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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타는 호산 스님 "스님은 보드 탈 때 무슨 생각 하세요?"
양평 용문사 주지인 호산 스님은 스노보드 전문가다. 우연히 시작한 취미가 벌써 13년째. 혼자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8년째 ‘달마배 오픈 국제 스노보드 대회’도 주최하고,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스님은 보드 탈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라는 물음에 “도 닦는 마음이면 스노보딩도 명상과 다를 바 없다”라며 스님은 허허 웃는다. 이렇게해서 스키장과 용문사에서의 우문현답이 시작됐다.
호산 스님이 눈밭에 스노보드를 띄웠다. 눈의 결을 따라 삭, 삭, S자로 내려왔다. 살짝 몸을 비틀며 점프를 했다. 허공에 몸이 붕 떴다. 장삼 자락이 바람을 머금으며 펄럭였고 고글이 햇빛에 번쩍였다. 그 짧은 찰나, 여유 있게 웃으며 멋진 포즈를 잡았다. 이윽고 사뿐히 착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스님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뜻 모를 통쾌함이 느껴졌다. 스님이 스노보드를 타다니! 그것도 전문가 수준으로, 짜릿하고 신나게!
장삼 입은 호산 스님이 보드를 옆에 끼고 성큼 걸어왔다. 이번이 올겨울의 첫 보딩이라 몸이 좀 더 풀려야 제대로 폼이 난다며 멋쩍어했다. 하프 파이프(half pipe: 반원통 모양의 슬로프)가 있다면 다이내믹한 기술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아직 철이 일러 하프 파이프가 정비되지 못한 상태라 아쉽다고 했다. 하프 파이프라면 TV에서도 본 적이 있다. 오목한 반원통 슬로프를 오르내리며 공중 회전을 하는 경기다. ‘훨훨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한, ‘날아라, 스노보드!’라고 외치고 싶은 경기다. 옆에 있던 스키장 안전 요원이 설명하길 540도로 공중 회전을 해야 하는 고난이도 종목이란다. 호산 스님이 13년째 갈고 닦은 스노보드 실력은 자타 공인 전문가 수준이었다.
한데 스님의 스노보드 실력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뒷모습이었다. 허리춤이 골반까지 내려가고 밑이 헐렁한 보드 바지를, 호산 스님도 입고 있었다. 그것도 장삼 자락 안에. 청소년이나 20대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그 힙합 스타일 바지를, 눈밭을 살살 쓸면서 걸어야 제맛인 그 바지를 스님이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다.
승복만 입던 스님에게 낯선 옷차림이 어색하지 않았을까? “스님 바지도 힙합 바지예요. 그래서 스노보드 바지를 처음 입었을 때 익숙한 느낌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품이 넉넉한 승복 바지가 힙합 바지와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사이, 스님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좀 더 난이도 높은 코스를 타려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위) 호산 스님이 스노보드를 타고 설원을 날았다. 요즘 용문사 주지의 본분을 다하느라 스노보딩 연습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13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이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


1 올겨울 첫 스노보딩을 마치고 양평 용문사로 돌아온 호산 스님.

스님이 왜 스노보드를 타냐고요?
모두들 궁금해한다. 스님이 스노보드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 “한때 어느 스키장에서 큰 사고가 잦아 사람이 많이 다치곤 했어요. 그곳에 지신밟기를 하고 기도해주러 갔다가, 시즌 입장권을 선물 받아 스키를 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스키가 그리 즐겁지는 않더군요. 무거운 부츠도 신고, 폴도 짚고, 자세도 로봇처럼 딱딱했어요. 그러던 차에 보드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어요. 이것 참 획기적이다 싶었지요.” 스님에게는 좌, 우, 앞, 뒤 방향에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스노보드가 매력적이었다. 직접 타보기로 했다.
1997년 당시는 스키어 천 명 중에 스노보더가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때다. 그나마 스노보드 타는 사람들은 거의 10대나 2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스노보드를 시작했다니 스님(그 무렵 속세 나이로 30대 후반), 참 용감하다. “저는 좋아서 시작했지만, 아이들이 세대 차 난다며 안 끼워줬어요, 허허. 하지만 마음을 열면 충분히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내가 어린 친구들에게 열심히 배우려 했고요. 아이들이 힘들 때 다독여주고 뒤에서 응원도 해주니까 차츰 친해졌어요. 편하게 ‘형님’이라 부르라고도 했지요.” 언제부턴가 스키장에 스님이 안 보이면 아이들이 스님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보드 타는 아이들은 좀 삐딱한 청소년으로 비쳐졌다. 복장도 느슨하고 스키와 달리 포즈도 왠지 건방져 보이고…. “스노보드 타는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니 상당히 순수했고, 순수하기에 자기 개성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좀 친해진 뒤에 왜 스노보드를 좋아하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정해진 방향이 없고, 새로운 포즈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어서 창조성이 무한한 스포츠라고, 그래서 좋다고 하더군요. 스노보드는 학교, 학원, 집에 묶여 있는 아이들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통로였던 겁니다.”
보드 타는 사람은 누구라도 새로운 기술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이름은 처음 시도한 보더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척 플립’이라는 기술은 마이클 척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플립을 구사해서 그렇게 불린다. 젊은이들의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직접 해보니까, 스노보드는 혼자 질주하는 것보다 여럿이 어울려 타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여럿이 ‘떼 보딩’을 즐기는 사람이 실력도 금방 늘고요.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는 것이지요.”


