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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파리 정치대학 교수·문화 비평가 기 소르망의 서울 담론 서울, 여자 그리고 도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의 오랜 친구이자 소설가 이문열 씨의 충실한 독자인 ‘지한파 지식인’ 기 소르망.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 교수이자 문화 비평가, 세계적 석학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서울, 여자 그리고 도시’에 관한 단상을 이야기한다. 모던한 초고층 빌딩과 오래된 금은방이 공존하는 용산의 거리를 바라보며 ‘카오스적 도시’는 언제나 아름답고, 그것이 바로 ‘서울의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미래학자. 은유와 절제, 직설과 통찰로 가득한 그의 언어에 기대어 잠시나마 서울의 미래와 세계화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는 악수를 청하며 “아임 프렌치 라이터 I’m French writer”라고 짧게 말했다. 엘리건트한 노타이 슈트와 꽃처럼 부풀어 오른 행커치프보다 더 완벽한 소개였다. 기 소르망 Guy Sorman이라는 이름 앞에 따라 붙는 거창한 수식어를 가볍게 누른 이 근사한 프랑스 남자는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듣고 있는 것처럼 이완된 표정으로 백자 앞에 서 있다. “백자는 ‘도자기계의 모나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아름답고 우아하죠. 사람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비대칭 구조와 순백의 신비함은 한국적 아름다움의 극치예요. (백자 옆에 전시된 도자기를 가리키며) 이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작품이죠. 푸른색으로 그려진 문양을 보세요. 너무 화려하고 장식적이 잖아요.” 불과 한 시간 전, 삼성동의 어느 호텔 프랑스 식당에서 인터뷰 약속이 있었던 우리는 어느새 국립중앙박물관을 순례하며 백자에 관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몽준 회장과의 오찬이 길어져 약속 장소에 갈 수 없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삼성동 호텔에서 그의 다음 일정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수행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 ‘약속을 어겨 미안하니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로 가서 인터뷰를 하겠다’ ‘빠듯한 일정에 녹초가 되었으니 한 시간만자고 인터뷰를 해도 되겠나’ ‘호텔로 가려고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다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의 표현대로 한국 사람들은 마치 레몬을 짜내듯 그를 쥐어짜고 있었다.
‘21세기 프랑스의 지성’ ‘경제와 정치 분야의 세계적 석학’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문화 비평가’ 교수, 칼럼니스트, 작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자문위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기 소르망은 지난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국을 방문해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연구한 ‘지한파 지식인’이다. 그가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을 찾은 이유는 11월에 열리는 G20 국가정상회담에 앞서 각국의 문화 리더를 초청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C20(Culture20)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대표로 참석한 그는 20개국 참가자 가운데 한국에 대한 식견이 가장 넓은 인물이다. 덕분에 쉴 틈 없이 빡빡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회의 석상에서도 좌장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이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최정화 교수(CICI 이사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전화를 받고 단번에 승락했죠. 최 교수는 내가 못 간다고 하면 간다는 대답을 할 때까지 전화 통화로 나를 괴롭힐 게 분명하니까요(웃음). 한국 여성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해요. 그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에 힘이 불끈 솟을 정도죠. 그 도시에 사는 여성을 보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척도나 경제 성장 속도를 가늠할 수 있어요. 한국은 정말로 많이 변화했죠.”
그는 서울 여자와 파리 여자의 매력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한참 고민하다 뜻밖에 아내와의 결혼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가 아내를 처음만난 건 지인의 저녁 식사 초대에서였다. “모델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제 옆에 앉더군요. 그녀를 보는 순간 ‘우리 결혼하자.’그렇게 말했어요. 더 놀라운 건 아내가 ‘그래, 하자.’ 그러는 거예요. 아내는 입생로랑의 모델이었어요. 모델을 하다가 패션 디자이너가 됐고, 지금은 패션 기자로 일하고 있죠. 아내가 모델로 일하던 시절 나는 종종 질투심에 불타올랐어요. 세상 모든 남자가 아내를 쳐다보는 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아내에게 모델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당신이 물건 같아서 싫다고 대답했죠. 아내는 ‘나는 물건이 아니고 자유로운 여성’이라며 저를 깨우쳤어요. 그녀가 날 ‘교육’시킨 셈이죠. ‘촌스러운 공부벌레’이던 나를 이렇게 성장시킨 것도 전적으로 아내예요. 여성이 똑똑하고, 여성의 선택권이 다양하고, 여성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는 발전할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파리 여자도, 그리고 서울 여자도 모두 아름다워요.”


