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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아들놈을 걱정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부치는 편지 개늠'들의 진화론
‘기러기 아빠’에게는 ‘눈치’ ‘코치’에 ‘전파치’까지 있다. 오랫동안 전화와 메신저를 통해 가족과 교신하다 보니 음성과 채팅 분위기만으로도 ‘상대국 선수’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린다. 메신저 저쪽의 아내는 뜸을 들이고 있지만 나는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짐작과 인내심은 별개여서 먼저 묻는 건 늘 내 쪽이다. “아들놈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한국에 돌아가면 녀석은 당신이 책임져요.”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외기러기 2년 동안 아내가 저런 식의 강경 발언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더운 나라여서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탓에 아이들 등교 시간도 한국보다 두어 시간은 빠르다. 전날 늦은 밤까지 게임을 한다며 두 눈 말똥거린 열두 살 막내를 깨우는 건 언제나 전쟁, 이날도 한판 전쟁을 치렀다. 그래도 지금껏 승자는 엄마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겨우 일으켜세우기는 했는데 아이가 코털 뽑힌 사자마냥 씩씩거렸다. 열여섯 제 누이의 고자질에 의하면 이러했단다. “불량하기 짝이 없어. 덩치는 얼마나 커졌는지, 엄마가 어쩌지도 못한다니까.” 그 어쩌지 못하는 아이는 그날 학교에 안 가는 것으로 엄마에게 반항했다. 온종일 아파트 휴게 시설에서 빈둥거렸다는 것을, 뒤늦게 엄마와 누이가 알았지만 저녁이 돼서도 아이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밤에 아내는 나와 메신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수심은 깊고, 또 깊었다. 딸아이 키울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했다. 무엇이든 자기가 알아서 하고, 말썽을 피워봐야 야단 한번 치면 눈물 뚝뚝 흘리는 것으로 교정되던 딸은 말썽쟁이 아들에 비하면 천사라고 했다. 사춘기로 접어들자 아이가 자꾸 거짓말만 하고, 반항만 늘고, 공부도 안 하고, 나쁜 친구와 사귀려 하고 등등등! 지구 상의 소년들이 가진 6만 8천 개의 못된 항목을 죄다 열거했다. 이 아이가 자라서 깡패라도 되면 이 노릇을 어찌하느냐고 아내는 나라 뺏긴 민비처럼 말했다. 느닷없이 천사가 되었다, 졸지에 깡패의 누이가 된 딸아이는 엄마가 속이 탄다며 물을 마시러 간 사이, 새끼 엄마 흉내를 내며 덩달아 한숨을 포옥포옥 내쉬었다. “아빠, 도대체 저 애가 뭐가 되려는지 걱정이야. 어쩌면 좋아?”
두 여자의 비탄가를 듣자니 나도 마음이 서글퍼져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그러다 아빠 없는 틈을 타서 여인국의 깡패가 돼버린 아들놈을 죽여, 살려 하다가 ‘이런다고 뭐가 해결되냐’ 싶어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잠으로 ‘고고씽’ 했다.
아침은 어제와 다른 태양이 뜨고, 우주의 모든 것이 새 기운으로 움을 틔우는 시간이다. 나 역시 자고 일어났더니 기러기 깃털이 다시 한없이 가벼웠고, 그래도 가장인지라 어제 두 모녀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확인 사살로, 사내놈 두 명을 키우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학교 선생인 선배는 늘 자기 아들을 ‘개늠’이라고 호칭한다. ‘개놈’ 말고 ‘개늠’) 우리 집 개늠에 대해 보고하고 선배로서 조언해달라 했더니 그녀가 하는 말은 간결했다. “개늠들은 다 그래.”

그날 메신저로 다시 아내와 대화했다. 아내는 좀 편안해진 듯했지만 여전히 될 성부르지 못한 떡잎의 미래와 그 이파리가 자라나 장가라도 가면 그 아내의 이름이 조폭 마누라가 되는 건 아닌지 따위를 걱정했다. 나는 차분히 ‘개늠의 진화론’에 대해 설명했다. “여보, 당신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여자인 당신과 남자인 나의 자란 모습은 너무 달라. 당신이 인형놀이를 할 때 나는 친구와 문방구에서 딱지 훔치는 재미에 홀딱 빠졌고, 당신이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친구에게 50원을 내고 헐벗은 명화(?) 도록을 봤어. 당신이 이웃집 대학생 오빠를 보며 가슴 콩닥일 때 나는 빨랫줄에 널린 앞집 누나의 속옷을 훔쳐보며 고추가 콩닥거렸고, 당신이 친구와 말다툼을 할 때 나는 옆 학교 애들과 패싸움을 했어. 그런데 내가 특별해? 아니야. 학교 다닐 때 내 성적표에는 ‘내성적이고 모범적이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함’이라고 쓰여 있었는걸?”
정말 그랬다. 사내아이는 대부분 그렇게 자란다. ‘개늠’으로 자라다가 사람으로 진화한다. 말썽의 끝에서 반성을 배우고, 욕망을 분출한 후 죄책감에 눈뜬다. 책보다 친구를 통해 사회화를 학습하며, 의리에 발등을 찍힌 후에야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별한다. 그러니까 여자아이가 산책을 나갔다가도 바로 우리를 찾아오는 순한 양이라면, 사내아이는 골짜기에서 방황도 하며, 늑대를 만나 놀라기도 하다가 해가 져야 기어 들어오는 대책 없는 불량한 양인 셈이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기다림과 인내심이라는 선배의 말은 경험 속에서 터득한 진리였다.
그러므로 여보, 안달 좀 하지 마. 당신 말대로라면 난 지금쯤 청계천 삽자루파 큰형님쯤 돼 있어야 해. 그렇지만 알잖아. 나 여리고 섬세하기가 버들강아지 같은 거. 오홋홋!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