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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떠나요]방 두 개짜리 호텔, 그리고 카페, 레스토랑, 공예 숍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 여기게 하는 복합 공간
이 아줌마를 만난 것은 서울의 북촌 골목이었습니다. 일본 사람, 책도 여러 권 출판했고, 공예를 아주 좋아하여 숍도 내고, 방이 두 개뿐인 예쁜 숙박 시설도 있고, 사람들이 줄지어 이 집의 카페에서 식사를 하려고 기다린다…는 소개에 남다른 아줌마로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시무라 유키코, <행복이 가득한 집> 독자들께 소개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일본의 ‘나라’로 취재를 갔습니다.

창가에 올려놓은 호박. 이렇게 하얀 호박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싶을 만큼 조각 같은 느낌이 드는 색이다.


네 채의 집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왼쪽은 방이 두 개뿐인 호텔.


넓은 창문이 있는 집이 중앙에 자리 잡은 카페 겸 레스토랑. 회색 덱은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 오른쪽 작은 집 두 채로 연결되는데, 갤러리와 맨 오른쪽의 공예 숍이다.

30여만 명 인구의 중소 도시 ‘나라 奈良’는 우리나라 국가라는 의미의 발음대로 붙여진 일본의 지역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낯설지도 않고, 그리 감동받을 만하지도 않은 느낌으로 도착했습니다. 넓지 않은 대나무 숲 모퉁이를 돌아 나무 계단으로 이 집을 올라섰을 때, 작은 탄성이 터져나온 것은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안도감이 이 집의 느낌과 똑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키시노 모리 秋篠 の森’라는 간판에 포도 넝쿨이 감싸고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 취재거리가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 직감에 기뻤습니다. 절대로 으리으리하거나 값비싸다 여겨지는 자재로 만들지 않은 집, 하나하나 감각이 살아 있어서 만만찮은 집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회색 페인트를 칠한 덱 deck으로 연결된 이 집은 숙박동, 식당, 작은 갤러리, 숍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에 펜션을 하던 것을 6년 전에구입해서 이렇게 고쳤다고 합니다.
꼭 두 개의 방이 있어서 어떻게 불러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호텔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마루가 로비 역할을 했습니다. 트윈 베드가 있고, 덱으로 나갈 수도 있는 여유로운 방이 딸려 있습니다. 조용한 가구들, 면이 좋아 보이는 침대보, 더욱 면이 부드러운 잠옷, 다구 茶具들, 창가에 놓인 자잘한 열매들, 작은 꽃꽂이로 꾸민 인테리어는 쉰다는 것에 부담감을 전혀 주지 않는 적절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카페 겸 식당은 제법 넓고, 재료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테이블이 한열 개쯤 놓여 있을까요? 창턱을 넓게 만들어 그 위에 소품을 두고마당에서 꺾어서 꽂은 듯한 화병을 놓은 모양, 계산대 바로 앞에 놓인 몇 권의 책이 높은 천장 아래에서 더욱 정겨웠습니다. 점심, 저녁은 외부 사람도 이용할 수 있지만, 아침만은 여기서 묵은 사람들만을 위해 준비합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그릇, 테이블보, 물컵까지 모두 감각 있는 공예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칡, 천마, 채소등 나라 지역 특산물인 음식 재료부터 요리 선생이 개발한 요리와 어떤 작가의 그릇이고 스푼인지까지 보태져 식사 전에 긴 설명을 들어야 했습니다. 함께 나오는 술까지 모두 나고야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나라의 옛 이름이라는 야마토 소고기는 다른 나라에까지 유명한 고베 니쿠보다 더 낫다고 설명하는 그녀의 이 도시에 대한 남다른 자긍심이 부러웠습니다.



방이 두 개인 숙박동의 로비는 보통 집의 마루 같은 느낌. 벽에 건 옛날 초롱, 마른 나뭇가지, 장식장, 의자 등이 정겨움을 자아낸다. 대나무가 내다보이는 방 안의 창가. 아래 오른쪽은 공예 숍 가기 전에 만나게 되는 작은 갤러리.


