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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가족 파티 제안]홍천 최병랑 씨 가족의 동지 파티 풍경 읅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오는 12월 22일은 동짓날입니다. 올해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 대신 우리 세시를 다시 짚어보는 ‘동지 파티’를 제안해보면 어떨까요? 밥 먹듯 초대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는 즐거운 가족, 홍천 최병랑 씨 댁을 찾았습니다. 누구든 거두어 먹이는 게 낙이라는 최병랑 씨와 추운 날씨에도 흔쾌히 모여 즐거워하는 가족과 하루를 보내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고 심신이 쾌활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팥죽 냄새를 폴폴 풍기며 즐거워하는 이 가족을 보니 ‘행복도 습관이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 유학길. 결혼 후 미국 유학 생활을 하다 새로운 식재료로 도전하는 요리의 매력에 푹 빠져 ‘출출닷컴’이라는 요리 정보 블로그를 오픈해 인기를 끌고, 귀국 후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인 메이 씨. 일본 우라센케 다도를 즐기고 궁중 자수 전수자에게 전통 자수를 배우는 등 사뭇 ‘고풍스러운’ 취향을 가진 것은 모두 그가 영감의 원천이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홍천 이모님’ 덕분이다. 평생 주부로 살았지만 워낙 감각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는 최병랑 씨. 작은 소품 하나라도 그가 고르면 특별하고, 음식 솜씨까지 뛰어나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조카에게도 직언을 아끼지 않는 그가 얼마 전 주말 주택이 있는 홍천에 흙집과 다실을 지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홍천에서 그릇도 굽고, 요리도 하고,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도 여는 문화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을 했어요. 차를 좋아하니 차 마시는 공간을 생각했고, 그래서 딱 한 칸짜리 흙집 다실을 지었지요. 아궁이에 불을 때면 다실은 황토 찜질방이 돼요. 덕분에 홍천은 가족에게 더욱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죠.”

사실 홍천 이모님 댁에 초대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파티 촬영을 위해 이 가족을 만났을 때 촬영과 상관없이 ‘진심을 다해’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터라 ‘파티 하는 가족’의 인터뷰이로 적격이다 싶었다. “동지 파티요? 아, 일본 다도에서도 이맘때 팥죽을 먹는 차회가 있어요. 안 그래도 다음 차회를 기대하면서 팥죽을 먹고 싶었는데, 가족 모임 삼아 미리 한번 모여볼까요?” 은은한 차향이 가득한 홍천 흙집에는 그렇게 얼렁뚱땅 동지 파티가 열렸다.


거둬 먹이는 게 낙
매서운 추위가 함께한 흙집에서의 동지 파티. 게스트가 모두 가족이라지만, 그래도 손님인지라 좌불안석할 법도 한데 평소 밥 짓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우선 가족 관계를 정리하면, 오늘 모인 이들은 메이 김유진 씨를 기준으로 모두 외가 친척이다. 그의 외가는 특히 여자 형제가 많다. 6녀 1남 중 최병랑 씨가 넷째, 김유진 씨의 어머니가 다섯째다. 오늘 호스트인 최병랑 씨가 맞은 첫 번째 게스트는 조카 메이와 조카 손녀 지원이, 바로 아래 여동생이자 김유진 씨의 어머니인 최병령 씨. 오늘은 좀 더 특별한 손님, 막내아들이라 별명이 황태자인 최병관 씨 부부도 함께했다.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병관 씨는 넷째 누나의 부름을 받고 강의도 빼먹은 채 천안에서 호두과자를 한가득 안고 달려왔다. 그의 아내 안영주 씨는 흙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레 부엌으로 향했다. 서로 소란스런 인삿말은 생략하고 쪼그리고 앉아 삶은 팥을 체에 으깨는 모습이 마치 어제도 만난 이들처럼 자연스럽다.

