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다이닝 인터뷰]중국어로 한식 요리 책 펴낸 크라운베이커리 육명희 대표 문화 외교, 이제 어머니의 손맛으로 시작합니다
얼마 전 중국어로 쓴 한국 요리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요리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풀면 <한번 배우면 바로 할 수 있는 한국 요리>. 우리나라 보통 가정에서 즐겨 먹는 음식 90여 가지를 육명희 대표가 손수 만들고, 조리법도 그가 중국어로 썼다. 요리 전문가도 아닌데 요리 책을 펴낸 데다, 중국인을 위해 쓴 책이라니 대체 무슨 사연일까.
소박한 이 요리 책은 눈길을 잡아끄는 사진이나 고급스러운 장정과는 거리가 멀다. 한데 책장을 넘기며 사진 속 음식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엄마가 식구를 위해 차린 밥상처럼 푸근한, 겉모습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떤 값비싼 음식보다 입에 딱 맞고 속이 편안해지는 ‘소울 푸드 soul food’ 선물 세트다. 이 책을 펴낸 육명희 대표는 크라운제과의 창업주인 고 故 윤태현 회장의 맏며느리이자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의 부인이다. 6남매 가정의 맏며느리로 40년간 대가족의 밥상을 손수 차려냈고, 회사 일을 맡아 하면서도 평소 식구들 밥상만큼은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요리 한번 안 해보고 결혼한 신혼 초에는 감자볶음밖에 할 줄 몰랐지만, 요리 학원에 등록하고 시어머니께도 부지런히 배웠다. 칭찬받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밥상을 차려냈고, 그 덕에 시부모님께 사랑도 넉넉히 받았다.
“시부모님과 형제, 조카를 포함해 직계 가족만 32명이었어요. 매주 주말이면 모두 집에 모여서 한바탕 떠들썩했고, 저는 맏며느리로서 30여 명의 밥 세끼와 후식, 간식까지 준비해야 했습니다. 부모님 생신 때면 친척들까지 1백여 명은 족히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맛있는 음식을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준비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어요. 제가 고민한 방법은 바쁜 현대 생활에 아주 적합하고, 한국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도 매우 유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왼쪽) 40년간 부엌에서 터득해온 빠르고 쉬운 요리법으로 한식을 중국에 소개한 육명희 대표.

육 대표는 2006년 베이징 대학 CEO 인문학 과정에서 1년 동안 중국의 국학을 공부했다. 평소 중국 고전에 관심이 많던 그는 옛 성인들의 전통적인 전략과 인생의 지혜를 접하면서 석학들의 유가, 도가, 법가 등 현대 기업 경영의 방향을 듣고 새길 수 있었다. 베이징 대학에서 공부한 이후 칭화 대학교에서 E-MBA 과정을 공부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베이징을 오가며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은 무엇보다 중국 각지에서 모인 학우들과의 교분이었다. 그는 형제자매처럼 우정을 나누며 지내던 학우들(나이가 가장 많았던 그를 급우들은 ‘큰언니, 큰누나’라고 불렀다)에게 여유 있을 때마다 삼계탕, 잡채, 비빔밥, 부침개, 갈비 등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며 함께 나눴고, 맛있다며 관심을 표하는 이들에게는 조리법을 가르쳐줬다. 평소 우리의 음식 문화를 널리 알리기를 소망한 그에게 중국인 친구들이 보인 관심과 뜨거운 반응은 자신감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던 것. 육 대표의 요리 솜씨가 중국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얼마 후 중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다.

(왼쪽) 중국어로 쓴 한식 요리 책 <한번 배우면 바로 할 수 있는 한국 요리>.