창문이 보이는 곳이 카페 겸 레스토랑. 오른쪽 아래는 야외 테이블 위의 재떨이, 방문 열쇠. 이런 소품도 공산품이 아니고 각자의 자리에서 손맛을 느끼게 한다.

식당을 나와서 옆 건물로 가면 아주 작은 갤러리가 있고, 그 옆에 딸린 공예 숍이 나옵니다. 호텔과 식당에서 보던 모든 소품은 다시 이곳에서 전시되고 판매됩니다. 자기들이 실제 사용해보고 적절하다싶은 것을 자신 있게 이 숍에 내놓는다 합니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경험해보고 좋으면 사갈 수 있도록 한 셈이고, 고객은 저렇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쇼룸과 시제품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개념으로 판매를 하는 곳이 제법 많지만, 이 집의 특별한 점은 적절함과 진정성에 있는 것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여기서 편안하게 묵고, 맛있게 먹고, 좋은 것을 사는 경험은 인생의 몇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고 나긋하게 평화로운 조각보에 쌓인 듯한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염색을 전공했다는 이시무라 씨는 전국을 다니면서 생활에 잘 쓰이는 기능을 갖추면서도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공예품들을 찾아다닌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것 같지만 일본에서도 대부분 작가의 작품은 팔리는 데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 부담을 덜기 위해 위탁 판매를 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시무라 씨는 애초부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위탁하면 파는 쪽에서 팔아야겠다는 마음도 느슨해지고, 작가는 언제 팔릴지도 모르는것을 막연하게 내놓고 있어야 하므로 양쪽 모두에게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공예란 본디 작품의 접근 방식이 생활 속에서 쓰이도록고민해야 하며, 작가 또한 생활을 리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 사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의 선순환이 이뤄질 때 바람직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반문을 합니다. 그녀는 이를 공예행동론이라 말하고 싶다면서, 선순환 구조 속에 장인 匠人과 그 정신으로 모두 행복해야 하므로 파는 직원도 분발하도록 설득하는 좋은이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금 들고 전국의 작가를 쫓아다니며, 이렇게 구체적으로 많이 팔아주는 작가가 30여명은 족히 된다고 합니다.

다음 날 자동차를 타고 나간 시내의 기찻길 옆 주차장은 그녀가 운전하고 온 자동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자동차가많았습니다. 이시무라 씨는 “아,오늘도 손님이 벌써 이렇게 많군” 혼잣말을 하는데, 11시가 조금 넘은 무렵이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내려다본 간판이 그녀가 설명해주던 ‘호두나무(구루미노키)’, 의자가 반쯤 튀어나오게 만든 간판이 또 마음을끌었습니다. 낡고 특색도 없어 보이는 집은 푸른 덩굴잎으로 치장해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데, 커다란 창문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와 진열된 상품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잡화점이라 부르는 여기에는 호텔 숍에서 보던 것보다 더 다양한 물건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파는 집인지보다, 어떤 감각과 스타일을 판매하는지가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공간은 카페 겸 식당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오전 11시와 오후 1시 두 번의 식사 예약 시간을 정해놓아 주차장이 벌써 가득했던 것입니다. 호텔에서도 그랬듯이 빵과 채소는 물론 고기와 술도 모두 나고야에서 생산한것으로 준비한다고 합니다. 25명 정원의 식당은 1천5백엔, 3천 엔 정도 하는 메뉴로 연간 6억 엔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고 합니다. 이 카페 옆에는 작은 연결 공간이자기다리는 공간이 있고, 면 티셔츠나 잠옷 등 패브릭을 중심으로 구성한 숍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낡은 집을공예 숍, 카페로 만든 것이 25년 전이었다 합니다. 한 가지 더욱 두드러진 인상은 공예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책들의 판매였는데, 책꽂이에 꽂지 않고 무심한 듯 의자 위에 몇 권 두거나 낡은 책상 위나 바구니 속에 넣어둔 전시 방법이 자연스럽고 느낌이 좋았습니다. 또한책이 놓인 풍경은 손님들이 지적 知的 소비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했습니다. 이시무라 씨가 출간한 책만 6권이나 됩니다. 아키시노 모리, 구루미노키를 비롯해 심지어 그녀가 방문한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가지고 책 한 권을 묶은 것을 보면 이미 출판사에서도 그녀의 안목을 중요시 여기고 있고, 그만큼 혜안을 가진 독자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위 사진은공예 숍. 누군가 쓰다가 버렸을지도 모를 평범한 가구를 그대로 이용해 판매할 물건을 진열한 감각이 돋보인다. 호텔 방에 손님용으로 비치해둔 잠옷도 판매한다. 잠깐 사이에 맑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화병의 꽃꽂이들.

