 모아서 하나의 문자를 구성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요. 그래야 비로소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오른쪽) 호랑이를 뜻하는 한자인 범 호 자는 형태를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호랑이의 느낌을 살려야겠지요. 호는 호랑이와 사람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윗부분은 호랑이의 가죽 무늬를 나타내고, 아래는 사람의 발 모양을 그대로 호랑이의 발 모양으로 봐서 만든 글자입니다. <채근담>에 보면 “독수리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앓는 듯이 걷는다”는 말이 나오지요. 기회가 올 때까지 조는 듯, 앓는 듯 기다리는 호랑이 모습. 이 작품에는 강한 사람은 평소 조용하고 부드럽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문하생으로 들어가 글을 배우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하지만 그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선생도 언급했다시피 서예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교양인을 ‘독서인’이라고 하는데,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서예 역시 학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예술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그 매력에 빠져들 수 없다. 또 그것에 임할 때는 마치 종교인의 자세처럼 맑고 겸허한 정신을 갖춰야 한다.

선생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글씨가 가장 좋은 글씨입니까?”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고, 선생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좋은 글씨는 생기, 즉 살아 있는 기운이 느껴지는 글씨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생명력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은 눈이죠. 눈동자는 곧 그 사람의 정신이니까요. 그러니 ‘글씨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획이 살아 있지 않으면 그건 죽은 글씨나 다름없겠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기가 느껴집니다. 글도 마찬가지예요.”

*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의 전시는 2월 28일까지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한길사 아트갤러리 북하우스에서 열립니다.


자료 제공 한길사 북하우스(031-949-9303)

글 정세영 기자 사진 김유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