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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떠나요, 경주]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석굴사원, 골굴사 무예로 되살아난 화랑도의 혼 魂
어두컴컴한 새벽, 골굴사 마당에서 가부좌를 틀고 동해를 바라보며 동이 트길 기다렸다. 곧 푸른 여명이 밝아오고 사람들은 해의 정기를 흠뻑 빨아들였다. 새벽 명상으로 시작해 선무도로 심신을 치유하고, 옛 조상의 정신을 느껴보는 골굴사 템플 스테이. 1천5백 년 전 인도에서 온 승려가 절벽에 굴을 파고 부처를 모신 그 모습 역시 신비롭기만 하다.

1 대적광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 컴컴한 새벽, 명상을 시작해 여명이 밝아오면 각자 몸을 움직이며 해의 정기를 받는다.

품을 함 含 달 월 月, 달을 머금은 산이라는 뜻의 함월산. 그 자락에 자리한 골굴사 骨窟寺는 경주의 동쪽 지대로, 감포 앞바다를 바라보는 곳이다. 새벽 4시, 예불 드릴 시간인데 밖은 아직 깜깜하기만 하다. 하늘은 별이 쏟아질 듯 가까이 있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청명하게 산속 공기를 울린다. 그 소리를 따라 골굴사로 올라가니 법당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리에 앉는다. 템플 스테이로 절에서 묵고 있는 이들이다. 감히 법당 안에 들어갈 생각은 못 하고 서성이고 있는데, 그런 객을 지나 백구 한 마리가 법당에 들어가 자리를 틀고 앉는다.
“아, 동아 보살은 지난 3월 입적하셨습니다.” 취재 전 보림 법사와의 통화에서 분명 ‘예불을 드리는 진돗개’ 동아는 저세상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눈앞에 있는 백구는 누구란 말인가. 강아지때부터 스무 살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경건한 자세로 예불을 드리던 동아 보살과 달리, 꾸벅꾸벅 졸기도하는 모습이 꽤 어설퍼 보이는 한 살 된 강아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골굴사에 사는 개로, 현재 절에 있는 네 마리의 개가 모두 예불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보통 진돗개가 가축을 해치는 습성이 있지만 동아는 살생을 하지 않았고, 죽기 전 노환에 치매였지만 매일 예불 때 올라왔어요. 동아 때문에 절에 있는 다른 개들도 자유롭게 법당에 들락거릴 수 있게 됐죠. 이제 저놈들 자리도 다 정해져 있어요. 큰스님이 짐승도 다음 생에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게끔 계속염불을 하고 축언을 하십니다.” 절을 찾는 신자들도 이런 동아 보살을 기특하게 여겨 경건한 예불 시간에 개들도 함께 참여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동아 보살이 있을 때는 동아를 보기 위해 절을 찾는 이도 많았지만, 이제는 목에 염주를 건 것까지 동아와 똑 닮은 새끼 ‘소아’와 아직 산짐승을 해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자주 참회를 하는 진돗개 ‘곰돌이’가 그윽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2 석회암 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불좌상.


3 골굴사의 네 마리 개는 모두 예불 때 들어온다. 다음생에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라고 하는 것. 그러나 아직 한 살 된 강아지는 졸리기만 한 모양이다.


4 발우공양을 위한 그릇들.
5 예불 올리는 개로 유명하던 동아 보살을 위해 절 입구에 세운 동상.


