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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문화 공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지난 10월 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 1970년 남산에 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건립되고 40년 만의 일이다. 이 건축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새 기념관의 건립으로 남산 터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는 점, 그리고 건축물은 전시를 위한 단순한 외피가 아닌 그 자체가 전시의 스토리여야 한다는 어느 부부 건축가의 지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관 곳곳에는 무명지를 끊고 독립운동에 대한 결의를 다진 안중근 의사를 회고할 수 있는 유품과 여러 상징물을 전시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유대인 박물관은 비단 인종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더라도 독일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이는 세계적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beskind의 1998년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분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내부 전시물은 차치하더라도 당시 유대인이 받았을 혼란과 고통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선과 선이 만나 이룬 예각이 굽이진 통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처음 건축물이 완공됐을때 유대인 박물관은 내부에 어떤 전시물도 설치하지 않고 건축물 자체만 먼저 대중에게 공개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홀로 코스트를 경험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나오는 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박물관의 전시 패널, 영상 등 그 어떤 현란한 설명으로 관람객에게 시각적 만족을 준들 이렇듯 온몸으로 체험하는 직접 경험을 따라갈 수 있을까.

기념관을 건축한다는 것은…
기념관은 인물을 기념하는 공간인 동시에 공공장소라는 이중적 의미를 띠기 때문에 그에 꼭 맞는 건물을 짓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자의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기능을 배제한 채 기념관을 지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쉽고, 반대의 경우에는 너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의거 101년, 순국 100년을 기리는 의미에서 남산에 새로 지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계와 건축을 맡은 D·림 건축사사무소의 김선현 대표와 남편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임영환 조교수는 설계와 공사만 4년 가까이 걸린 이 긴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뇌리에서 그 생각을 지운 적이 없다. 김선현 대표는 “의미 있는 건축물을 짓는다는 책임감에 숱하게 밤을 새웠습니다. 국민의 세금과 성금, 수많은 사람의 염원을 담아 짓는 공간이 기념관이기에 안 의사의 삶과 철학을 기념 공간에 투영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부부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계 도면을 만들기에 앞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롤모델로 떠올렸다. 임영환 교수는 “기념관을 기념관답게 만드는 것은 관람객이 체험할 분위기와 마음가짐인데, 그것은 곧 건축적 매개 방식과 연관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이 빠져 있는 기념관은 결국 현란한 전시 방법과 아무도 읽지 않는 깨알같은 글들로 채운 전시 패널에 의지할수밖에 없지요”라고 말한다. 부부 건축가가 밤낮없이 논의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2010년 10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결실을 맺었다. 덤으로 2010년 서울시 건축상 공공 부문 최우수상을 거머쥐는 영예까지 안았다.




1 외부에서 전시 공간으로 들어오는 길의 주 출입구에 건축가 임영환 씨(오른쪽)와 김선현 씨가 서 있다.
2, 6 반투명 유리로 뒤덮인 건축물 외관. 남산의 자연을 그대로 머금은 듯 온통 푸른빛이다.
3 전체 전시 동선상에서 유일하게 중복되는 참배홀. 관람객이 관람 시작과 끝에 안 의사의 영정을 볼 수 있도록 한 건축가의 의도다.
4 유리 기둥 12개는 안중근 의사의 후광에 가려 우리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단지동맹 12인을 의미한다.
5 멀리 한강까지 조망할 수 있는 남측 계단실. 부부는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나서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밖으로 나가도록 설계했다.


친환경 전문가가 지어 남다르다
새로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구관을 철거하고 기존 건물 뒤편의 작은 광장에터를 잡았다. 기념관이 자리 잡은 대지 주변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신사 터로 60여 년 전까지 신사참배를 종용받던 곳이다. 부부는 이 치욕의 땅에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모시는 기념관을 건립해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제일 먼저 반투명 재질의 외관이 눈에 띈다. 이중 U형 유리 ‘유글라스’라는 소재다. 친환경 인증전문가인 임영환 교수가 억지스러운 연출을 최대한 배제하고 남산의 자연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 반투명 질감은 남산 주변 고목의 푸름을 머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며, 부부의 표현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안 의사의 유묵 遺墨과 어록이 적힌 경사로 길의 진입로 ‘명상의 길’은 전이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시야에서 서서히 남산의 자연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안 의사의 어록이 보이며 마침내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자연스레 연결된다. 역사적 기념관인 만큼 관람객으로 하여금 관람 전에 충분히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한 건축가의 ‘의도된 배려’다. 가로 35m, 세로 49m의 직사각형 대지 안에는 12개의 기둥이 자리한다. ‘12’라는 숫자는 안중근 의사의 후광에 가린 단지동맹 12인의 역사적 인물을 의미한다. 건축가는 1909년 자신의 무명지를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그들 속에서 안중근 의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12개의 기둥 조형을 강조하기 위해 기둥 사이에 투명한 전창을 끼웠는데, 이는 관람객에게 내부에서 전시 관람과 동시에 남산의 절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덕에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를 두루 넘나들 수 있다. 예부터 온고 지신이라고 했던가. 과거로의 역사 여행 중 유리에 남산의 초겨울이 비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현재도 발견할 수 있다. 문의 02-3789-1016

건축가 임영환 씨는 미국 건축사 와 친환경 인증 전문 자격을 갖추고 국내외에서 15년 이상 다양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는 빌리지 앳 뉴어크 Village at Newark, 공주 공예공방촌 등이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2010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건축가 김선현 씨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도미해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D·림 건축사사무소 (02-703-6784)의 대표와 서울 시립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김호일 관장 인터뷰

“기념관은 우리의 선조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우리나라 어린이가 많이 찾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기념관을 사료 위조로 운영하다 보니 딱딱해서 어린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기념관에는 별도의 체험 전시관이 마련돼 있어 안중근 의사 단지 혈서 엽서 만들기와 유묵 찍기, 퀴즈 풀기, 편지 쓰기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어린아이들의 안 의사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만화책 등도 북 카페에 비치해놓을 예정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교실에서만 배우지 말고 현장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우리 기념관이 나아갈 길입니다.”
글 황여정 사진 박영채(외부), 김재윤(내부,인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