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귀 기울여 들어보니]아티스트 김아타 나는 시간을 잉태하는 뉴욕의 예술가
그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아티스트다. 그가 찍은 사진 한 장은 빌 게이츠를 비롯한 전 세계 수집가에게 팔린다. 2006년 뉴욕 ICP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뉴욕 타임스>는 그를 대서특필했다. 동양 사상에 기초한 심도 깊은 철학과 작품성에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20여 년간 한 가지 주제만을 발전시킨 열정과 집념의 예술가. 그가 최초로 100평 남짓한 맨해튼 스튜디오를 공개했다. 창작의 불꽃들로 직조한 그의 시공간을 찾아서.


그의 작품  ‘온에어 프로젝트’ 의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한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시간을 사유하는 예술가 김아타의 모습이다.

김아타는 아티스트다. 카메라로 이리저리 시간을 채집하는 인생의 예술가. 그는 철학자다. 하이데거와 구르지예프, 붓다와 노 ・ 장자를 거쳐 이제는 어느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관념의 자유인이 되었다. 그는 집요한 노동자다. 무엇이든 잡았다 하면 최소 8시간, 1만 개의 수확쯤은 거둬야 하는 뚝심의 일꾼. 그래서 그가 포착해내는 순간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분명 마음의 부자다. 오랜 세월, 작품이 외면당할 때에도 그는 자존을 생명처럼 여겼다. 욕망과 탐닉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제왕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 그는 뉴욕 땅에 깃발을 꽂고 다시없는 치세를 누리고 있다.
작가로서 그 삶의 궤적은 이렇다.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해체’ ‘뮤지엄 프로젝트’ 등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2000년 휴스턴 포토 페스티벌, 2002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 2002년 영국 사진 전문 출판사 파이돈이 선정한 세계 100대 사진가, 2004년 세계 권위의 출판사 어패처가 발간한 사진집 을 비롯해 지금까지 세계적 출판사 베를린의 하체칸츠에서 2권, 스타일드에서 1권, 국내 출판사에서 3권의 사진집과 6권의 에세이집 그리고 1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2006년에는 뉴욕 사진 센터 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최하는 유일한 아시아 작가가 되었다. 2007년 사진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도이체 보르세 포토그래피’에 동양인 최초로 노미네이트되는가 하면, 작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초청 작가가 되어 특별전 를 열었다.
눈 깜짝할 사이 20년이 지났다. 잠깐 플래시가 터지는가 싶더니, 그는 거물이 되었다. 현재 빌 게이츠 미술재단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협회, 개인 소장가들이 그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1  그가 최초로 공개한 맨해튼 스튜디오. 지은 지 80년이 넘은 건물의 100평 남짓한 공간을 리모델링해 쓰고 있다.

현재 뉴욕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사진가 김아타와 뉴욕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것인지, 작가와 도시가 갖는 특별한 정서적 고리를 듣고 싶습니다.
뉴욕은 가장 화려한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야만적인 도시입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야누스의 얼굴로 뉴욕을 치장했지요. 앤디 워홀과 메이플소프의 작품이 그것을 대변해줍니다. 전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상류사회 인간상이 모델이었다면, 후자는 영과 육이 난무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하다 에이즈로 죽었지요. 그들은 삶과 죽음을 예술로 포장한 전사들이었어요. 뉴욕은 저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온에어 프로젝트’의 ‘8시간’ 작업을 뉴욕에서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이 그런 것이지요. 이놈의 잘난 뉴욕이 먼저 타깃이 된 것입니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 촬영 허가를 받기 쉬운 곳이 뉴욕입니다. 영화를 촬영하거나 어떠한 예술 행위를 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나는 ‘인달라’ 작업과 ‘8시간’ 헌팅 작업을 하면서 뉴욕의 구석구석을 훑었지요. 뉴욕은 5번가를 중심으로 이스트, 웨스트, 업타운, 다운타운, 할렘 가 등 어느 곳 하나 버릴 것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뉴욕의 가장 이상적인 점은 다양함입니다. 뉴욕만큼 다양한 도시는 없습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그 스펙트럼은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대략 뉴욕에만 약 20만 명의 아티스트가 살고 있습니다. 최고의 프로페셔널이 가까이에 있는가 하면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많은 군상이 동거하는 곳이 뉴욕입니다. 오늘 거리에서 나와 어깨를 부딪친 사람이 최고의 아티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 같은 도시가 뉴욕입니다. 스튜디오에 있는 작은 어항에 붓다를 세팅하기 위해 구하러 다녔는데, 집 근처에서 2백 달러 하던 것이 차이나타운에서 30달러 했답니다. 질문과 다른 이야기 같지만, 원하는 것을 구색에 맞게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뮤지컬과 오페라, 현대무용 등 오늘도 극장에는 세계 최고 프로페셔널들의 공연을 볼 수 있지요. 센트럴 파크는 가장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요람입니다.


