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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복론] 어느 택시 기사의 교양

취재차 대학로로 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인터뷰이에게 쏟아낼 질문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옆으로 뭔가 스쳐 지나갑니다. 택시 기사와 저는 동시에 오른쪽을 바라보았지요. 제가 타고 있던 택시와 옆으로 지나가던 택시의 백미러가 부딪혀 제가 타고 있던 택시의 오른쪽 백미러가 안쪽으로 접히는 접촉 사고가 난 것입니다. 저는 순간 생각했지요. ‘아, 일이 복잡해지겠구나. 인터뷰에 늦으면 안 되는데.’ 그러고는 두 택시 기사의 표정을 번갈아 살폈습니다. 두 분 다 머리칼이 성성한 어른이더군요.
전 그분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 차를 갓길로 옮기겠죠. 그런 다음 택시에서 내려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며 시시비비를 가릴 것입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경찰도 올 것이고, 두 분 중 한 분은 액땜하는 심정으로 높은 수가의 보험료를 낼 것입니다. 교통사고라는 것이 원래 한번 나면 독감보다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두 택시 기사의 대처법은 달랐습니다. 두 분은 주행 상태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문을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저쪽 기사분이 팔을 죽 뻗어 우리 쪽의 구겨진 백미러를 펴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저 멀리 사라집니다. 제가 탄 택시 기사에게 물었지요. “저분 그냥 가시는데 괜찮으세요? 저쪽에서 잘못한 거 아니었나요?” “아유, 누구 잘못이면 어떻수. 먹고 죽을 일 난 것도 아닌데. 그냥 서로 손 한번 흔들면 되는거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대사보다 죽이지 않습니까?

전 두 분이 제게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교양’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기자인 저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진 ‘생활인으로서의 교양’. 교양이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를 말합니다. 택시 안은 이 땅의 모든 민심이 가장 먼저 일어서고, 정치적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토론의 장입니다. 그렇다면 택시 기사들이야말로 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행동하는 양심, 즉 교양인이 아닐까요.

박현웅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그마한 택시를 타고 시골길을 누비는 것처럼 정겨운 기분이 듭니다. 그의 작업이 과거에서 현재를 오가는 시간 여행에서 비롯된 때문이지요. 살아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여정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화폭에 담아낸 박현웅 작가의 그림은 기억, 추억, 여행, 이웃이라는 따뜻한 단어와 잘 어울립니다.

(왼쪽) 박현웅,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갑니다’


글 정세영 기자 작품 이미지 제공 박현웅(화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