파티 준비는 홍천에 먼저 내려와 터를 잡고 함께 살고 있는 여섯째 이모 최병옥 씨 부부의 도움이 컸다. “홍천 이모들은 모두 솜씨가 좋으세요. 파리에서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고 집을 짓던 막내 병옥 이모는 어느 날 갑자기 홍천에 터를 잡았지요. 당시에는 얼마 못 가 서울로 돌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덧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홍천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아이디가 ‘은둔거사’일 만큼 속세에 뜻이 없지요. 서울에서, 파리에서 도시인으로 살던 이모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던 이모부가 땅을 파고, 씨를 심고, 농사를 짓고… 오늘처럼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최병랑 씨의 파티 준비에 철칙이 있다면, 모든 준비를 단 두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이다. 데커레이션도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고집을 가졌기에 흙집에 어울리는 자연 소재나 전통 소품 몇 가지를 더해 포인트를 준 정도. 인위적이지 않고 정갈하게, 먹는 사람을 배려해서 먹기 좋게 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메뉴는 팥죽 한 그릇과 시원한 동치미를 애피타이저로 내고 모시조개 된장국과 삼색 나물, 팥밥, 고등어구이 등 평소 해 먹는 속 편한 시골 밥상을 준비했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인 뒤 미리 빻아둔 찹쌀가루로 새알심 재료를 준비하고 팔팔 끓는 물에 팥을 넣어 푹 삶는다. 불린 멥쌀과 새알심을 넣고 푹 끓여 완성한 팥죽. 가마솥에 끓이니 비주얼부터 남다르다.

하얀 자기 그릇에 담아 더욱 먹음직스러운 팥죽. 음식은 메이 씨가 담았다(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메이 씨는 얼마 전 <소박한 한 그릇>이라는 일본 가정 요리 레서피 책을 출간했다). 테이블 세팅의 백미는 질그릇에 툭 담겨 있는 석류와 유자, 모과다. 자연 재료를 센터피스로 활용한 감각적인 테이블 세팅과 음식 준비까지, 아침부터 고생스럽지 않았느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모두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최병랑 씨. “팥죽은 이렇게 가마솥에 가득 팔팔 끓여야 제맛이에요. 사람이 많을수록 맛있게 먹을 수 있으
니, 이렇게 추운 계절 가족 모임 때 딱 좋은 메뉴지요.”
당신이 간을 본 숟가락으로 다시 휘휘 젓는 손길에는 모두들 잘 먹고 건강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터. 맛이란 그 차림이 소박할수록, 그 정성이 더해질수록 또 먹는 자의 마음이 편할수록 빛이 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탁에서, 툇마루에서, 부엌 한쪽에 서서 팥죽 한 그릇 뚝딱 비우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보니 시장만이 반찬은 아니구나 싶었다.

(왼쪽) 흙집에는 원래 있었던 듯 자연스러운 미감의 전통 고가구가 배치되어 있다. 보석함은 종이나무 갤러리, 옻칠함은 봉산재, 보라색 비단은 금단제.
(오른쪽) 커다란 질항아리에 빨간 열매 가지를 툭툭 꽂으면 멋스러운 동지 파티 오브제가 된다. 달항아리는 정소영의 식기장 제품.




1
식사 전 애피타이저로 팥죽 한 그릇씩.
2 마치 엄마와 딸, 혹은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내는 최병랑 씨와 조카 메이 씨.
3 팥죽 한그릇씩 뚝딱 비우니 자연 먹을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4 인위적이지 않고 정갈하게 세팅하고, 먹는 사람을 배려해서 먹기 좋게 담아내는 것이 최병랑 씨의 철칙이다. 그릇은 이도 갤러리, 버선은 꼬세르, 자수 노리개와 오너먼트는 하늘물빛, 리스는 은채 제품.
5 흙집에 단아하게 잘 어우러지는 전통 소품. 옻칠한 소반에 손거울과 빚 등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소반은 봉산재, 바늘꽂이와 거울은 금단제, 함은 종이나무 갤러리, 브로치는 꼬세르 제품.
6 지난봄 주말 주택 옆에 흙집을 새로 짓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최병랑씨는 동지 파티를 위해 가족을 불러 모았다.