1 세대 차이 난다며 호산 스님을 서먹하게 대했던 젊은이들은 곧 스님과 친구가 되었다.
2 용문사의 신도들 역시 스님과 허물없이 지낸다.


스노보드계의 큰스님이 되다
호산 스님이 머리에 쓰고 있던 노란색 털모자를 흔들어 보인다. 스노보드 탈 때마다 쓰는 이 털모자는 10년 전쯤 선수 생활을 하던 한 젊은 친구가 만들어준 것이다. 그 청년이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을 때 스님은 “고난은 쓰고, 쓴 것은 약”이라고 다독여줬다. 청년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일본 친구에게 뜨개질하는 방법을 배우더니, ‘스님한테 어울릴 것 같다’며 이 모자를 만들어줬다. 그날, 스님은 젊은 친구에게 한 수 배웠다.
호산 스님에게 상담을 청하는 젊은 친구도 많았다. “스노보드를 좋아하는데, 앞으로 선수로 나가볼까요?” “부모님이 반대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묻는다. 부모들이 보기에 스노보드는 다른 운동에 비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종목이다. 골프나 야구라면 모르겠지만, 보드를 타면서 먹고살겠느냐는 것이다.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깨달은 게 있습니다. 불교에서 인연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도 죄 인연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젊은 보더들이 뛰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 2002년 호산 스님은 ‘달마배 국제 오픈 스노보드 대회’를 만들었다. 국내에 스노보드 대회가 별로 없어서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하려면 해외로 나가야 했던 당시, 이 대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호산 스님이 주최하고, 주위의 여러 스님들이 후원했다. 아이들은 대회 이름을 ‘달마배’로 지었다. 스님은 종교 색이 느껴져 다른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 달마배로 불리고 있어서 바꾸지 못했다.


3 용문사 전등 행사에서 선보일 ‘스노보드 타는 동자승’ 전등. 어디에나 불법은 있다는 말씀이 담겼다.
4 그는 말한다. “사람 속에 살아야 사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뜬구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람 속에 있습니다.”


이 대회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순위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축제처럼 즐기는 대회라는 것이다. “경쟁이 목표가 되면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그런데 달마배는 설령 실수를 한다 해도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에게는 그에 맞는 상을 줍니다.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지요. 마음이 편하니 자유롭고 좋은 기술이 많이 나오고요.”
등수 매기기에 익숙한 우리는 ‘경기’ 하면 1, 2, 3등을 떠올린다. 호산 스님에게 경기란 ‘빨・주・노・초・파・남・보’다. ‘저 아이는 주황색, 저 아이는 하늘색, 저 아이는 초록색’ 하는 식으로 자기만의 색을 선보이는 무대다. 형형색색의 무대이니 어떻게 해도 ‘틀린’ 것은 없다. 단지 다를 뿐이다. 그 다른 스타일이 특히 참신하고 멋지다면 격려의 의미로 상을 준다. 힘들 때마다 등을 두드려주는 스님은 스노보드 선수들의 친구이자 멘토다. 결혼할 때는 주례도 부탁한다.
재작년에는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아 대회를 쉬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상금이 없어도 좋으니 대회를 열어달라고 했다. 자기들이 자원봉사로 나서겠다며 스님에게 매달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그리 염원하니, 어렵지만 추진했지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재작년부터는 월드컵이나 US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필요한 피스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국제적인 대회로 인정받으며 한 단계 도약했다.

