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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에 재개관하는 화정박물관 세계적인 탕카 기지로 우뚝서다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티베트 불화 ‘탕카’의 보고로 주목받아온 화정박물관이 오는 5월 30일 평창동에서 재개관한다. 탕카 컬렉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미국 뉴욕의 루빈 재단과 쌍벽을 이루는 화정박물관은 재개관을 발판 삼아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photo01 백자 같은 박물관
이태원 시대를 접고 새 출발을 시작하는 화정박물관은 서울의 아트밸리Art valley인 평창동 들머리에 있다. 전화로 설명을 들었는데도 위치 가늠이 어려웠다. 자주 가는 길인데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과도한 상상력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의 탕카 전문박물관이라고 하니 외양도 크고 화려하리라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주택가를 마주하고 있는 2층 규모의 단출한 건물 외벽에 씌어 있는 금박 글씨 ‘한빛문화재단,화정박물관' 하마터면 이 작은 글씨를 놓칠 뻔했다. 애초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리움 같은 거대한 박물관을 상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규모보다는 미술품의 질적 서비스를 중시한다는 이곳의 가치를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의 건물을 찬찬히 뜯어보니 은근한 절제미가 응결되어 빛을 발하는 조선시대 백자가 연상되었다.
지난 1999년 서울 이태원에서 정식 개관했던 화정박물관이 평창동의 새 부지에서 관객과 만나기 위해 휴면 상태에 들어간 것은 2002년. 그리고 4년여의 준비 끝에 5월 30일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옛 화정박물관의 평창동 분관이 있던 건물 부지 옆에 2층 규모의 새 박물관 건물을 올렸기 때문에 새 박물관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온다. 애초에는 더 넓은 규모로 지을 예정이었지만 군사보호지역이라 마음대로 건축할 수 없었다고. 새 박물관에는 2개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1층 전시실은 아예 주력 소장품인 탕카만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 전시실은 족자 형태의 탕카 작품들을 걸기 위해 층고를 높였으며, 작품의 고유 색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광섬유 조명을 설치했다.
규모는 작지만 컬렉션은 화려하다. 14세기부터 제작된 탕카, 불상, 불구, 경전 등 티베트불교 예술품 2천5백여 점, 회화·서예·복식·자수·도자·금속·목석·칠기등 중국 고미술품 4천여 점, 그리고 이정의 ‘묵죽도’, 강세황의 ‘지락와도’를 비롯한 한국미술품 3천여 점 등 총 1만여 점에 달한다.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미술품과 유럽의 부채, 약항아리 같은 이색 소장품도 다수 보유 중이다. 박물관측에 따르면 소장품의 숫자로만 따지면 전국 62개 소 사립미술관 가운데 열두 번째라고 한다.
“탕카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또한 화정박물관의 차별성은 동아시아권 미술품을 폭 넓게 수집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컬렉터들은 대부분 국내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서 그치지만 저희는 인접한 중국, 일본, 티베트 등지의 미술품도 수집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특색을 살려 전 세계에서 으뜸으로 인정받는 동양미술 전문 박물관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photo01

1 티베트불교 닝마파의 시조승이자 <티베트 사자의 서>의 저자인 ‘파드마삼바바 Padmasambhava’의 여덟 변화를 묘사한 세트 중의 한 폭.
2 관음보살의 눈동자(타라)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여성 보살 ‘녹색 타라보살 Green Ta-ra-’.
3 석가여래를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두 제자 사리불과 목건련을 좌우에 배치한 다음 주변에 십육나한을 배치한 ‘석가여래삼존과 십육나첯akyamuni Triad and Sixteen Arhats’.
 
1. 1 눈이 천 개 달린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살펴보고 구제하는 ‘십일면천수관음 Eleven-Faced Thousand-Armed Avalokitsvara’.
 
photo01 자신의 아호 ‘화정和庭’을 따 박물관을 설립한 한빛문화재단의 명예이사장 한광호 박사의 이력과 예술품 수집은 유별나다. 1928년 만주에서 출생해 화공약품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다 1958년 백수의약주식회사를 인수한 그는 1972년에는 독일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의 한국합자회사인 한국 베링거인겔하임을 설립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한국삼공 회장, 한국 베잉거인겔하임 명예회장, 서한화학 회장 등 3개의 직함을 갖고 있다.
1950년대 중반 겸재 정선의 그림을 사가는 독일인 사업가를 보고 충격을 받은 한광호 명예이사장이 작품 수집에 나선 것은 1962년. 그해 첫 소장품으로 5천 원을 주고 도자기를 구입했다. 한 점 두 점 구입하기 시작한 한국 고미술품이 1992년 한빛문화재단을 설립할 때에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재단법인을 설립할 때부터 저는 이 미술품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재단법인을 만들지도 않았겠지요.”
불교 신자도 아닌 그가 탕카 수집을 시작한 것은 일본의 탕카 컬렉터인 고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씨와 친분을 쌓으면서부터. 에가미 씨는 한광호 명예이사장에게 탕카 수집을 권유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총 2천5백여 점의 세계 최대 탕카 컬렉션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탕카는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좋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탕카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만다라와 같은 작품은 색감뿐만 아니라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에서도 감상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미술품처럼 솔직한 눈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역시, 설립자의 소망은 박물관을 닮았다. 톡 쏘는 맛으로 미감을 사로잡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탄산음료가 아니라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생명을 유지시키는 물처럼 말이다. 개인적인 취미 활동 삼아 모으기 시작한 예술품들을 그것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놓는 모습, 이것을 사람들은 부의 사회 환원이라고 말한다. 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 Oblige라고도 한다.
 

