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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깨 읽는 글]껍데기를 깨고 세상에 나와야 할 아이들 세상의 중심에서 당당하게 외쳐라
찌질한 아이들의 페스티벌 그날 밤, 부모들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뜻도 모를 대사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몇 녀석이 등장해 한 아이를 때리고 밟는 시늉을 했다. 언뜻“빵 사와라”는 욕설 섞인 대사만 들렸다. 아하! ‘빵돌이’ 얘기를 하는가 보군. 요즘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에게 매점 가서 빵 사오라고 시킨다더니. 하지만 무대에서 저희들끼리 잠깐 옥신각신하던 열댓 명의 어린 배우들은 우르르 내려가고 그만이었다. 여름방학 청소년 캠프에 딸아이를 보냈더니 그중 하루 저녁, 부모들을 그 자리에 초대했다. 아이들이 배운 것을 발표할 예정이니 구경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두어 시간은 고통이었다. 정작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 그중 한 아이에게 “어디서 온 누구냐?”고 사회자가 물었다. 제 이름 석 자 말하기가 세 쌍둥이 낳기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그 잠깐을 못 견디고 몸을 배배 꼬다가, 뒤통수를 긁다가, 인사도 없이 게걸음으로 내려갔다. “뉘 집 아들인지 참 찌질하다.” 옆에 앉아 있던 한 엄마가 쓱 쳐다본다. 그날 아이들 손에는 휘황찬란한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들은 저마다 벽에 붙어서는 열심히 전화를 두들겨댔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게임을 하고 뮤직비디오를 본다.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이 가히 예술이다. 그렇게 미디어에 정통한 아이들이 조금 전 꿀 먹은 벙어리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수능 면접을 대비해 프레젠테이션 과외를 받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음악교육과 미술교육, 글쓰기 훈련 등 적어도 한두 가지씩 사교육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 무엇을 배운 것일까?

숫기가 없는 게 아니라 싸가지가 없는 거겠지. 내 친구는 어디에서건 인사하는 아이에게 돈을 준다. 얼마 전 함께 길을 걷다가 어떤 꼬마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대뜸 지갑을 열어 돈을 주는 게 아닌가. 이유는 간단했다. “요즘 어른한테 인사하는 애들이 없잖아. 이렇게라도 하면 제 친구들한테 자랑하지 않겠어?” 의사소통의 기본은 알은 척하는 것이다. 누구든 만나면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인데 멀뚱멀뚱 서 있는 아이가 절반이요, 머리만 꾸벅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꼴을 보고도 아무 말 안 하는 부모가 더 문제다. 어른이 먼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라도 쓰다듬을라치면 뒷걸음질하는 아이. “우리 애가 숫기가 없어서요”라고 편드는 부모를 보면 ‘숫기가 아니라 싸가지가 없는 거겠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아이에게 말해줘야 한다.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거란다. 어디 한번 해보렴.” 의사소통의 1단계는 인사다. “잘생겼구나. 네 이름은 뭐니?” 2단계가 통성명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다음 칭찬을 하든가, 하다못해 돈이라도 쥐여주자. 그리고 주춤주춤 돈을 건네받는 아이에게 3단계를 가르치자. “자,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어떤 부모는 “우리 앤 돈 몰라요. 주지 마세요”라며 물색없이 호들갑을 떤다. 누군들 주고 싶어 주겠는가.

이런 선생님 어디 안 계신가요? 교복 대신 방탄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LA 교외 우범지대의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고등학교. 흑인, 멕시코인, 아시아인 등 각기 다른 피부색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저마다 갱단의 일원인 양 건들거린다. 특히 203호 교실은 그중에서도 문제아로 가득 찬 곳. 선생이 있든 말든 저희끼리 장난이 한창인 아이들. 그때 뒤에서 한 녀석이 왕따 흑인 친구 샤로드의 얼굴을 종이에 그려 반 아이들에게 돌렸다. 입술을 우스꽝스럽게 부풀린 그 그림을 보며 아이들은 낄낄 웃어댔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본 샤로드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다. 참다못한 선생이 그 그림을 빼앗아 들고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건 나치들이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때 썼던 그림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너희들은 지금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선생님, 그런데 홀로코스트가 뭐예요?” 그 질문으로부터 위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선생은 <안네의 일기>와 공책 한 권씩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아무거나 느끼는 대로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너희들이 허락한다면 공책에 쓴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의 캐비닛에는 아이들의 공책이 가득 찼다. 그 공책에는 인종차별과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어린 영혼영혼들의 눈물과 한숨, 그러면서도 세상을 밝게 살아가려는 희망의 메시지가 넘쳐흘렀다. 그렇게 ‘자유의 작가들 Freedom Writers’이 탄생했고, 그들이 쓴 글은 책으로 출간됐다. 동네의 내로라하는 골칫덩이 1백50명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했다. 그중 몇몇은 미국 전역에 자유의 글쓰기 운동을 전파하는 민들레 꽃씨가 되었다. ‘자유의 작가들’에겐 수호천사가 있었다. 에렌 그루웰 Erin Gruwell 선생님.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어른이 필요하다. 세상의 중심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녀석들의 함성이 듣고 싶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