요리 책을 내기로 결정한 데는 남편 윤영달 회장의 은근한 지지도 한몫했다. “요리 책을 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당연히 ‘오케이’였습니다. 아내의 요리에 자신 있었으니까요. 중국어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거야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했고요. 책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저희 부부는 중국에 갈 때마다 여러 요리 책을 사서 검토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요리 책도 많이 봤고요. 결론은 ‘가능하다’ ‘된다’였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막상 몇 달을 고생하며 아내가 책을 펴낸 걸 보니 아주 장합니다.”
이번 요리 책에는 간장, 고추장, 배추김치부터 무생채, 장조림, 너비아니구이, 된장찌개, 수제비, 송편에 이르기까지 실제 육 대표네 식탁 위에 오르는 메뉴를 중국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3~4단계 과정으로 단순화해서 설명했다. 사진은 여러 달에 걸쳐 주말마다 그의 자택 주방에서 촬영했고, 실제 그의 조리 도구와 식기를 이용해 요리하는 과정을 담았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음식 만드는 모습이나, 추석에 차례 지내는 모습에서는 꾸미지 않은 순도 100%의 가족애가 느껴진다.
지난 4월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준비해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행사 장소인 캐피털 클럽(중국의 유지들이 모이는 사교 클럽)의 50층 라운지 역시 친구가 회원이기에 가능했다. 베이징에 사는 친구들뿐 아니라 선전, 홍콩, 칭다오 등지의 동창생들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축하해주었고, 어떤 동창은 5백 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윤 회장과 두 아들은 예상보다 뜨거운 중국인의 반응에 뿌듯함과 고마움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창생인 동방왠쯔 국제무역유한회사 동사장 두쯔 씨는 추천사에서 “수많은 요리를 큰언니가 손수 만들었다니 정말로 대단하다. 날마다 많은 수무를 처리하기도 버거울 텐데 어떻게 주방에서 직접 향기로운 색과 미를 두루 갖춘, 사람을 매혹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큰언니의 책은 단순한 취미의 산물이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그리고 사랑과 책임감이 책 탄생의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얼마 전 육 대표는 중국의 한 잡지사로부터 인터뷰 요청도 받았다. 책의 반응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중국의 한 요리 학원에 책 판매 수익금을 기증할 생각이다. 그러면 자연히 그들이 한국 요리를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위)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한바탕 떠들썩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아래) 일요일 점심 메뉴는 막걸리를 곁들인 부추전, 섭산적, 도토리묵무침과 비빔국수. 아이들을 위해 간장 비빔국수로 준비했다.


5월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육 대표 가족의 점심 식사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청운동 자택을 찾았다. 장남 윤석빈 씨(크라운해태제과 상무) 가족과 차남 윤성민 씨(크라운해태제과 상무) 가족이 모두 모여 여유로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윤 회장이 어린 손자 손녀들과 함께 놀고 있고, 육 대표와 두 며느리는 점심상 준비에 분주하다. 마당에 차린 점심 메뉴는 비빔국수, 부추전, 도토리묵무침, 섭산적. 여기에 고구마 막걸리를 곁들였다.
장남 윤석빈 씨는 “결혼 후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보니 알겠더라고요. 모양은 비슷해도 ‘뇌에 스치는 맛’은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의 기억, 그 정점까지 못 가는 거지요. 이 책을 통해 어머니의 손맛을 다른 이들, 특히 중국인들에게 전파할 수 있어 뿌듯하고 맛있는 한식을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어 더 좋습니다”라며 이번 책은 입문 편일 뿐 앞으로 10권은 더 낼 수 있을 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육 대표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결정적 도움을 준 이는 차남 윤성민 씨다. “10여 년 전 어머니께서 제게 중국 역사물 비디오를 빌려오라고 하셨어요. 1~2년을 꾸준히 빌려다 드렸는데, 어느 날 비디오 대여점 주인이 ‘이제 더 이상은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중국 역사물에 대해서는 모든 걸 섭렵하신 겁니다. 이듬해에 배화여대 중국어과에 입학하셨지요. 얼마 전 중국어 검정 시험인 HSK를 봤는데 어머니 성적이 중국어를 전공한 저와 똑같이 나온 거예요. 그러더니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셨고, 거기서 중국 친구를 많이 사귀시더라고요. 요즘은 매일 중국 친구들한테 전화가 걸려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머니의 이런 노력과 활동이 민간 외교의 좋은 선례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윤 회장의 바람이 있다면 중국인들이 이 요리 책을 보고 저자에게 한국 요리를 배우러 오겠다고 해서 관광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것. 그때를 대비해 요리 학원 등 여러 프로그램을 연구 중이란다.
부드러운 오후 햇살 아래, 어머니가 차린 밥상 위에 가족의 웃음소리가 흘러다닌다. 행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가족의 건강이라 말하는 육명희 대표. 지금껏 그가 손수 차려낸 식탁은 가족 건강의 원천이자, 행복의 화수분이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아가 그의 정성스러운 식탁에서 한식의 세계화가 시작된 셈이다.