2 스튜디오의 한쪽 벽에는 세 마리의 금붕어, 작은 붓다 조각, 해골 형상의 유리로 만든 보드카 병이 침묵의 대화를 하고 있다.

뉴욕의 스튜디오는 어떤 공간입니까? 단순한 작업실인가요? 그곳에서 생활도 하시는지요?
뉴욕 스튜디오는 작업하는 공간이자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여느 스튜디오처럼 촬영 장비가 가득하고 많은 스태프가 분주히 움직이는 그런 작업실이 아닙니다. 현재 촬영은 현장에서 하고 아트워크와 프레젠테이션, 일상적인 미팅은 스튜디오에서 합니다.
지은 지 80년이 넘은 건물에 약 100평 공간을 리모델링한 이곳에는 뉴욕적인 운치가 가득 차 있습니다. 달마가 동으로 가듯이 아타는 동쪽으로 왔는데 뉴욕 스튜디오에는 아침마다 서쪽에서 해가 뜹니다. 스튜디오에는 오래된 창이 많습니다. 죽순처럼 솟아 있는 뉴욕의 건물들에 튕겨 난 햇빛은 시시각각 각도를 달리하며 그대로 스튜디오의 아침을 깨웁니다. 창가에 있는 많은 식물들은 임을 기다리듯 줄지어 이때를 기다리지요. 힘이 오른 태양은 이제 막 싹을 낸 여린 잎의 섬유질 사이로 찬란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가장 에로틱한 생명을 빚은 아티스트, 오키프가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어항에는 세 마리의 금붕어와 작은 붓다 조각과 해골 형상의 유리로 만든 빈 보드카 병이 침묵의 대화를 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현상이지요. 스튜디오에는 아트워크에 충분한 용량의 컴퓨터가 6대 세팅되어 있고 150인치 대형 스크린에 나름 제대로 된 오디오 설비가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하는 아트워크는 ‘인달라’가 그 대표적인 작업이지요. 한 도시를 현장에서 1만 컷 촬영하여 최종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이곳에서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뉴욕 미술계의 좋은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그는 20년 가까이 오로지 존재와 사라짐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해체’ ‘뮤지엄 프로젝트’ ‘온에어 프로젝트’ 등의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의미의 ‘온에어 프로젝트’는 그 심오한 메시지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안에는 다양한 기법의 여러 시리즈가 포괄적으로 공존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8시간’ 시리즈. 8×10인치의 대형 필름으로 한 장소를 8시간 이상 장노출로 촬영해 건물을 제외한 모든 움직이는 대상을 뿌옇게 날린 것이다. 뉴욕, 파리, 베이징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를 각각 1만 장의 사진에 담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인 ‘인달라’ 시리즈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1만 컷의 이미지를 촬영해 모든 이미지를 포개 쌓으면 최종 하나로 남는 것은 오로지 회색 덩어리뿐. ‘한 컷 한 컷에 담긴 수많은 기호와 담론들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며, 관심을 갖고 작품 속에 침투해 들어가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밖에도 마오쩌둥과 파르테논, 메릴린 먼로 등 역사적 아이콘을 대형 얼음 조각으로 제작해 서서히 녹아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얼음의 독백’, 100개국의 남자 100명을 촬영해 하나의 이미지로 합친 ‘자화상’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이다.


3 2008ON- AIR Project 160-8, from the series ‘india’, 8 hours, 188×248cm, chromogenic print, 2007