지금 이순간, 주인공은 바로 당신
호산 스님이 주지로 있는 양평 용문사로 따라나섰다. 보드복을 벗고 승복으로 갈아입은 호산 스님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주지 스님인데, 근엄한 표정이 없다. 절을 둘러보니 아궁이 뒤쪽에 겨울을 나게 해줄 장작이 높이 쌓여 있었는데, 그 장작도 직접 팬 것이란다.
다실에 걸린 사진 한 점이 눈에 띄었다. 광활한 설원에서 스노보드 타는 스님 사진이다. 캐나다 휘슬러로 훈련 갔을 때란다. 아니, 프로 선수도 아닌데 원정 훈련을? “이왕 하려거든 열심히 해야죠.” 그곳에서 프로 선수들과 함께 점프나 하프 파이프를 연습하며 실력을 닦았다.
승복 입고 스노보드를 든 스님에게 캐나다 입국 심사관이 묻더란다. “스님은 보드 탈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 영어가 짧아 제대로 답하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랬다. “나는 보드를 타도 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욕심을 채우려거나 뭔가 이루려 하지 않으므로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타면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처음 스노보드를 탈 때는 다소 염려하는 어른 스님도 계셨고, 신도들 중에서도 좀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도나 탱화 같은 스님들의 전형적인 취미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차차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놓을 때는 과감히 놓고 초월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수행하는 사람이 무얼 하더라도 관계가 없지요. 그리고 스노보드처럼 동적인 움직임 중에도 명상 같은 정적인 수행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요. 실제로 선수들은 경기할 때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쉽게 말해 수행에 접목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불법을 닦는 스님에게는 선방에서 정적인 수행에 정진하는 것이 우선이니, 다른 취미는 넘치지 않는 범위에서 부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산 스님이 직접 따서 말렸다는 구절초 차를 내줬다. “구절초, 맥문동…. 생긴 게 다르니 차 맛이 다 다르죠. 자기 스타일이 다 달라서 그렇습니다.” 스님은 ‘스타일’을 지그시 눌러서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것도 각각의 스타일을 낼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정답이란 없고요. <금강경>에 나오는 ‘무유정법 無有定法(정해진 법이란 없다는 것이 진짜 법이고 진리다)과 통합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정해진 법과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숲에는 매끈하게 자란 나무도 있고 옹이가 많은 나무도 있듯이 자연은 있는 그대로 다 아름다운데….” 모범 답안을 꿈꾸며 자녀를 모범생으로 가둬서는 안 될 것이다. 모범 답안이란 실상 세상에 있지도 않은 허구이니 말이다.

1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스노보드를 타는 것과 명상을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2 용문사 양지바른 곳에 젖은 스노보드 장비를 말렸다. 장비는 누가 주는 대로 받아서 쓰는데,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흔쾌히 내준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인데 살면서 대부분 잊고 살지요. 불법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라, 그리하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모두 진실되리라(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삶을 누리고, 바로 이 순간의 주인이 되라는 말씀이지요.” 밥을 먹으면서 40% 할인하던 스카프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고, 에어로빅을 하며 간밤에 남편과 싸운 일을 곱씹던 적이 많지 않은가?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는 ‘유령’ 같은 상태로 사는 일이 많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한곳에 집중하면 나를 잊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무아 無我, 그 시공과 일체가 되는 상태다. 호산 스님의 아이디어로 요즘 만들고 있는 ‘보드 타는 동자승’ 모양 전등과 ‘MP3를 듣는 동자승’ 모양 전등도 무아의 경지를 보여준다. 엉덩이를 쭉 내밀고 스노보드에 열중하는 동자승 모형은 뜬구름 잡는 소리 열 마디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위인전 속 사람들만을 주인공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일이 안 풀린다고 ‘이놈의 조연 같은 인생이 그렇지 뭐’하며 한탄하지 않았는가? ‘루저’라는 유행어에 씁쓸해하면서도 혹시 속으로는 자신의 일부분이 ‘루저감’이라고 자조하지는 않았는가? 내 아이는 이미 한 송이 어여쁜 들국화인데, 모란꽃이 되어야 한다고 윽박지르지는 않았는가? 생각이 번다해진 찰나, 호산 스님의 한마디. “차를 드시게.” 그렇지, 차 마실 땐 차를 마셔야지.

*올해도 2월 초에 달마배 국제 오픈 스노보드 대회가 열립니다. 대명 비발디파크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도 백미는 역시 호산 스님의 시범 경기겠지요. 스님이 장삼을 휘날리며 하프 파이프를 날아오르는 모습, 생각만 해도 시원합니다. 문의 용문사 031-773-3797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