(왼쪽) 디저트는 크라운베이커리 얌 케이크와 오미자차.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도록 윤영달 회장이 개발한 컵케이크로, 블루베리, 고구마, 초콜릿 맛이 있다.

부추 부침개
재료 부추 400g, 밀가루 3컵, 멸치 국물 3컵, 홍고추 1개, 식용유・ 소금 약간씩 ※ 조갯살을 비롯한 해물을 넣어도 좋다.
만들기 1
부추는 다듬어 씻어 5cm 길이로 썬다. 홍고추는 반 갈라 씨를 털고 가로로 가늘게 채 썬다. 2 밀가루에 멸치 국물을 부어가며 섞어 홀홀한 반죽 물을 만든다. 반죽을 떠보아 뚝뚝 떨어지는 정도면 적당하다. 3 ②의 반죽 물에 부추와 홍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 뒤,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적당한 크기로 노릇하게 지진다.

섭산적
재료
쇠고기(우둔살 간 것) 600g, 두부 1모, 식용유・고명용 대추・잣가루 약간씩 양념 간장・설탕 2큰술씩, 다진 마늘・참기름 2작은술씩
만들기 1 쇠고기는 키친타월에 올려 핏물을 제거한 후 칼로 곱게 다진다. 2 두부는 면포에 싸서 물기를 꼭 짠 후 으깬다. 3 볼에 다진 쇠고기와 두부를 담고 분량의 양념을 넣은 뒤 재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5분 이상 치댄다. 4 ③을 두께 1cm, 가로세로 7cm 크기로 빚은 다음 식용유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지진다. 5 속까지 고루 익으면 식혀서 적당한 크기로 썬다. 잣가루와 돌돌 말아 썬 대추를 올려 장식한다.

도토리묵무침
재료
도토리묵 1모, 미나리 6~7줄기, 양파 1/4개, 오이 1/2개 ※ 채 썬 김치, 쑥갓, 부추, 상추 등의 채소를 넣어도 좋다. 양념장 고추장・식초 5큰술씩, 고춧가루・다진 마늘 1큰술씩, 설탕 3큰술, 물엿 1작은술, 통깨 약간
만들기 1 도토리묵은 한번 씻어서 4×3cm 크기로 자른다. 2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서 줄기만 3cm 길이로 썬다. 양파는 가늘게 채 썰고, 오이는 반 갈라 2mm 두께로 어슷하게 썬다. 3 볼에 분량의 양념장 재료를 넣고 한데 섞는다. 4 넓은 그릇에 미나리와 양파, 오이, 도토리묵을 담고 양념장을 끼얹어 살살 뒤적인다.

비빔국수
재료(4인분) 소면 600g, 당근 1/2개, 깻잎 5장, 양상추잎 6장, 실파 6뿌리, 삶은 달걀 2개, 소금・식용유 약간씩 양념장 홍고추 간 것・사과 간 것 8큰술씩, 고추장 5큰술, 식초 6큰술, 설탕・깨소금 2큰술씩, 참기름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당근과 깻잎, 양상추는 씻어 5mm 너비로 어슷하게 채 썬 뒤 찬물에 담가 싱싱하게 한다. 실파는 4cm 길이로 썬다. 2 홍고추 간 것과 사과 간 것, 고추장, 식초, 설탕, 깨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을 넣어 잘 섞은 후 소금으로 간해 양념장을 만든다. 3 끓는 물에 소금과 식용유를 넣고 소면을 삶는다. 한 번 끓으면 찬물을 한 컵 붓고 한 번 더 우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끈 뒤 찬물에 헹구어 건진다. 4 삶은 소면에 ②의 양념장을 넣어 먼저 비빈 뒤 채 썬 ①의 채소를 넣고 고루 비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