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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다큐 사진가의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 보고 잿빛 잔해 속에선 만난 아이티의 희망
아이티 대지진 발생 일주일 후 사진가 강제욱 씨는 아이티로 날아갔다. 환경문제를 주제로 꾸준히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그곳으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찍은 아이티는 어떤 모습일까. 그 폐허 안에도 희망은 숨 쉬고 있을까.


1 대통령 궁을 뒤쪽에서 바라본 풍경. 무너진 건물 벽 사이로 각종 집기류와 서류의 흔적이 보인다.
2 대통령 궁으로 가는 시내 중심가의 풍경.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이다.



3 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산동네도 역시 피해가 심했다.
4 데미안 지구의 이재민촌에서 만난 소년. 지진 이전에 이곳은 성당 마당이었다. 소년이 물을 기르러 가는 도중 포즈를 취해주었다.


● 1월 21일, 지진 발생 일주일 후 아이티 섬의 산토도밍고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의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대재앙의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현장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2006년부터 지구 상의 환경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곳을 방문했다. 쓰촨 성 대지진 현장,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현장, 사라져가는 열대우림의 보르네오 섬, 갈수록 확대되어가는 고비 사막 등을 방문해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티는 환경문제를 화두로 사진 찍는 사진가로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 아이티 섬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이들이었다. 노예상을 통해 아프리카 곳곳에서 중미 카리브 해의 섬나라로 팔려온 흑인들의 인종 전시장 같은 나라가 바로 이곳이다. 다양한 아프리카 민족의 문화는 이 아이티 섬에서 혼합되고 재탄생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 나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고, 독재 시절을 지나 비교적 빠른 민주화를 밟았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빈곤과 정치적 불안 속에 휩싸인 나라로 전락했을까? 국토의 3분의 2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던 이 나라는 왜 모든 산이 민둥산으로 변했을까? 2010년 1월 20일, 아이티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여러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물론 인터넷 지식인에 물어도 아이티의 역사는 3초 만에 훑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의 단면만 보는 건 지금 아이티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쿠바 섬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아이티 섬, 최초의 독립국가,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탄생한 반미 좌파 성향의 대통령, 뉴욕에서 직항기가 뜬다면 단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5 역시 데미안 지구의 이재민촌에서. 지진이 나자 사람들은 집에 있는 천 쪼가리들을 들고 나와 천막을 만들었다. 다시 초원의 삶으로 돌아간 듯하다.
6 지진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태어난 세 쌍둥이. 집은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하다.


● 최근 아이티 대지진에 대한 이야기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한 뉴스는 ‘르네 프레발’대통령의 인터뷰였다. “오늘은 어디서 주무실 계획인가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지진 피해가 심하다는 뜻으로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결과는 무책임하고 대책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르네 프레발의 인생을 돌아보면 무책임, 무대책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뒤발리에 독재 정권 때 강제 추방되어 벨기에에서 농학을 공부했고, 귀국 후 사회 개혁 운동에 참여했다. 그 후 아리스티드와 함께 민주화 투쟁을 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이후 지역개발 사업을 하다가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반미 좌파 성향의 사회운동가다.

1 국립성당 앞에서 만난 자매. 옆에 서 있는 아빠에겐 얼마나 소중하고 귀여운 딸들일까?
2 이재민촌에서 만난 소년.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3 벨에어 지역의 성당 부설 학교 풍경. 한 한국인 NGO단체의 클리닉이 열리고 있어 사람들이 줄지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4 다리를 다친 이재민들이 나무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아이티 대지진이 터지자, 제일 먼저 완전무장한 미국의 공수부대가 포르토프랭스 하늘에 흩뿌려진 점처럼 투입되었다고 한다. 상륙한 공수부대는 무작정 공터에 들어가 캠프를 설치했다. 아, 이것이 과연 독립국가의 모습인가? 미국은 아이티의 근현대사에 많은 관여를 해왔다. 1990년대 군부 쿠데타를 막고 민선 대통령인 아리스티드를 취임시킨 것도 미국이었으며, 2004년 아리스티드를 추방한 것도 미국이다. 이후 좌파 성향의 인물 르네 프레발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를 비롯한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 등 중남미 국가들이 반미 좌파 동맹을 맺으면서 미국은 이 나라들에 경계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과 남미 지역과의 관계는 냉전 시대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이번 아이티 대지진이야말로 아이티의 민주 정부 수립 후 미국이 국가적 개입을 할 수 있는 최초이자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이번에 미국이 보여준 군사 개입은 남미 국가들과 교역 확대 문제를 미국이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엿보게 하는 힌트와도 같다.