일단 절 입구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주는 개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고, 입구를 지나쳐 골굴사로 올라가면 석굴사원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불국사보다더 오랜 역사를 지닌 골굴사 석굴사원은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광유 성인 일행이 석회암 절벽 정상에 마애여래불좌상(보물 제581호)을 새기고 암석에 12개 석굴을 만든 절이다. 꼭대기에 있는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얼핏 건축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모두 돌로 이루어진 석굴이다. 법당굴을 비롯한 다른 굴은 그 크기가 다양한데 여러 형태의 불상을 모셔놓았다. 가파른 절벽 옆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곳곳에서 만나는 석굴은 이제껏 보지 못한 신비로움을 안겨준다. 애초에 석굴로 시작한골굴사는 대략 20여 년 전 지금의 설적운 주지 스님이 온 이후로 확장돼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곳 골굴사에서만 볼 수 있는 ‘선무도 禪武道’는 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어스름한 새벽녘 아래에서 바라본 선무도는 자못 아름답기까지 했다. 춤을 추듯 나풀거리며 움직이는 손가락 끝으로 흘러내리는 곡선, 여기에 더해지는 절도 있는 힘.
선무도라는 말은 약 25년 전부터 사용해왔다고 한다. 불교의 아나파나사티(숨을 들이마쉬고, 내쉬고, 의식을 집중하는 호흡법으로 불교의 참선 수행의 바탕이 된다) 수행, 즉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를 통한 전통적 수행법이 선무도의 내적인 바탕이고, 외형적 형태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승병의 무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승병들이 나섰죠. 화랑의 무예도 승려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몇백 명씩 집단으로 승려가 모여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승병 무예가 폐지됐고, 전통 불교 수행법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자취를 감췄다가 1960년대 부산 범어사의 양익 스님께서 무예를 복원하셨습니다.” 설적운 주지 스님은 승려들의 고난도 수련을 현대인이 따라 하기 쉽도록 약간 변형을 했고, 그때 선무도라고 이름을붙였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스님들의 수행법이었다면, 현대인을 위해 변형한 선무도는 명상이나 요가처럼 심신을 치유하는 목적에 더욱 가깝다.


선무도는 손끝까지 흐르는 선과 힘이 더해져 부드럽지만 강한 움직임을 만든다.


1 골굴사 옆으로 가파른 절벽이 있다. 꼭대기에 마애여래불좌상이 새겨져 있고, 절벽 곳곳에 여러 형태의 불상을 모셔놓은 석굴이 있다.
2 행선(걷기 명상)을 시작한 사람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음마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다.


선무도를 배우기 위해 절을 찾는 사람이 꽤 많은데, 한번 체험해보고자 한다면 골굴사 템플 스테이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92년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템플 스테이를 시작했으며, 1년에 2만 8천 명이 찾아올 정도로 템플 스테이 가 활발하게 행해지는 곳이다. 그 가운데 외국인이 2천 명 정도 차지한다. 골굴사를 찾은 그날도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외국인이 여럿 눈에 띄었다.이들이 골굴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일과 중 가장 먼저 하는 새벽 예불이 끝나고 이들이 모인 곳은 대적광전 앞. 아직 어두컴컴한 그곳에 하나둘 자리를 펴고 동해를 바라보고 곧게 앉았다. 곧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여명. 겹겹이 쌓인 산자락 저 뒤로 해가 뜨고, 그때까지 명상에 잠겨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떠오르는 태양의 기를 받았다. 새벽 좌선 후 오륜탑 언덕에서부터 울창한 수목의 기운을 받으며 걷기 명상을 시작한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선무도 수련의 하나인 요가와 기공을 하고, 108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저녁 예불을 올린 뒤, 다시 본격적으로 선무도 수련과 참선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골굴사 주변으로는 옛 승병들의 본부이던 기림사와 문무대왕수중릉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옛 조상들의 호국 정신이 깃든 성지로 천년 전부터 우리를 지켜온 신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고요한 도시 경주의 호젓함 속에서 조상의 호국 정신을 만나고, 깊은 심연에 빠진 나를 발견하는 것도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골굴사는 경주 시내에서 40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골굴사로 향하는 토함산 길과 동해를 낀 바닷길은 아름답기로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 골굴사 템플 스테이는 선무도를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이 포함돼 독특하다. 다른 사찰의 템플 스테이보다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는 편이다. 오후2시경 입산해서 다음 날 점심 공양 후 하산한다. 1박 2일 5만 원. 한 달 이상 장기로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문의 054-745-0246

김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