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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떠나요 여행자 3인이 제안하는 일출여행
매일 뜨고 지지만 마음을 다하여 해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빛으로 세상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한 해의 끝과 시작, 만물에 깃든 빛을 대면합니다. 그 힘으로 또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해.


전남 장흥군 정남진에서 만난 노을. 수면 위로 내려앉은 빛이 ‘찬란’을 만들어냈다.

일출,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일상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의 전남 장흥군 정남진
남쪽 바다로 일출을 보러간 여정에 난데없이 호수의 일몰이 끼어든것부터 얘기하자. 전남 장흥군 정남진. 강릉의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짐작하다시피 장흥의 정남진도 정남쪽에 있다는 똑같은 이유로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곳곳에 정동진 못지않은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욕망이 출렁거린다. 삼산방조제 위에 세워 놓은 번쩍번쩍한 원뿔 모양의 조형물은 그런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다행히’ 그 욕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하기야 장흥의 정남진에는 <모래시계>같은 드라마도 없고, 젊은이들이 가기에는 너무 멀다. 무엇보다 올망졸망한 섬이 점점이 떠있는 남쪽 바다는 질풍노도의 뜨거운 가슴을 치익 하고 식혀주는 동해와 같은 차가움이나 비장미도 없다.

정남진의 해변에서 그 남자를 만난 것은 해가 막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허름한 횟집 겸 민박집을 숙소로 잡아 놓고 산책 삼아 나선길. 그 남자가 방조제로 걸어 들어왔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바지 장화를 입은 그는 바다가 아니라 방조제 안쪽의 삼산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조각배를 띄우고 삿대를 짚어 전날 쳐둔 그물을 걷었다. 오랜 도회지 생활에서 은퇴해 돌아왔다는 중년의 그는 유독 민물고기를 좋아하는 노모를 위해 매일 저녁 이곳에서 그물을 거둔다 했다. 그깟 물고기쯤이야 돈 주고 살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은 되어 보였지만, 그는 벌써 두 달째 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고 있다고 했다.

그가 배를 띄운 삼산호의 물빛이 기울어가는 노을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하늘이며 호수의 물빛이 어찌나 선혈처럼 붉은지 가슴이 다 먹먹해질 정도였다. 늙어가는 아들이 더 늙어가는 노모를 위해 걷은 그물을 턴다. 가슴을 저미는 황혼처럼 고향의 노모는 늙어갈 것이고, 고단한 도회지의 삶을 끝내고 돌아온 아들도 저 황혼 속에서 늙어갈터다. 저렇듯 붉은 노을 속에서 ‘사람 사는 일이 저리도 간명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장흥에서 만난 노을이 그렇듯, 그곳에서 만난 일출도 바다에 기대어사는 이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는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장흥 내저마을 앞바다에서 만난 일출 풍경은 사람들의 고된 노동이 자연과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해돋이라면 바다를 박차고 불쑥 솟아오르는 햇덩이를 만나는 걸 최고로 친다지만, 그 짧게 지나는 순간만을위해 일출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구름이나 안개 때문에 이런 장면을 마주할 확률도 낮거니와, 찰나에 펼쳐지는 그런 광경을 보았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일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장흥 내저마을 쪽에서 마주한 득량만의 일출은 달랐다. 매생이를 키우는 발에 꽂힌 대나무 지주대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그려내는 조형적인 그림은 그저 탄성만으로는 모자란다. 도합 서른다섯 가구의 내저마을 주민들은 이번 겨울 1천 척의 매생이를 바다에 넣었다. 주민들은 매생이 발 10개를 묶어서 1척으로 센다. 1척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바다 위에 11개의 지주대를 꽂아야 한다. 이렇게 셈하면 내저마을 앞바다에 꽂힌 대나무 지주대는 1만 1천 개가 되는 셈이다.

내저마을 언덕에서 해를 기다린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막 떠오른 해가 고도를 높이면 지주대가 바다 위에 그려내는 그림자가 더 선명해진다. 여기에 해가 뜰 무렵 반 톤짜리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매생이 발을 거두는 어부들의 어깨 위에 황금빛 햇살이 부서지는 모습이 더해진다. 바다와 그 바다에 기대 사는 이들의 노동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곳의 일출에서는 숭고함의 미덕까지 느껴졌다.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그저 ‘일출의 순간’이 아니라 ‘바다에 기대어 사는 어촌이 시작하는 하루’를 만나는 일이다.

그날 내저마을 어촌 계장의 집에서 매생이에 굴을 넣고 끓인 뜨끈한 국이 놓인 아침상을 받았다. 매서운 갯바람 속에 자란 매생이에서는 향긋한 겨울의 냄새가 묻어났다.