당신의 작품 세계를 꿰뚫는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개념, ‘중용’이라는 철학으로 요약됩니다. 이런 세계관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또 이런 철학을 작품으로 구현한 이유는?
제 작업 스타일은 대부분의 아티스트처럼 동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아이디어를 설정하고, 그것을 옮기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감각이 무디고 게을러서 그냥 제 방식대로 갑니다. 아용아법我用我法(나는 나의 법을 사용한다)이지요.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가 <해체>를 낳았고, ‘해체’의 해체가 ‘뮤지엄 프로젝트’이고, ‘뮤지엄 프로젝트’가 해체된 것이 ‘온에어 프로젝트’입니다. 어느 날, 작업이 저를 새로운 공간에 데려다 놓습니다. 내일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실상이 그렇습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서 손에 잡을 수 없고, 미래는 다가오지 않아서 잡을 수 없고, 현재는 눈을 맞추는 순간 가고 없습니다. 그냥 지금 잘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너무나 통속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을 얻었답니다. 이것을 이미지로 현상한 작업이 ‘온에어’지요. 다양한 시리즈는 볼거리들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들과 같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온에어 프로젝트’ 중 ‘인달라’ 시리즈에서 한 도시를 1만 컷 촬영해 하나로 포개어 쌓으면 회색이 됩니다. 피카소의 엄청난 양의 작품을 하나로 만들면 회색이 됩니다. 그렇다고 회색을 중용의 색이라 말하는 것은 무리이며, 회색을 부정적 의미의 회색분자라 말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모든 사물이 타고 남은 재가 회색이고, 그것은 인간의 몸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 태워버리고 마지막 남은 어떤 것이 회색입니다. 이것은 아타가 만든 색이 아닙니다. 자연의 물리적인 이치입니다. 중용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을 모두 깨달음을 중용이라 합니다.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의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지만 내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예술도 많은 시간을 숙성시키는 과정이다. 김아타의 ‘인달라’가 그렇다. 그것은 ‘온에어 프로젝트’의 꽃이자 그의 인생의 꽃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 시작한 작업이지만 완전히 숙성된 개념으로 나타난 것은 최근 일이다. 2007년부터 진행한 이 작업은 현재까지 모스크바, 뉴욕, 워싱턴, 도쿄, 베를린, 프라하, 파리, 로마, 서울, 런던, 델리, 아테네, 베네치아, 타지마할, 베르사유 등을 완성했으며, 앞으로 100개 도시를 채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단한 셈법으로는 불가능한 그야말로 ‘무식한’ 작업이다. 그는 뉴욕에 머무는 최근 5개월간 또 다른 흥미로운 작업에 몰두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한 미술사의 역사를 하나로 만드는 ‘인달라’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고흐와 피카소, 윌리엄 터너, 마크 로드코, 잭슨 폴록, 앤디 워홀, 프란시스 베이컨, 르네 마그리트,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살바도르 달리, 샤갈의 수많은 그림들을 각각 하나로 만들었다. 시대를 초월해 예술가의 한과 영광의 순간을 만나는 축복의 과정이었다.


4 ON- AIR Project 210-1, from the series ‘Paris’, 8 hours, 188×248cm, chromogenic print, 2008

현재 당신의 사진은 어디서 어떻게 전시되고 있습니까? 작품을 구매하고 그 가치를 높여주는 팬들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제 작품은 미술관에서도 많이 컬렉션하지만 전 세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빌 게이츠의 아트 컬렉션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들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작품 가격은 작품마다, 에디션마다 다르지만 지금 제작하는 ‘인달라’부터는 오직 하나의 에디션만 만들 예정입니다. 즉 사진이 갖고 있는 특수성인 무한 카피의 장점이자 단점은 버리고, 미디어로서 장점만 가지게 됩니다. 즉 에디션을 많이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사진의 프리미엄을 버리는 것입니다. 대신 오리지널리티를 얻게 되지요. 무한 카피 시대를 역행하는 무모한 시도 같지만 마음은 후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가 “가장 화려한 도시이면서 가장 야만적인 도시”라고 표현한  뉴욕의 심장에서.

지금의 ‘아티스트 김아타’ 에게 아내의 도움은 분명 컸으리라 짐작합니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아픔과 상처, 그것을 승화시켜가는 시간, 그리고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어떤 가족이나 국가든 히스토리가 있지요. 가족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영원한 타인이면서 타인이 아닌 특수한 인간관계지요. 철학과 예술이 완벽하게 다르지만 분리될 수 없는 관계와 같습니다. 아내는 현재 나의 일등 참모이자 스튜디오의 아트워크 책임자로 현장에서 일을 하며 아들은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며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세트 같은 든든한 동반자들이지요. 힘든 과정을 함께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요. 이 시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의 끝은 성공이나 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에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명예와 부와 정체와 사상, 그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입니다.
그는 오늘도 뉴욕에 홀로 서서 펄럭이는 창조의 깃발을 날리고 있다. 오로지 인생을 관통한 한 가지 주제만 고집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아티스트. 우리가 그의 사진에서 마지막 얻은 것은 생명의 예감이었다. 모든 소멸하는 것은 생명과 함께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시간이라는 대지에 던져진 한 톨의 씨앗과 같이. 타임스 스퀘어를 가르는 현란한 섬광과 들끓는 인간의 욕망이 마천루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오후, 영원한 이방인 ‘아타(我他)’가 거기 서 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www.attakim.com을 참고하세요 .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