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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퍼 이상현 씨의 <글꽃> 전 한글, 한옥에서 꽃피다
북촌 한옥마을 미음갤러리에서 캘리그래퍼 이상현 씨의 <글꽃>전이 열렸다. 수줍은 듯 고개를 빼꼼히 내민 꽃, 봄바람에 춤추며 까불대는 꽃 등 봄을 맞은 꽃의 ‘성정’을 글자에 담았다. 플로리스트 박소란 씨의 동양 꽃꽂이와 함께 검박한 한옥에 담담하게 풀어놓은 캘리그래피 작품 10여 점. 묵향 사이로 꽃 내음이 가득하다.

1 겨우내 기다리던 봄을 맞이한 꽃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 <꽃>. 그저 몇 획의 짧디짧은 외자에 봄을 맞아 신명 나는 춤사위 한판 벌이고 싶어 하는 꽃의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
2 이상현 씨와 박소란 씨가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 <한 걸음 한 걸음>. 꽃을 피우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봉오리를 검은 먹으로 형상화하고, 2m가 넘는 적말채나무로 금세라도 꽃을 피울 것 같은 생동감을 표현했다. 화선지를 뚫고 나온 적말채나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응당 얼어붙은 나뭇가지에서도 꽃이 피는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1 작품명 <꽃>. 붓 대신 연산홍 뿌리에 먹물을 묻혀 수줍게 피어오른 꽃의 모습을 표현했다. 글자가 액자의 정중앙에 위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커피로 붉게 염색한 화선지에 꽃 글씨 하나가 홍조 띤 한 송이 꽃을 닮았다.
2 나뭇가지 사이에 철사를 넣어 선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식 꽃꽃이라면, 절지 한번 하지 않고 선의 생김새 그대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을 미학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식 꽃꽂이다. 최근에야 편의를 위해 플로럴 폼이나 침봉을 쓰지만 본래는 돌, 나무, 이끼 등으로 나뭇가지를 자연스럽게 고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플로리스트 박소란 씨의 작품.

1 작품명 <글꽃이 피었습니다>.‘꽃’이라는 글자를 반복해 써서 꽃밭에 꽃들이 모여 재잘거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작품 속 꽃도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멀찌감치 서서 전체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에서 ‘꽃’ 글씨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2 작품명 <한글, 당신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렸습니다>. 검게 먹으로 처리한 꽃봉오리들 속에 ‘꽃잠(첫날밤)’ ‘다솜(사랑)’ 등 순 우리말을 낙관처럼 찍었다. 작가는 봄에 들뜬 꽃들을 불러 모아놓고 물었단다. 너희에게 봄은 무엇이냐고. 그때 꽃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에게 봄은 신랑 신부의 첫날밤이고, 때 타지 않은 풋내기 사랑이라고. 꽃봉오리 속에 첫날밤의, 사랑의 기억을 살포시 감추고 있다.


캘리그래퍼 이상현 씨와 플로리스트 박소란 씨 평소 자신을 ‘붓을 잡은 연기자’라고 소개하는 이상현 씨는 소나무의 그을음을 이용해 먹을 만들어, 붓 대신 칡뿌리를 손에 쥐고 글을 쓴다. 글자에 다양한 표정을 담기 위해서다. 영화 <타자> <혈의 누> 등의 포스터 글씨가 그의 작업이다. 평소 그는 캘리그래퍼들 사이에서 전시회를 많이 여는 작가로 통하는데, <한글 모음>전, <한글 자음>전 등 개인전 외에도 1년에 50여 회의 그룹전을 열기도 했다. 그래서 때로는 ‘배부른 아티스트’로 오해받기도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이에 대해 영화나 제품 패키지 등의 작업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 대한민국의 캘리그래피 문화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그 돈을 다양한 전시회를 여는 데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언젠가 뉴욕 한복판에 한옥을 지어 거기에 캘리그래피 작품을 걸어놓고 한글의 멋을 알리는 것이 꿈이라고. 이상현 씨의 캘리그래피를 꽃으로 더욱 빛내준 플로리스트 박소란 씨는 오래 전 예지원에서 다도를 배우면서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은 물론 지인의 일본 다실에 꽃을 꽂으며 동양 꽃꽂이에 매료돼 지금까지 차와 꽃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1967년에 창립된 금연화예연합회의 다도 모임인 소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평소 애지중지 모아온 골동품 항아리, 화기 등에 우리식대로 꽃을 꽂아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미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글꽃>전은 지북 Zibook과 미음갤러리가 주최・후원한 전시입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