먹고 즐기고 취미를 나눠라
“이모 두 분이 서울에서 떨어진 시골에, 그것도 물 좋고 산 좋은 홍천에 집을 가지고 계신 것이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에요. 늘 언제나 아낌없이 그 공간을 열어주니 아무 때나 들러 쉴 수 있으니까요. 도로가 잘 뚫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에다, 부담 없이 먹고 마음껏 뛰놀 수 있으니 다들 주말마다 ‘건수’를 만들기 바쁘지요.” 이제 서울보다 이 홍천에서 모이는 게 더 편하다는 김유진 씨는 3년 전 겨울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유난히 딸이 많아서인지 가족 모임이 잦은데, 3대손까지 모이면 인원수가 많아서 어디를 가기보다는 두 이모가 있는 홍천 집에서 모이는 것이 편하다고. 저녁이 어스름하게 깔릴 때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노는데, 이렇게 모닥불을 피우면 어른들은 마음속 이야기를 쉽게 터놓게 되고, 아이들은 고구마와 옥수수를 구워 먹으면서 가족은 물론 자연 먹을거리의 소중함까지 배울 수 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집은 여자들이 많다 보니 말도 많아요. 끊임없이 수다가 이어지다 보면 특별히 놀이 프로그램을 짜지 않아도 시간이 쑥쑥 지나가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남자들 차지예요. 겨울철에는 실내 놀잇감을 준비하는데, 동지 파티니 전통 윷놀이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늘은 여섯 살 지원이가 삼촌 할아버지에게 윷놀이를 배운 날. 여자들은 어느새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황토 구들방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앉아서 얘기를 시작하지만 좀 지나고 보면 다들 눕게 된다. 가족 모임을 할 때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하면 좋다. 오늘 간식은 식어도 쫄깃쫄깃 맛있는 가래떡. 어른들은 묵은 간장에 찍어 먹고, 아이들은 꿀을 찍어 주면 좋아한다.



1 산골이라 오후 5시가 채 되기도 전에 해가 넘어간다. 파티의 압권은 조명이라 말하는 최병랑 씨. 소소한 가족 모임에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즐길 때면 대문부터 마당 한가득 초를 켠단다. 조명은 종이나무 갤러리.
2 삼촌 할아버지와 윷놀이를 즐기는 여섯 살 지원이.
3 남자들을 위한 놀 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4 여자들의 최대 놀잇감은 생산적 수다! 화롯가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른다.
5, 6수년간 다도를 배운 차 마니아 최병랑 씨. 일본 다도에도 11월 중순에는 팥죽을 먹는 차회가 있다.
7 석류와 모과 등 향이 좋은 과일은 테이블 위에 두면 그 자체로 내추럴한 오브제가 된다. 트레이는 선혁구디 제품.


사실 일가친척이 모이려면 워낙 수가 많다 보니 다 함께 모이는 일이 불가능하다. 어쩌다 모이면 어색하고, 그러다 보니 결국 친한 사람끼리만 만나게 되는 것. 최병랑 씨 가족도 마찬가지다. “다 함께 모이려면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모임이 이루어지면, 가족이니 금방 친해져요. 가족이라도 자주 보지 않으면 서먹해질 수 있고, 밥하는 게 일이라 생각하면 모임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데, 누군가 총대를 매주면 좋지요.” 메이 씨는 무언인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더욱 좋다는 조언을 덧붙인다. 최병랑 씨와 이모 조카 지간이 아닌, 마치 엄마와 딸처럼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차를 비롯한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기 때문이다. 가족 파티에서도 게임을 하거나 자연스럽게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앨범을 보는 등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이 좋단다.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의 유품 중 자식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편집해서 다 함께 돌려봤어요. 각자에게 쓴 편지도 읽고 다른 형제에게 쓴 편지도 읽고, 미래의 손자 손녀에게 쓴 편지도 읽으면서 오직 가족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을 나누고 울고 웃곤 했죠.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모이는 가족 파티에는 만들기 쉽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홍천에서 많이 나는 표고버섯은 천일염을 살짝 뿌려 포일에 싸서 구우면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제 곧 온 거리에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반짝반짝 화려한 오너먼트 일색인 연말이다. 올 크리스마스 파티는 3일 먼저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동지 파티’로 콘셉트를 잡아 버선이나 솔방울로 오너먼트를 만들어 달고, 아이들과 함께 새알심을 만드는 등 우리가 잊고 지내는 세시의 의미까지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만약 안데르센이 이곳에 있었다면 성냥팔이 소녀가 환상에서 본 따스한 난로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정겨운 크리스마스 풍경의 무대를 이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연 속의 흙집에서 ‘동지 파티’. 가족에게는 또 한 가지 색다른 추억이 쌓인 셈이다.

인테리어 스타일링 이승희ㆍ이소영(스타일링하다) 패션 스타일링 박명선 소품 협조 금단제(02-517-7243), 꼬세르(02-737-6586), 나성숙 옻칠(봉산재, 02-766-6649), 선혁구디(02-3443-3708), 이도(02-722-0756), 은채(www.eunchaestyle.com),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종이나무 갤러리(02-766-3397), 지플레르(02-3446-4127), 크로스포인트 갤러리(02-797-7211), 전통한복 김영석(02-2230-1147), 하늘물빛(www.macart.co.kr)

진행 이지현 기자 사진 박충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