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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전원일기- 귀촌사례]소목 작업 위해 산청으로 간 김상림 씨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나무 품에 깃들다
한때 서울 인사동의 명물이었던 액자집 ‘못과 망치’의 주인 김상림 씨는 9년 전쯤 서울살이를 접었다. 귀촌하여 공주에서 2년, 강화에서 6년을 보냈고, 여기 경상남도 산청에서 시간을 묵힌 지 3년째이다.

나무 건조장에서 건조 중인 원목에 앉은 김상림 씨와 딸 세윤 씨.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산청으로 온 세윤 씨는 부친의 작업을 도우며 액세서리 디자인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액자집 주인에서 소목 장인으로 “김상림 씨는 서울 인사동의 액자 만드는 집 ‘못과 망치’의 주인이었는데, 그 명성이 대단했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그의 남다른 (액자 만드는) 솜씨를 깊이 사랑했거든. 상상력과 작가 정신이 남다르다 싶은 분이었는데 결국 2000년 초쯤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이 되어 강화도 산속에 공방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리고 최근에는 산청의 작업실에서 가구 만들기에 매진하고 계신다는 것 같아.”
<행복> 23주년 창간 기념호 특집에서 귀농ㆍ귀촌 작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이 보내준 이메일에 그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 잘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2000년대 초 젊음을 다 바친 인사동 시절을 정리하고 이곳까지 밀려오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본능 때문인 것 같아요.”김상림 씨의 집과 작업실은 집 옆으로 개울물이 흘러내리고, 아침이면 긴 밤을 산허리에서 보낸 구름 무리가 보이는 산중에 자리하고 있다. 내비게이션도 길을 잃고 헤매는 심산유곡. 취재진이 작가 홀로 지내는 그곳을 찾았을 땐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딸 세윤 씨가 산청으로 와 부친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의 일상은 아침에 해가 뜨고 해거름에 어두워지는 것처럼 단출하고 규칙적이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해 부녀가 함께 1시간 정도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작업 시간은 새벽 산책 후부터 아침 식사 시간 전까지, 그리고 점심 식사 후 몇 시간 정도라고 하니 그 흐름이 농사꾼의 일상적인 흐름과 비슷하다.
“하루하루가 정말 좋습니다. 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지요. 자유로움 속에 절대 질서가 있다고나 할까요? 시골 생활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항상 쉬는 듯 긴장하지 않으면 생활이 아주 힘들어져요.”전남 진도에서 자란 어린 시절, 학교를 지으러 온 목수들의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대패질과 대패에서 쭉쭉 나오는 대팻밥에 반해 나무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그가 나무로 액자를 만들다 목가구 작업에 이른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길이 아닐는지.

1 김씨가 만든 나무 액자와 신문 기사 스크랩,책상이나 화장대로 써도 좋을 콘솔. 맨아래엔 서안.


2 작업의 동반자인 망치. 그가 소장하고 있는 연장은 600점가량이다.
3 그저 무심하게 창가에 걸어둔 톱과 촛대.



4 나부끼는 듯 보이는 ‘춤 시리즈’.