사람들이 그녀를 카페 갤러리의 선구자라고 부르고,‘나라에 가고 싶을 때는 구루미노키에 가고 싶다’ 라고생각하는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일본 아줌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법도 합니다. 작가도 아니요, 어마어마한 대기업가도 아니요, 생활에 동떨어진 것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므로 누구든 해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은 묘한 높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정과 눈썰미 좋은 이시무라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업 수완이나 경영 감각도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0여 명 되는 직원도 3년이 넘지 않으면 여기서 근무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도록 당부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곳에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자기 마음에 드는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므로 봉사하는 기쁨을 체득해야 하고, 제품과작가에 대한 스토리와 감각 그리고 애정을 충분히 말할 수 있기 전에는 여기서 일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쩍 바빠져 남편을 이 사업에 끌어들여 회계와 관리를 의뢰한 지 몇 년쯤 된다고 합니다. 남편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 숫자를 틀리곤 해 해고할까 고민하다가 아예 회계학 공부를 다시 하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웃었습니다. ‘전문가란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어쩌면 이시무라 씨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유기적이고 종합하는 열정과 애정으로 전문적인 사람이 되었고, 이런 마음이 경영을 가능하게 한 것 같습니다.호두나무의 일본어 ‘구루미’라는 발음은 제게는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을 연상시켰지만, 이시무라 씨에게는 흘러가지 않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교사였기에 어릴 때부터 늘 할머니와 둘이서 집에 남겨진 그녀가 열심히 본 어린이 프로가 <치로린 마을과 호두나무>라고 합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이 다음 이런 이름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며 막연히 생각했답니다.


이시무라 유키코 石村 由起子, 그리고 그가 펴낸 6권의 책들. 아래는 레스토랑의 아침 식사 테이블. 식사 전에 촬영했다. 다양한 종류의 절인 채소로, 색깔을 생각하면서 그릇에 담은 듯하다.



그녀는 겨우 열한 살 때 이미 이름과 할 일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스물아홉 살부터 엄마와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고백했다는데, 어쩌면 외로움이 만든 꿈이지만 결국 꿈을 이룬 것입니다.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구루미노키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일 년에 두 번쯤 초청 판매전을 여는데, 일주일에 3천 명 정도가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높다고 합니다. 올해 안에 세련된 민예촌을 만들려는 다른 도시에서도 숍을 열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고 있으니 이제부터 그녀의 꿈은다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시무라 씨에게 왔다 가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나요? “집에돌아가면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결심하게 된다고 해요. 더불어소소한 것들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고요.”
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결심을 하게 만드는 이 일에서 가장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인생에는 넘치는 애정이 필요하다고믿어요.”
한국에는 몇 번이나 다녀갔어요? “네 번쯤 갔는데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또 갈 거예요. 한국 공예에 대해 책도 구상하고 있어요.”넘치는 애정을 가진 이 아줌마가 서울에 오면 우리 <행복> 독자들과 한번 만나게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위 사진들은 호두나무라는 뜻의 ‘구루미노키’ 간판과 레스토랑 입구. 그녀가 쓴 6권 책을 비롯해 공예 관련 책자들을 다른 상품 사이, 작은 테이블 위, 혹은 이렇게 작은 나무 의자 위에 진열해놓고 판매한다.


이시무라 씨가 잡화점이라 부르는 공예 숍.


오전 11시, 오후 1시 두 번의 식사 예약 시간을 갖는다는 레스토랑.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