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반려 동물이라는 가족]은퇴한 시각장애인 안내견 조선이와 이은옥 씨 가족 “수고했다, 이제 다리 쭉 뻗고 지내렴”
주인의 눈과 지팡이가 되기 위해 엄격한 훈련을 받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일생 중 7~8년 동안 사람을 위해 헌신한 뒤 은퇴하고 나면 여생을 비장애인 자원봉사 가족과 함께 보낸다. 골든 리트리버 조선이는 3년 전 안내견의 임무를 마치고 은퇴했는데, 새끼 때 사회화 과정을 거치느라 함께 지낸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느 은퇴견보다도 행복한 ‘견생 2막’을 보내고 있는 조선이와 이은옥 씨 가족의 하모니를 들어봤다.


오른쪽부터 이은옥 씨, 조선이, 조카 안진영 씨, 아들 방성식 씨. 조선이 같은 안내견은 원래 소파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훈련받지만,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했다.

열네 살 골든 리트리버 ‘조선’이는 거실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80대 할아버지. 조선이의 ‘엄마’ 이은옥 씨는 조선이가 세상에서 제일 평안하고 느긋한 개였으면 좋겠다. 이은옥 씨 마음이 이렇게 애틋한 데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1998년 생후 7주일 된 조선이가 이은옥 씨 가족에게 왔다. 그런데 조선이는 일반적인 애완견이 아니었다. 삼성안내견학교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되기 위한 후보생이었다.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을 받기 전, 사회화 과정을 거치기 위해 이은옥 씨 같은 자원봉사자 가족이 1년 동안 후보생 개를 돌봐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퍼피 워킹 puppy walking’이라고 부른다. 퍼피 워킹이 끝난 뒤 가족은 조선이와 눈물의 이별을 했다. 그 후 조선이는 6개월간의 까다로운 훈련을 마치고 늠름한 안내견이 되었고, 8년 동안 한 시각장애인을 보필했다. 아름다운 임무를 마친 조선이는 2007년 안내견 자리에서 은퇴했고, 삼성안내견학교의 주선으로 이 가족이 다시 조선이를 맡아 기르기로 한 것이다.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는 이렇게 다시 조선이와 한가족이 되기 어려웠 겠지요.” 9년 만의 만남. 이은옥 씨 가족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국의 은퇴견 36마리 중 퍼피 워킹 때 만난 가족에게 돌아가는 경우는 조선이를 포함해 세 마리가 전부라니, 흔치 않은 인연이다. 사실 처음에 이은옥 씨는 은퇴한 조선이를 다시 맡기가 망설여졌다. 퍼피워킹을 한 뒤 이별할 때 참 슬펐는데(조선이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는 구타당해 한쪽 눈이 먼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기도 하고, 떠도는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기도 했다), 언젠가 조선이와 영영 이별할 때는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다. 그런데 남편 방승진 씨가 적극적으로 기르자고나섰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으니 은퇴한 뒤에는 편안하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릴 적 함께해서 익숙한 이곳에서라면 조선이도 맘 놓고 쉴 수있을 테니, 우리가 기르는 게 옳을것 같더군요.”


1 이은옥 씨의 든든한 산책 동반자 조선이. 간혹 몸집이 작은 개들이 덤비고 짖어대도 조선이는 으르렁대지 않고 신사답게 참는다.
2 이은옥 씨와 조선이의 평온한 오후.


