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여성가족부와 함께하는 ‘조손 가족 돕기’]드라마 작가 노희경 씨가 전하는 글 누구라도 그러하다면
부모 세대 없이 조부모가 손자 손녀를 키우는 가족 형태를 우리는 조손 祖孫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질병이나 경제적 파산으로 조부모가 어쩔 수 없이 손자녀를 떠맡아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부모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깊게 곪아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와 <행복>이 함께하는 ‘조손 가족 돕기’에 여러분도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아침이면 일어나 매일같이 하시는 일이 있었다. 일단 남편과 자식에게 줄 밥을 해놓고 조그만 빌라촌의 마당을 쓸고, 우리 집이든 남의 집이든 집 밖으로 내놓은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그다음 하시는 일은 인근 지역의 쓰레기 수거였다. 폐지와 고물을 줍는 것이 아니라, 노인정에 계신 분들에게 필요할 만한 방석이나 카펫, 돗자리, 유행이 지난 옷가지, 화분, 그 외에 잡다한 것을 주워 모으셨다. 그렇게
모은 재활용품을 집으로 들고 와 손볼 건 손보고, 빨래할 건 빨래해 노인정에 가져다 드리셨다. 간혹 노인정 어른들이 너무 구지레하다고 싫어하면 도로 낑낑 짊어지고 와 다시 버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때 어머니 연세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나, 나보다 두어 살 많을 때였다. 일찍이 조실부모한 탓에 어른이 그리우신가 싶어 물으면, 말수 적은 어머닌 “그냥…” 하고 별말을 안 하셨다. 한번은 어느 젊은 부부의 딸내미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셨는데, 아마도 그 집 형편이 안돼 보여 그러신 것 같다. 아빠는 권투 선수를 하다 그만두고 잡일을 하는 사람이고, 엄마는 스무 살이 갓 넘은 앳된 여자였다. 어머니는 밤이고 낮이고 그 집 일에 관심이 많으셨다. 어린 여자가 애 키우는 거며 살림하는 게 서툴러 안쓰럽다 하셨고, 그래도 살아보려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애 아빠도 기특하다고 하셨다. 두 부부가 바쁜 날이면 그 집 아이는 우리 엄마 차지였다.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어머닐 두고 “우리 집 형제도 많은데, 저 집 애한테 왜 저리 유별나시지? 원래 애 욕심이 있으셨나?”라며 구시렁댔지만, 어머닌 자식의 절반이 애를 안 낳아도 “낳아라, 낳아라!” 채근하지 않으셨다. 그저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젊은 총각에게도, 고아에게도, 애들 다 키워 출가시킨 어른에게도 조그만 관심을 놓치지 않으셨을 뿐이다.

왜 그렇게? 당신도 고단한데? 왜? 굳이, 왜?라고 물었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날 멀뚱히 보며 함구하셨을 거다. 그 함구의 뜻은 가늠하건대, 누구라도 그러하다면… 누구라도 제 고단한 삶과 한 귀퉁이라도 닮아 있다면… 그게 누구든 왜라는 질문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행복>에서 조손 가족에 관한 기사를 준비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참 반가웠다. 요즈음 다문화 가정이 주목받고 있고, 지금은 새터민(북한 탈출 이주민)이 정치적 이해로 안쓰럽게 외면받는 현실이다. 미혼모 가족, 노숙자 문제 등 우리가 관심을 갖고 돌봐야 할 소외된 이웃이 너무나 많다. 바로 그 속에 조손 가족도 있다. 자식 내외가 사망한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엄마나 아빠가 이혼하거나 돈을 벌러 떠나서, 차마 보육원에 보낼 수 없어서 등 갖가지 사정으로 조부모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손자 손녀)은 보호의 사각지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지만, 부모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보호 대상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는 조손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주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매스컴의 이슈를 좇고, 사회 현상의 변화에 잠시 기웃거리다 이내 시들해져 아픈 이들에게 관심의 추락까지 경험하게 했다. 가끔은 궁색하게 위로하고, 치졸할 만큼 성과에 급급했다. ‘누구라도 그러하다면’이라는 마음으로 그저 이해하고 행동하면 될 것을. 왜 없이, 왜 그들을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하다면….



 디자인 여유미 기자 취재 협조 여성가족부 위탁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02-3140-2211)

글ㆍ기획 정세영 기자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