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감성 아이디어] 예술과 만난 한가위
우리가 잊고 지낸 전통 세시 풍속을 들여다보면 선조들의 섬세한 지혜에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족의 예술혼을 담은 영롱한 정가 正歌 가락, 마치 한 폭의 풍속화를 옮겨놓은 듯한 가을 한복, 풍요를 상징하는 달 설치 작품까지…. 오는 9월 3일부터 17일까지 가회동 이도 갤러리에서 패브릭 스타일 전시를 펼치는 디자이너 장응복 씨가 한가위의 흥과 정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전통과 예술이 만나 더없이 풍요로운 한가위 정경.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금빛 모란 문양을 사용한 한복 ‘모란 빈티지 Moran Vintage’는 모노 콜렉션 제품.

정가의 고요한 울림, 자연을 담은 전통 패브릭, 오색찬란한 달 오브제…
가을을 느끼게 하는 빛깔은 많다. 처마에 걸린 깊은 하늘의 푸른빛, 말간 홍시의 붉은빛, 추수기 벼의 노르스름한 빛…. 그중에서도 토실토실 잘 여물어 가을바람에 만경 금파를 이루는 벼의 빛깔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근해를 항해하다 볏짚을 엮어 이은 초가집 지붕을 보고 황금의 나라라 경탄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 황금덩이의 금빛과는 다른 깊은 멋이 풍기는 금빛, 이것이 바로 완연한 가을의 색이다.

오월 농부 팔월 신선
우리 속담에 ‘더도 덜도 말고 그저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음력 8월 보름날, 설과 함께 가장 큰 민족 명절로 꼽히는 한가위는 가윗날, 가배, 중추절, 추석 등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추석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대부터 전해오는 ‘달’에 대한 믿음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한 달에 한 번 만월 滿月을 이루는 달은 늘 고마운 존재였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하던 시절,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던 어둠을 환히 비추는 만월이 되면 마을 곳곳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축제를 벌였다.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음력 8월 15일인 추석을 큰 명절로 여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햇곡식과 햇과일, 그리고 온 밭에 무성히 자란 푸른 채소를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초가을 보름날.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는 말처럼 추석은 한 해 한 번 누구나 신선이 되는 날이었다. 먹을거리와 놀 거리가 풍부하지 않던 그 시절, 추석 명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 중 하나였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 음식을 장만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정담을 나누고, 온 동네 사람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든다. 이맘때가 되면 투박하게 빚은 송편, 앞마당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홍시, 솥 한가득 끓인 토란국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두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이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청 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추석의 풍류를 소재로 한 시구에서 알 수 있듯 추석에는 흥겨운 놀이 문화도 넘쳐났다. 모두 모여 술을 빚고 밤이 되면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을 맞았는데, 둥근 보름달을 지상의 놀이에 옮긴 것이 여인네의 강강술래와 남성들의 쾌지나칭칭나네요, 보름달의 둥글고 밝음을 일터에 옮긴 것이 바로 두레 길쌈의 풍습이다.
강강술래의 어원은 감감 술래. ‘감고 감아라, 수레바퀴를!’이라는 뜻을 담은 노랫말로 이는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동서양 상관없이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에 풍작을 기원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서양에서는 한 해 농사가 끝나고 추수까지 모두 마친 다음 온 국민이 함께 추수 감사제를 지낸다. 우리의 추석은 추수하기 전 그 첫 열매로 음식을 만들어 먼저 제사상에 올리는 풍년 감사제로, 조상들께 정중히 예를 갖춘다는 점이 서양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이 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귀한 햇곡식으로 맛있는 송편을 빚고,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가족과 재미있는 이야기 타래를 푸는 한가위. 배부르고 마음까지 부른 한때를 추억하며 읊조린다. 일 년 내내 한가위만 같아라!

(왼쪽) 정가는 정악 중 성악곡을 뜻하는 것으로,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상하고 바른 노래라는 뜻이다. 민요가 진솔하고 순박한 노래라면 정가는 궁중에서 시작한 고상하고 품위 있는 노래로, 맑은 소리를 으뜸으로 친다. 정가는 청아한 음색이 으뜸인 ‘가락’, 반주와 함께 부르는 ‘가사’, 생활 속에서 접하는 자연과 풍류를 노래하는 ‘시조’로 나뉜다. 정가 가곡과 시조를 전수받은 정마리 씨가 그리움의 노랫말이 담긴 시조를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읊고 있다. 면과 리넨 혼방 소재 한복은 산수의 능선과 물결을 모티프로 한 ‘산수 웨이브 Sansoo Wave’ 로 모노 콜렉션에서 판매. 화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세라믹 스툴은 이헌정 작가의 작품으로 갤러리 서미에서 판매.

이목을, ‘공(空)-830’. 목판 위에 오일, 255×162cm, 2008



관복장에서 모티프를 얻은이층 지장 ‘캐비닛 아무르 Cabinet Amoir’는 겉면은 한지와 백색 리넨으로 마감하고 내부는 십장생 실크 패브릭을 사용해 화려한 느낌을 더했다. 강줄기처럼 연출한 모듈 쿠션은 정선 원단을 사용, 똑딱단추가 있는 디자인으로 연결해 매트처럼 사용할 수 있다. 모델이 입은 얇은 시어 소재 한복 ‘플라워 조각보 시어 Flower Jogakbo Sheer’는 전통 조각보를 모티프로 한 제품. 모두 모노 콜렉션에서 판매한다. 달항아리는 이은범 작가의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단상 위의 질그릇 청연과 온유 시리즈는 모두 이윤신 작가의 작품으로 이도 갤러리에서 판매.


소박하고 담담한 멋
청정한 가을 하늘 아래 환한 빛으로 드러난 시골 장독대 풍경을 상상해보라. 한낮이면 가장 큰 장독의 뚜껑을 열곤 했는데, 이는 독 안의 장이 가을볕을 고르게 받아 장맛을 더욱 깊게 하려는 어머니의 세심한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우리네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장맛을 책임지는 장독대의 옹기들은 아침저녁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 언제나 반질반질 윤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가을 하면 으레 떠오르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말끔히 닦인 옹기그릇의 빛깔이 아닐까. 풍요를 상징하는 매끈한 달항아리부터 자연 빛깔 그대로의 지장, 질박한 질그릇까지, 푸근한 할머니 마음씨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배어난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의 곡식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에는 이듬해에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반 트레이 BAN tray’는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씨, 나주 소반장 김춘식 씨와 협업, 제작한 것으로 접착 가공한 패브릭 위에 투명 도료를 코팅해 평소에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정선의 금강산도를 모티브로 장응복 씨가 디자인한 화첩은 미니 파티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작은 스툴의 방석이나 쿠션으로 사용하는 원형 방석 ‘임브로이더리 EMBROIDERY’, 패치워크 이불과 베개 ‘딜라이트 실크 패치 프로덕트’는 모두 모노 콜렉션 제품. 분청 소재 컵과 국그릇, 접시는 모두 도예 작가 이윤신 씨의 작품으로 이도 갤러리에서 판매.


* 더 많은 정보는 <행복이 가득한 집> 9월호 78p를 참조하세요.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