장흥에 가려면 몇 권의 책을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흥의 절반쯤만 보고 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장흥 출신의 문인은 이루 열거하기조차 숨가쁘다.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인구 4만 4천여명의 군 단위에서 이렇듯 많은 문인이 났다. 장흥을 찾았을 때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을 챙겨갔다. 소설 속의 어머니가 고향 마을을 찾은 아들을 배웅한 뒤 아들이 딛고 간 눈 위의 발자국만 되짚어 디디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대목을 읽다 금세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청준의 생가는 대덕에서 회진으로 가는 해안도로 쪽의 진목마을에 있다. <눈길>은 이청준 자신의 이야기다. 소설에 등장하는 고갯길과 옛집들이 생가 주변에 그대로 남아 있다. 평생 고향과 불화한 이청준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마음을 내려놓고 2년 전쯤 황혼 속에 갔다.


갯벌과 바다를 어루만지는 붉은 손길
여행 칼럼니스트 노중훈 씨의 전남 신안군 증도

1
이른 아침, 단출하게 ‘출항’ 준비를 마친 어부들의 모습. 화도의 갯벌에 물이 차올랐다.
2 안개 자욱한 화도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났다.

지난겨울과 지지난 겨울, 두 번에 걸쳐 증도를 찾았다. 신안군이 보유한 수두룩한 섬 가운데 일곱 번째로 큰 증도는 지난 2007년 말,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로 인증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슬로푸드에서 기인한 슬로 시티 운동은 느림의 미학을 표방한다. 날로 가팔라져가는,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이자 준엄한 대안이다.

겨울의 증도는 고요하고 고요했다. 바람, 눈발, 파도만이 정중동 靜中動을 이룰 뿐 섬의 9할은 움직임이나 흔들림 없이 잔잔했다. 도시인에게는 낭만적 열병인 고독이 겨울의 섬에는 차고 넘쳤다. 인위의 볼거리가 별로 없는 느긋한 풍경 속에서 발을 옮겨 걷는 동작은 속도를 낼 필요가 없고, 마음은 화학 첨가물이 없는 식품처럼 진실해졌다. 무위한 시간이 그저 아름다웠다.

증도의 첫인상은 ‘예사롭다’였다. 보는 사람이 주눅 들 정도로 압도적인 풍광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울바람에 몸살 차살 하는 겨울 바다는 제 속내를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고, 살짝 훑어본 갯벌은 한풀 꺾여 보였으며, 소금이 없는 소금밭은 고적했다. 섬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은 바람에 불리어 휘몰아쳐 날리는 눈이었다. 버들개지 같은 눈송이 속에서 더디게 걷고 느리게 호흡하니 남들이 맛적다고 하는 겨울 섬에서 진중한 매력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증도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주목한 것은 태양염전이었다. 여의도 두배만 한, 단일 규모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염전이다. 작업 시기를 벗어난, 소금이 오지 않는 겨울의 염전에는 시간이 고여 있었다. 고무래와 소금 창고만이 진공 상태의 소금밭을 지키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는 <자전거 여행>에서 ‘소금 창고는 아무런 조형 의지를 드러내지 않지만, 그 헐거움으로 스타일을 이룬다’라고 썼다. 하지만 태양염전의 그것들은 치밀하고 단단해 보였다. 3km에 걸쳐 줄줄이 늘어선 66개의 소금 창고가 염전 주변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소금밭은 바닷물과 햇볕과 바람 사이의 농밀한 대화로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몸으로 밀고 나가는 거룩한 노동의 풍경이 보태어져 순백의 꽃이 피어난다. 때때로 염부의 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시간을 인내하는 묵언 수행이나 정결한 종교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상물림이나 먹물들의 언어로는 조금도 범접할 수 없는 태초의 풍경이고, 자연과의 정직한 소통이다. 태평염전 들머리에는 염전과 더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가 매일같이 섭취하는 소금에 대한 온갖 정보와 흥미로운 일화를 보듬고 있다.


보드랍고 윤기가 흐르는 갯벌의 속살. 장뚱어다리와 연결된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우전해수욕장 북쪽에서는 470m 길이의 짱뚱어다리를 만났다. 다리 아래쪽 갯벌에 짱뚱어가 유난히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눈보라를 뚫고 갯벌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제법 운치가 있다. 해넘이의 정경 또한 사랑스럽다고 들었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었다. 증도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집중한 곳은 갯벌이다. 423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호호막막한 갯벌은 증도의 허파와도 같은 곳으로, 갯지렁이, 칠게, 농게 등 수많은 갯것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물이 빠진 갯벌은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거칠 것 없이 뻗어 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물끄러미 바라다보니 누군가를 추억해야 할 것만 같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자 갯벌의 살결이 이드르르했다.