진도에서 지리산까지, 현대판 유목민의 초상 스스로는 본능적으로 산청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주 익숙하고 편안한 정서가 배어 있는 그의 가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안, 탁자, 벤치, 콘솔, 수납장, 액자, 거울 등 그가 이름 붙인 작업들은 적확한 짜임새, 편안하고 부드러운 촉감, 마치 본래 그러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명징한 쓰임새를 보여준다.“스스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제가 여기에 온 후 맑고 밝아졌어요. 성격적으로 좀 내성적인 편인데다 그늘진 구석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온 후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폭도 넓어지고, 전혀 새로운 디자인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나무, 물 이런 게 좋아서 그런가? 전에는 작품을 통해 뭔가 드러내고자 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담백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그의 작업은 대개 그런 식이다. 나무를 잘못 자르면 나무에게 미안하므로 그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숙고하여 나무의 본성을 살리려는 식이다. 그것이 나무 작업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근작들에서는 나무에 본래 내재되어 있는 선을 자연스럽게 살린 경우가 많이 보인다. 나무의 물성을 존중하므로 흠조차도 예술적 특성으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나무도 한 번 자르면 다시 붙일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어떤 나무는 선도 좋고, 형태도 좋고, 색깔도 좋고, 무늬도 좋은데 (작품으로)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리 쓰임새를 찾으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나무가 있어요. 참 답답해요.(웃음) 그럴 땐 하는 수 없이 다시 건조장으로 돌려보내죠.”
인사동 ‘못과 망치’ 시절, 그는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찾아 다녔다. 전국 각처를 돌면서 찾은 나무를 원목 그대로 3년 정도 묵혀두고 비 맞히고 바람 맞히면서 나무의 진이 빠지도록 했다. 그러고는 그 나무를 제재소로 옮겨 필요한 만큼 켜서 그늘에서 자연 건조시키는데, 이 모든 시간을 더하면 15년쯤 된다. 그러니 굳이 따진다면, 그의 구체적인 귀촌 준비는 15년 전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뜬 무지개.
2 느티나무로 만든 자목상 自木像을 배경으로 앉은 김상림 씨. 그는 요즘 전시장과 교육장을 겸한 복합문화공간 마련을 구상하고 있다.


‘때’의 중요성 일깨우는 자연의 삶 중년의 남자가 홀로 귀촌한다는 것은 분명 보통의 용기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등. 귀촌 열정에 사기충천하다가도 살림 생각만 하면 푹 사그라지는 경험을 해본 것은 남자만이 아닐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상림 씨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자였다. 혼자 살림이지만 매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새로 짓고, 온갖 정성을 들여 된장찌개를 끓인다. 맛도 맛이지만, 만들고 먹는 과정의 풍요로움을 즐길 줄 아는 까닭이다.
“우리 뿌리가 흙이고, 따지고 보면 우리는 결국 흙을 먹는 셈이에요. 우리가 먹는 농산물이라는 게 죄다 흙을 먹고 자랐으니까요. 그러니 좋은 농산물을 먹으면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웃음).”일상을 무디게 사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똑같이 반복되는 쳇바퀴 돌기이겠지만 감수성 예민한 작가에게 있어 매 순간은 어느 하나도 똑같지 않다. 하물며 푸성귀 하나를 보면서도 그 뿌리를 찾는다니. 그런 사람에게는 어제 본 나무와 오늘 보는 나무가 다르고, 오늘 본 나무와 내일 볼 나무가 다르다. 김상림 씨의 관찰력을 빌리면 한 나무의 이파리들이 같은 바람을 맞는데도 맞이하는 그 자세는 매양 다르다고 한다.
“자연의 삶은 그때그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레 알게 해줘요. 올해는 쑥을 많이 캤는데, 제아무리 쑥을 캐고 싶어도 제때가 아니면 쑥을 캘 수 없어요. 그 시기를 놓치면 이듬해까지 기다려야 하죠. 그렇다고 내년에 다시 그 쑥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어요.”

김상림 <못과 망치>전
지난 8월 18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눔’에서 시작된 김상림 초대전 <못과 망치>전이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강화도 작업실과 경남 산청 작업실 시절의 가구 20~25점, 작은 탁자 등 소품 20여 점 등, 총 60여 점을 선보인다. 김상림 씨의 나무 작업 역사 20여 년을 집약한 전시라 할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단순한 것이 특징. 15년 동안 자연 건조한 느티나무, 참죽나무, 오동나무, 소나무로 만든 서안, 콘솔, 차탁 茶托, 벤치, 수납장, 액자, 거울 등을 전시한다. 그중 서안, 책장 등 옛 사랑방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 주목된다. 문의 02-723-5324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