고작 두 컷을 촬영했을 뿐인데, 그는 벌떡 일어나 “It’s over”라고 말했다. 당신이 너무 멋있어서 딱 한 컷만 더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는 “I know”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한국을 ‘발견’하게 해준 사람들 우리는 박물관을 빠져나와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도로는 엉망이었고, 덕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들을 따돌리고 한 시간 남짓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인터뷰를 하니까 너무 좋군요. 시간도 절약되고 서울 거리를 보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까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행복> 9월호를 그에게 내밀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던 기 소르망은 50대의 일반 여성을 모델로 한 패션 화보를 보며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 여기에 해답이 있군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모던하고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넥타이 컬러를 조언할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다. 행사 기간 동안 통역을 담당한 관계자의 귀띔에 따르면 그는 영부인이 손톱을 무슨 색으로 칠했는지조차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나 또한 ‘세계적 석학’에게서 “바지를 어디서 샀느냐?”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동대문이라는 서울의 유명한 쇼핑 타운에서 샀어요. 혹시 동대문을 아시나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위 Oui!”라고 외쳤다.
기 소르망이 패션만큼 관심과 애정을 쏟는 분야는 다름 아닌 현대 예술이다. 그가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현대 예술가들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을 처음 ‘발견’한 것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고. 당시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전혀 몰랐지만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백남준과 자주 만나 한국 문화와 문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점은 농경 민족(조직 문화)과 기마 민족(개인주의)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문화가 만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나라. 그가 느낀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약소국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문화를 간직한 신비의 나라였다. 이제는 친구가 된 소설가 이문열 씨의 작품도 한국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문열씨의 작품을 모두 읽었고, 최근에는 영어로 번역된 작품도 읽고 있다고. “만약 이문열 씨가 극우적 성향을 띠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겁니다. 그는 정치적 발언만 하지 않으면 완벽하죠(웃음). <황제를 위하여>는 샤머니즘부터 유교, 불교, 기독교, 니힐리즘까지 한데 연결해
내는 역량을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에요.”
그는 지금껏 만나온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 정책을 펼칠 때 그에 찬성했죠. 하지만 결과에 대해 환상을 갖지 말라고 조언했어요. 그가 펼치는 정책은 통일과같은 구체적인 결과를 낳을 수는 없는 것이었어요. 북한과의 관계에서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얻으려면 중국을 통해야 합니다. 일례로 북한에서는 아직도 1년에 몇백 명씩 굶어 죽는 아이가 생겨나죠. 그들을 도울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요. 중국을 통해서 원조하는 거예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원조를 해봐야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식량이 가지 않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국을 거치지 않은 우리만의 햇볕 정책이 통일이라는 결과물을 가져다줄 거라고 기대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환상이죠.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로맨틱한 무언가를 꿈꾸지 않아요. 아주 현실적이죠.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북한 뒤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정책을 펼친다는 점에서 그를 지지해요. 거듭 말하지만 중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어요.”