퍼피 워킹을 할 당시 조선이는 식탁에 놓아둔 음식을 몰래 먹던 천방지축이었는데 9년 만에 만나보니 몰라보게 의젓한 신사가 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절대로 용변을 보지 않기 때문에 용변을 보게 할겸 하루 세 번 함께 산책을 나가요. 언젠가 집에 손님이 오셔서 산책을 못 했더니 조선이가 자꾸 나가자고 보채는 거예요. 좀처럼 저를 귀찮게 하지 않는 애가 왜 이러나 싶었지요. 한참 뒤 데리고 나갔는데, 밖에나가자마자 막 설사를 하더라고요.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배앓이를 참고 버텼다는 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시각장애인을 항상 안전하게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안내견은 참고 기다리는 훈련을 받는다. 정해진 시각에 주인이 주는 사료만 먹어야 하고, 소파나 침대에 올라가서도 안 된다. 조그마한 몰티즈가 달려들어 물고 덤비는데도 짖거나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이제 은퇴했으니 조선이가 가족의 품에서 이 모든 긴장감을 내려놓고 지냈으면 싶은데, 사람을 배려하는 습관은 이미 조선이의 ‘제2의 천성’이 된 모양이다. 방승진 씨는 마음이 짠할 때마다 그가먹는 간식을 조선이에게 조금씩 나눠준다. 그래서 요즘 조선이의 무한사랑, 정열적인 꼬리 웨이브 공세를 받고 있다.
조선이는 현재 이은옥 씨 아파트 일대에서 최고 인기 스타다. 순하고 예쁘게 생겼을 뿐 아니라, 견생의 청춘을 사람에게 헌신했다는 이야기에 주민들은 조선이를 기특하게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조선이 역시 이런 호의적인 시선을 느낀다. “자기한테 친절한 사람을 보면 좋아하고, 불친절한 사람 앞에서는 주눅 드는 건 사람이랑 똑같아요. 조선이가 몸집이 커서 주민들이 꺼려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환영받으니까 내자식이 사랑받는 듯 기쁘더라고요.” 이은옥 씨는 조선이가 싫어하는 귀 청소를 해야 할 때는 엄한 군기반장이 된다. 하지만 평소에는 조선이의 자상한 엄마이자, 눈빛만 봐도 속을 아는 친구다. 조선이가 오후 햇살을 쬐고 있으면 엄마가 등을 긁어준다. 이은옥 씨가 책을 읽다가 어쩐지 쓸쓸해서 창밖을 바라보면 조선이가 바짝 다가와 ‘끄응’ 하며위로한다. “아들처럼, 친구처럼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 때면 ‘조선이도 내가 느끼듯 행복하겠지?’ 싶어요. 조선아, 그치?”
은퇴한 안내견이라고 하면 죽음을 앞둔, 기력 없는 개라고 딱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방승진씨도 조선이를 다시 데려올 때 그랬다. 그런데 함께 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산책 나가면 젊은 개못지않게 뛰어다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활발한 개예요. 조선이는 나이드는 것을 걱정해 지레 움츠러들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조선이를 통해제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노년이 되면 기력이 조금 약해졌을 뿐이지, 즐겁고 활기차게 살려는 의지가 꺾인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시각장애인의 착실한 지팡이가 되었던 조선이의 은퇴 후 ‘견생 2막’,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다.

삼성안내견학교가 들려주는 안내견 상식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안전하게 돕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함으로써 장애인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고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한다. 안내견을 많이 양성하고 공공장소에서 안내견이 환영받는 사회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선진 복지국가인 셈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어떻게 육성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안내견학교가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을 육성하는 기관이다. 엄선된 리트리버 순종 한 마리를 새끼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지원하는 데 수천만 원이 드는데, 훈련된 안내견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상 지원한다.
퍼피 워킹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가족 중 출퇴근하는 직장이 없는 일원이 있어야 하고, 강아지를 실내에서 사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미취학 어린이가 있다거나 애완동물을 2마리 이상 키우는 경우는 어렵다. 삼성안내견학교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훈련과 건강관리를 도와주며, 사육 경비도 삼성안내견학교에서 부담한다. 홈페이지(mydog.samsung.com)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안내견을 분양받고 싶다면? 20세 이상의 시각장애인이어야 하며, 안내견 관리 능력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문의 삼성안내견학교 031-320-8922
길거리에서 안내견을 만났을 때 우리의 에티켓은? 안내견이 ‘근무 중’일 때는 만지거나 ‘쫑’ ‘쪼쪼쪼’ 하는 식으로 부르는 등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행동을 삼가도록 한다. 안내견이 낯선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면 영문을 모르는 시각장애인이 당황하게 되므로 따뜻한 시선만 보내도록 한다. 한편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면,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 번호를 알려주거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알려준다. 개는 색맹이므로 신호등 색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