“네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주로 영국이나 독일이었는데, 그곳 앤티크 숍에서 잤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요. 아버지께서 저만 호텔에 두고 나갈 수 없으니까 숍에 데리고 가서 절 재우시면서 “가만히 있어. 절대 일어나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감식안을 키운 한혜주 관장의 본업은 하피스트. 지난해까지 화정박물관의 부관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올해 초 박물관의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관장님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무 언질도 받지 않은 채 박물관장으로 ‘명命’ 받은 것은 그가 이미 ‘준비된 관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에도 부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물관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것이니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한광호 명예이사장이 한혜주 관장과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은 하나. 공공의 기능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부전자전이라더니, 한혜주 관장은 한술 더 뜬다. 그릇은 물론 담기는 내용물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관장직 수행에 대해 “부담스럽지는 않고 (웃음) 대학 입시처럼 무조건 잘해야 하는 일이죠”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오직 한 가지. 외양이 아니라 소장품의 퀄리티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작품으로 기억하게 되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남편 고르듯이 작품도 고르면 된다고 말하는 30대 젊은 관장의 통통 튀는 발언이 심상치 않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가벼운 가운데 묵직함이 느껴지고, 전통을 이해하면서도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록이나 가요 같은 다른 음악도 좋아해요. 음악을 퍽 넓게 듣고 즐길 수 있어야 음악가가 될 수 있어요. 열린 시선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화려한 색감에 반해 탕카와의 연애에 빠진 한광호 명예이사장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한혜주 관장도 미술품 컬렉터. 지난 3월 초에는 한광호 명예이사장, 남편 주준범(경찰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씨와 함께 중국 고미술품을 보기 위해 홍콩에 다녀왔다. 부친으로부터 많은 ‘실행력’을 전수 받고 있지만 한혜주 관장에게 예술품이란 아직 “눈으로 하는 즐거운 사치” 수준이라고 한다.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작품을 볼 때에도 유명한 작품 중심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이제 겨우 걸음을 떼고 길을 나서고 있지만 열정과 자신감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의 열정이 화정박물관의 2기를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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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정박물관 현관에 선 한광호 명예이사장(왼쪽)과 한혜주 관장. 2 중국 명대 만력황제(1573~1621년) 시기에 제작된 ‘아랍문자 장식접시’3 중국 청나라 때 만들어진 대나무 소재의 ‘죽제필통’4 일본, 중국 등 아시아 미술품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주로 선보일 제2전시실.

화정박물관 관람 정보
재개관전 <화정박물관 소장품전> 5월 30일 재개관하는 화정박물관의 기념전에서는 접하기 힘든 탕카 및 티베트불교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관전에서는 전 세계에서 12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달항아리 한 점이 전시될 예정. 이 달항아리는 한광호 명예이사장이 대영박물관 한국실 조성에 기부한 1백만 파운드(약 16억 8천만 원)의 지원금으로 구입한 유물이라 더욱 뜻 깊다. 재개관전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전시된다. 이후에는 다양한 기획전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인근 명소 ‘백사실白沙室’화정박물관 오른쪽 담장을 끼고 오르다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20분 정도 걸어가면 백사실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 되었을 때 여기로 산책을 다녀 크게 알려졌다. 종로구 부암동에 소재한 백사실은 1800년대 조성되었던 별서別墅(별장)로 건물지와 연못,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 있으며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밭과 폭포, 나무들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찾아가는 방법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평창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울예고(북악터널 방향) 못 미친 곳에 ‘한빛문화재단•화정박물관’이라는 글씨가 써진 흰색 건물이 있다.
 
1. 1. 조선 말기 인물화가로 유명한 채용신(1850~1941년)이 그린 독립운동가 궁인성의 초상화(1913). 전통화법과 서양화법이 융화된 작품이다. 2.중국 청나라 때인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병 ‘흑지분채 화조괴석도黑地粉彩 花鳥怪石圖’. 검은 바탕에 그려진 매화 그림이 일품이다. 3. 상아 조각으로 삼국지의 한 장면을 재현한 ‘삼국지 상아 조각’, 중국 명나라 때인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