카오스적 도시, 서울 “제가 처음 한국에 온 게 1986년이었어요. 그때 지방에 있는 어느 공장을 방문했는데 시설이 무척 낙후돼 있었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어요. 프랑스로 돌아갔을 때 친구들이 묻더라고요. 한국 여자들이 예쁘냐고. 전 어떤 여자를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25년이 흐른 지금 한국 여자들은 세계 어느 도시의 여자들보다 패셔너블하고 스마트하게 변화했죠. 이건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예요. 전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잘발전했는가를 볼 때 여성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어 있는가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2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은 놀라울 정도예요. 그 지표는 바로 서울 여자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기 소르망은 서울을 비롯해 뉴욕, 도쿄, 베이징, 뉴델리, 이스탄불, 산티아고, 모스크바, 자카르타, 멕시코,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하면서 일관되게 세 항목에 집중했다. ‘민주주의’ ‘여성의 사회참여’ ‘현대 예술의 활성화’. 이 세 가지가 역동적으로 발달한 도시는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덧붙여 그는 아름다운 도시, 비전을 갖춘 도시는 ‘혼돈을 겪고 있는 도시’라고 정의했다. 여러 세대의 문화와 스타일이 공존하고 부딪치는 과정이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그는생각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한국은 빠르게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서울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국을 방문한 것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화를 이루어내는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한국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서울의 미래, 도시의 미래 “20년 후 서울은 어떻게 변화할 것 같은가요?”라는 마지막 질문에 기 소르망은 “초고층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소도시가 많이 생겨나고, 그 소도시를 이어주는 편리한 교통망이 발달할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그것이 ‘아시아의 도시 모델’이 될 것이 라고도 예언했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점점 도시를 떠나 생태 마을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서울에는 주상 복합이나 초고층 빌딩이 너무 많이 들어서고 있죠.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요. 한 부동산 업자에게 물어봤죠. 2만 명이 우글거리는 초고층 빌딩 숲에 누가 살려고 합니까?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죠? 그랬더니 부동산 업자가 말하더군요. 아니요! 모두들 그곳에서 살려고 야단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말로만 생태 도시를 꿈꾸는 것 같아요. 결국 도시를 벗어날 수 없으면서 말이죠. 생태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저 이상향에 불과해요. 이론적 개념과 현실의 구체적 개념이 상충하는 거죠.”
그는 최근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지구촌 곳곳의 변화를 기록한 보고서 <원더풀 월드 Wonderful World>를 출간했다. 그의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한 내용은 ‘미래의 도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대목이었다. 누군가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물을 때대부분의 사람은 “서울에 삽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다가올 시대에는 “서울에 삽니다”가 아닌 “2010년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기 소르망은 그 근거와 비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태어난 고향은 오랫동안 그 사람의 운명과 세계관을 지배했었다. 심지어 여행을 하거나 이민을 가더라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자기 지역이나 나라에 늘 묶여 있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점점 ‘지역’의주민에서 ‘시대’의 주민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라는 조건이 지리적 조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출신지와 민족이 한없이 다양해진 지금, 우리는 시간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의 행동 방식은 피부색이나 언어, 문화보다 시간의 흐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그 사람이 현재 어디에 있고,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이민자들과 젊은이들, 국제적인 엘리트들은 그 시대의 중심에 가장 잘 맞는시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더풀 월드> 13쪽 중
모두가 움직이고, 모두가 이동하며,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 그 움직임과 정체성의 변화를 그는 ‘세계화’라고 부른다. 또 세계화된 시대를 사는 ‘글로벌 서울 시민’이라면 몇 가지 소양은 갖추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고 진정한 의미의 제2, 제3 외국어를 학습해야 한다. 둘째, 서울의 대학과 학계가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해서 외국 대학의 캠퍼스가 서울에 문을 열어야 한다. 셋째, 한국이 지금까지는 노동과 자본의 집약으로 성공했지만, 이제 더 이상 저 임금 국가와 경쟁할 것이 아니라 서유럽과 미국 등 고임금 국가와 경쟁해야 한다. 넷째, 한국을 상징할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엔 후지 산, 프랑스엔 에펠탑, 미국엔 자유의 여신상이 있듯, 한국을 떠올릴 때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브랜드가 아닌 상징적인 뭔가를 떠올리게 해야 한다. 그의 칼날 같은 조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당신도 ‘미래의 도시인’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기 소르망이 가르쳐준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건 신분증이 아니라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을 인식하는것, 그리고 각자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다.

(오른쪽) 미래학자 기 소르망의 세계화에 대한 보고서 <원더풀 월드>.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