이튿날 아침, 부지런을 떨어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인 화도 갯벌을 찾았다. 화도는 증도 대초리와 포장길로 연결돼 있다. 날이 밝아올 무렵의 갯벌 역시 고요함으로 잘박잘박 젖어 있는데, 적막한 공기에 균열을 낸 것은 통통배를 띄우기 위해 몸을 재게 놀리는 어부들이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이 ‘출항’ 준비를 마치자 아침노을을 받은 갯벌과 바다가 검붉게 물들었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멀리서 손짓한다. 바다와 섬은 농담이 달랐다. 어느덧 배가 일출 속으로 나간다. 나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무엇을 잡으러 가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배는 이미 아침 햇살로 만선을 이룬 상태였다.


해를 바라보며 보낸 며칠
시인 최갑수 씨의 제주 형제섬

바람따라 길따라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올레길 1코스 말미오름을 걷고 있는 여행객.

최근 몇 년간 연말에서 연초로 이어지는 한 달여는 정신없이 바빴던것 같다. 지난해에는 유독 그랬다. 송년, 신년 특집 원고를 써대야 했고 이런저런 술자리에 불려다녀야 했다. 출판사에 넘겨야 할 단행본 원고도 밀려 있었다. 20여 일 정도 이어진 무지막지한 마감과 일정을 겨우겨우 마무리했을 때였다. 책상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어지러웠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서류 뭉치와 책, 카메라와 컵라면 등등등. 거울에 비친 모습도 끔찍했다. 어느새 해가 바뀌어 있었다.

나는 꽃기린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내놓았다. 어항의 물을 갈고 물고기들에게 밥을 넉넉하게 주었다. 그러고는 완도로 가는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랐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텐트와 코펠, 버너, 슬리핑 백, 쌀, 김치, 와인, 통조림 몇 개, 책과 CD가 가득 들어 있었다.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제주에 갈 때마다 반드시 가는 곳이다. 다랑쉬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순해진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와 시흥리 말미오름에서 시작해종달리와 시흥 해안도로, 성산일출봉을 거쳐 광치기 해안에 이르는 올레길 제1코스도 걸었다. 약 15km에 달하는 이 코스는 오름과 제주의 푸른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구간. 한나절 걷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왼쪽) 바람 부는 들판에서 바라다본 다랑쉬오름.

그러고는 텐트를 쳤다. 함백해수욕장 근처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나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녁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 해변에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웠다. 와인도 곁들였다. 수평선에 어화가 하나둘 불을 밝혔고 밤하늘에는 별이 돋기 시작했다. 바람도 잔잔했다. 온도계를 보니 기온은 4도. 방한복을 입고 있어 추위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섬이 바람에 떠밀려 태평양의 어느 한 귀퉁이로 난파될 것만 같았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성난 짐승같은 바람이 밤새 텐트를 뒤흔들었고 나는 10분 마다 잠에서 깨어 폴과 팩, 당김줄을 확인해야 했다.

결국에는 잠자는 것을 포기했다. 랜턴을 켜고 카우보이 정키스와 개비지, 찰리 해이든을 들으며 커피을 마셨고 요제프 쿠델카의 사진집을 보았다. 바람을 닮은 이 사진작가는 ‘프라하의 봄’이 실패로 돌아가자 1970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평생을 무국적자로 유랑하며 살았다. 그리고 일생을 바쳐 집시를 찍었다. 그의 사진에 가슴이 먹먹해져 고개를 들어 바라본 수평선 자락에는 이승의 것이 아닌 것처럼 어화가 환했다.


1 올레길 1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광치기 해안. 겨울 바다에서는 혼자보다 둘이 낫다.
2 형제섬 앞 송악산 해변에서 본 일출 풍경. 거친 현무암과 뿌옇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집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는 사이 수평선 너머부터 희미하게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나는 텐트에서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무작정 차를 몰았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해를 만난 곳은 형제섬 앞이었다. 사계 포구에서 1.5km가량 떨어진 바다에 솟은 2개의 바위섬인데, 두 섬이 마치 형제처럼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고 해서 형제섬이라고 불린다. 거기, 새벽녘 불을 밝히는 어선의 행렬이 사라지고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텐트는 제주도의 거센 바람을 잘 견뎌주었지만, 나는 밤마다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해가 뜨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고 부글거리는 바다 위로 솟구치는 햇덩이를 보았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쌀도 떨어졌고, 김치를 담아온 휴대용 그릇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통조림도, 와인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젠 슬슬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 다시 트랙을 달려야지. 눈앞에 풍차가 있다면 돌진해야지.’

현실은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엉망이고, 우리가 아무리 극진하게 살아도 우리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결국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한 생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까닭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가장 흔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이 아마도 여행일 테고. 그래서 나는 굳이 먼 길을 달려 이곳 제주도까지 떠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새벽마다 해가 뜨는 곳으로 차를몬 까닭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 그건 어쩌면 가장 상투적인, 하지만 가장 고전적인 위로와 다짐의 방법이니까.

구성 정세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