5 도시 어딜 가도 곳곳의 이재민촌을 만날 수 있다.
6 때론 이불보로 만든 천막이 좋은 스튜디오가 된다. 파인더를 통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공유했다.



7 이재민촌 담장에 널려진 빨래. 이곳의 여성들도 멋쟁이가 많았건만….
8 적십자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재민촌. 어느 날 가보니 방수천으로 바뀌어 있어 다행스러웠다.


● 아이티 참사는 대지진에 의한 것이지만, 파괴된 도시를 보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전쟁터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예전에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무너진 대통령 궁과 이곳 아이티 대통령 궁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상처받고 희망을 잃고 좌절의 눈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
했고 시체 주위로 파리와 쥐들이 돌아다녔다. 시체를 발견하면 사람들은 불을 붙였다. 연고가 없는 시체를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위생적인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화장터가 아니기에 당연히 시체는 완전히 타지 못한 채 일부가 남는다. 이는 곧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의 식량이 된다. 시체를 태연하게 뜯어 먹어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다.
이렇게 심각한 재난 상황이지만, 아이티인들은 외신에서 보여주는 인상과 달리 아주 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사바나의 하이에나처럼 공격적이고 이성을 잃은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며 현장 촬영을 시작했는데, 잠시 후 두려움은 내 내부에 있던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그 순한 눈빛으로 이방인을 두렵게 바라볼 뿐이었다. 미래를 잃고 좌절하는 그들의 힘없는 눈망울이 파인더에 들어왔다. 그 눈빛 저편엔 언젠가 돌아올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아직은 그들 스스로 자립할 힘이 없지만 언젠가 스스로 분명일어설 거라고 믿는, 삶을 사랑하는 평범
한 사람들이었다.

●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거의 매일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촌의 재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찰하고 있자면 지금이 과연 냉전이 붕괴된 평화의 시기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의 시기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사투가 지구촌 곳곳에서 깊고 넓게 이루어지는 대전쟁의 시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이티 대지진 이후 우리나라에선 모든 기록을 갱신하는 엄청난 액수의 국민 모금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한국인은 성숙한 세계 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관심이 벌써 아이티에서 멀어졌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정부와 NGO 단체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레오가네 시에서 복구 활동을 곧 시작한다고 한다. 지진으로 도시의 80~90%가 파괴된 곳이다. 이곳에서의 활동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우리 국민의 관심이 살아나길 기대한다.
● 아직 아이티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올해는 한국 전쟁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 으로 날아와 목숨을 걸고 원조 활동을 벌인 수많은 무명씨들을 기억하며 우리도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 정도 양심은 있어야 한다.

9 3주간을 머물다 보니 이재민촌도 정감 어린 우리 동네 풍경처럼 보이게 됐다. 천막은 때론 연극무대의 가림막처럼 보인다. 언젠가 이 가림막을 젖히면 고난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평화의 시대가 오길 기도한다.


아이티에 희망을 선물하세요!
더불어 살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수치화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당신의 작은 마음으로 아이티에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 3만 원으로 아이티 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 40명에게 고단백비상식을, 5만 원으로 수인성 질환과 설사병으로 인한 탈수증에 시달리는 어린이 7백 명에게 구강 수분 보충염을 먹일 수 있습니다.
또 10만 원으로 항생제와 소독약 등이 들어 있는 기초 의약품 세트3개를, 27만 원으로 이재민을 위한 임시 거주용 텐트를, 30만 원으로 2천 명의 어린이에게 홍역 예방접종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가슴 따뜻한 당신이 아이티의 희망이 되어주세요. 아이티 정기 후원과 일시 후원은 아이티의 긴급 구호, 재난 복구 사업, 재건 지역 발전 사업에 힘쓰는 굿네이버스(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부여한NGO 최상위 지위를 획득한 국내 최초의 국제구호개발 NGO)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문의 gni.givestart.org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