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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 돋보기] 너도나도 책 내는 세상
이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은 대형 서점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출판물입니다. ‘아현동 풍경을 그린 스케치북’ ‘서른 살 봄을 추억하는 일기’ ‘사람과 물건에 관한 인터뷰’. 머릿 속으로 생각만 하던 ‘책 만들기’의 꿈이 ‘소규모 출판’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이 책들은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소규모 출판’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을 오롯이 기록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우리 모두 가슴에 품고 사는 이야기, 그 삶의 잔상을 누군가와 나눌 묘안은 결국 ‘책 만들기’밖에 없다. 진심을 전달하는 데 책만한 소통 수단이 또 있을까. 또한 누구나 책 만들기에 대한 열망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지않을까. 종이 매체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 출판’ ‘소규모 출판’이라는 말은 출판사 주도의 책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소수 그룹이 기획과 편집, 때로는 인쇄까지 도맡아 출판하는 것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서브 컬처 sub culture’로 성행하고 있는 이 문화는 문서 편집이 가능한 개인 PC와 레이저 프린터의 발전과 함께 한층 활발해졌다. 최근 1~2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독립 출판물을 내놓는 작가들이 부쩍 늘고 있으며, 유통 채널 또한다양해지고 있다.
10월 3일까지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소규모 출판> 전시가 이러한 현상을 증명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상상마당 홍보팀은 “사람마다 가슴에 품은 이야기는 많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어떠한 수단과 과정으로 전개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입니다. 책을 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현실적 문제고요. 또 막상 책을 냈는데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다면 책을 낸 본래의 의미도 퇴색하겠죠. 이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적당량의 페이지, 좋은 사진과 레이아웃,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가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상상마당에서 주최한 소규모 출판 전시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32 pages book design’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써잘 전달하기 위한 ‘가장 쉽고 적합한 방법’이 바로 32페이지 형태이기 때문이다. 상상마당은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32페이지 소책자 만들기 강좌’를 열어 그 결과물을 이번 전시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소규모 출판 강의를 맡은 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섭 씨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32페이지 소책자는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가장경제적인 ‘꼴’입니다. 수강생은 10주 수업을 통해 기획서 작성, 디자인 콘셉트, 인디자인 프로그램, 표지 디자인, 전체 레이아웃 등을 배우죠. 기획부터 최종 출력까지 편집의 전 과정을 체험하다 보면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다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렇게 터득하며 만든 결과물은 그 어떤 책보다 좋은 교재가 되죠.”32페이지 소책자를 비롯해 소규모 출판사의 정기 간행물, 1인 출판물, 비주류 잡지를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어떤 형태로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체험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미처 몰랐을 뿐 지구 상에는 무수히 많은 ‘종이 책’이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홍대 상상마당 ‘소규모 출판’ 전시장.

출판평론가 변정수 씨는 소규모 출판이 활성화되야 하는 이유를 시장 원리에 빗대어 이렇게 설명한다. “100만 부 팔리는 책을 100종 만드는 사회보다 1만 부 팔리는 책을 1만 종 만드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100종이 100만 부 팔리나 1만 종이 1만 부 팔리나 경제적 가치의 총합은 같지만 100종을 만드는 비용과 1만 종을 만드는 비용은 하늘과 땅 차이죠. 냉정한 시장 원리로 보자면 같은 비용으로 더 낮은 효과를 올리는 방식은 시장에서 도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출판을 시장 원리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1999년에 창간한 월간 문화 잡지 <싱클레어>의 김용진 씨는 “문화는 다양성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가진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소규모 출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지금까지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싱클레어>를 비롯해 현재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독립 출판물은 200~300여 종이나 되며, 상수동 ‘더북소사이어티 (www.thebooksociety.org)’와 창성동 ‘가가린(02-736-9005)’처럼 소규모 출판물을 유통하는 서점도 존재한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논현동의 복합 문화 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는 올해로 2회째 독립 출판 페어도 열리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증거, 우리가 소규모 출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32 pages book design-2기 강좌’는 2010년 9월 29일부터 개강하며,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 상상마당 아카데미 별관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소규모 출판> 전시는 10월 3일 까지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