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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읽는 글] 멀리, 높이 나는 새에게 바치는 조언 네 입을 크게 벌리라
입 큰 놈이 밥도 많이 먹는다 흥부전의 주인공 제비의 전성시대가 한 물 갔습니다. 요즘은 처마 밑에 집 짓는 제비도 없고, 사모님 울리던 강남 제비조차 소식이 뜸합니다. 이젠 동물원에나 가야 제비를 볼 수 있습니다. 제비를 영어로 ‘스왈로 swallow’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꿀꺽 삼키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눈도 못 뜬 제비 새끼는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오면 노란 주둥이를 엄청 크게 벌립니다. 어미 새가 그중 한 놈의 입에 먹이를 쏙 넣어주면 놈은 제 머리통보다 더 큰 먹이를 꿀꺽 삼키지요. 그런데 어미 새가 어떻게 먹이를 골고루 나눠주는지 아십니까? 방금 먹이를 삼킨 새끼는 배가 불러 입을 크게 벌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입이 클수록 배고픈 놈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선지 옛 어른들은 입술 두툼하고 입이 큰 아이를 보면 “고놈 나중에 밥술깨나 먹겠구나” 하셨습니다. 성경에도 ‘네 입을 크게 벌리라. 내가 채우리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꿈이 커야 받는 복도 크다는 뜻이겠지요. 스왈로의 동의어로 ‘걸프 gulp’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 이 단어를 씁니다. 번지 점프대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 적 있으십니까? 신랑 집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시어머니 되실 분이 “과일 좀 깎아보라”며 곁눈질로 보시던 기억 나십니까? 입안이 마르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긴장의 순간을 걸프라고 합니다. “난 안 돼. 절대 못해”라며 주저앉고 싶지만 피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걸프의 순간을 잘 넘기면 인생의 한 계단을 올라서게 됩니다. 남자들이 입만 열면 군대 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걸프의 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지금 사람 구실하며 사는 것이니 얼마나 자신이 신통방통하겠습니까.

반에서 5등을 전교 5등으로! 늘 10등 밖에서 맴돌던 아들 녀석이 어느 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5등 성적표를 내밀었습니다. 그럴 땐 인정사정 보지 말고 칭찬해줘야 합니다. 치킨과 피자를 원 없이 안겨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뭘 좀 아는 엄마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엄마의 무차별 칭찬 샤워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에게 속삭입니다. “우리 아들 담에도 5등 한번 더 하지?”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한 녀석에게 말합니다. “반에서 말고 전교에서 5등 말이야. 한번 해보자.”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이 결심한 듯 외칩니다. “오케이. 전교 5등 코~올!” 평범한 도전은 평범한 결과만을 낳습니다. 도전의 수준을 몇 단계 확 끌어올리고 필요한 에너지를 급속 충전해주십시오. 기적은 이렇게 일어납니다. 과연 그럴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은 아무 말씀 마시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보십시오. 박정희 대통령이 이 길을 뚫자고 했을 때,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는 겁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들 기막혀 했습니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첫 삽을 떴을 때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 경제 기적의 대역사가 시작됐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울산 모래밭에 조선소를 지을 때도 그랬고,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도 그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배를 끌고 노량으로 향했을 때, 세종대왕이 어전회의에서 한글을 창제한다고 했을 때,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업적 그 이면에는 바로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도전이 있었습니다.

천 리 길을 왜 가야 하는데? 17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정치가가 사고를 쳤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다리를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멋진 폭포를 테마파크로 만들기 위해서는 관광 열차가 다닐 수 있는 현수교가 꼭 필요하고, 그렇게만 되면 우리 지역의 발전은 탄탄대로라고 보랏빛 풍선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교량 전문가와 공사 감독들은 입을 딱 벌렸습니다.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도 문제지만 폭 250m의 강물 유속이 너무 엄청나서 도저히 배를 띄울 수 없었습니다. 강을 가로지르는 기본 케이블을 놓아야 그것을 발판으로 굵은 강철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겁니다. 젊은 공사 책임자 찰스 엘렛 주니어는 전전긍긍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현지 주민 한 사람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큰 연에 줄을 매서 강 건너로 날려 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찰스는 당장 연 날리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상금은 10달러(당시로는 꽤 큰돈이었다). 목표는 강 너머에 연을 안착시키는 것. 몇 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또 날렸습니다. 마침내 호먼 월쉬라는 미국 소년이 직경 1.3cm의 줄을 연에 매 강을 넘겼습니다. 1848년 1월 31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1855년 3월 18일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놓인 우람한 현수교로 관광객을 가득 실은 첫 기차가 통과했습니다. 기적도 처음엔 가느다란 연줄 하나에서 시작됐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합니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큰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천 리 길을 걸어야 하는 분명한 목적입니다. 누군들 고생길을 걷고 싶겠습니까. 숨이 턱 막히는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마른침 꿀꺽 삼키고 한 걸음 내딛을 때, 우리에게 기적이 시작됩니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