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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식탁>의 저자 이주희 씨 사치와 평온, 쾌락의 부엌 일기
요리를 엔터테이닝으로 즐기는 ‘유희형 요리인’이자 요리책의 사진을 보며 입맛 다시는 일이 취미인 ‘푸드 포르노 중독자’. 요리를 지극히 주관적 행위이자 취미로 여기는 <이기적 식탁>의 저자 이주희 씨를 만났다.

최근 발칙한 구석이 있는 요리책을 만났다. 음식은 ‘정성’으로 완성하며 ‘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 통념에 반하는 책, 제목마저 <이기적 식탁>인 이 책은 한쪽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책 모양까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흥미로운 마음에 첫 장을 열어보니 작가의 친절한(?) 고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잃어버린 기억 속의 맛과 따뜻한 마음이 담겼던 추억의 한 그릇 이야기로 코끝에 펀치를 날리는 감동의 음식 에세이도, 페이지가 모조리 각종 양념 묻은 손자국으로 얼룩질 만큼 유용한 가정 요리 요리책도, 펴는 순간 침이 줄줄 흐르고 눈앞이 흐릿해지는 화려한 사진의 쿡 북 cook book도 아니다. (중략) 단지 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의 부엌 일기’다. 요리가 자기 수양과 명상의 시간처럼 스스로를 치료하는 시간이라는 그런 말은 그닥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
에세이와 레시피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의 일상을 경쾌하게 풀어내 읽는 내내 ‘킥킥’거릴 수 있는 유쾌함이 담겨있다. 때론 ‘섹스는 모닝 섹스, 아침은 팬케이크’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읽는 재미를 더했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음식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처럼 솔직하고 편안하게 풀어낸 작품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발칙한 책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 이주희 씨가 궁금했다.

1, 3 매년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에게 요리책 선물을 받는 이주희 씨.


2 직접 만든 북극곰(앞)과 고양이(뒤) 인형 그리고 의자 꼭대기에 웅크려 앉은 막내 고양이.

푸드 포르노 중독자의 조립 레시피
한적한 이태원 주택가에 살고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서니 아기 고양이가 손님을 반긴다. 올해 나이 서른둘. 부모님에게서 독립한 그는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175cm의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눈매를 지닌 주인을 닮은 깔끔하고 단정한 집 안을 슬쩍 둘러보는데, 유독 질서 없이 모든 물건이 뒤섞여 있는 공간, 주방에 시선이 멎는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 싱크대가 물 한 방울 없이 보송하고, 냉장고는 채소와 생선들이 꿈꾸는 신선 동산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싱크대의 수챗구멍은 셀러리 스틱을 꽂아서 손님 앞에 내어도 될 만큼 깨끗할 거라고. 여러분, 내가 요리하는 건 냉장고와 싱크대가 아닌걸요. 요리와 살림은 별개랍니다. 진짜로요.
스스로를 ‘최악의 살림꾼’이라 고백한 구절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정말 솔직한 작가임을 확인한 순간 밀려오는 궁금증 하나. 진짜 ‘이기적인 식탁’만 차리는가?
“하하. 친구들 불러서 음식 만들어 먹는 것 좋아해요. 다만 그들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것, 그 순간에 ‘꽂힌’ 음식을 만드는 점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가 음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리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그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때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의 작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주방을 기웃거리며 요리의 재미를 알았다.


이주희 씨가 제안하는 조립 레시피
1 명료한 샌드위치 적당할 만큼 구멍이 송송 뚫린 가볍고 보송하면서 쫄깃한 치아바타를 반으로 가르고 + 풍미와 텍스처 모두 훌륭한 수제 햄 올리기 + 이 두 개를 묶어줄 머스터드와 찐득하고 부드러운 크림치즈 바르기
2 솔티 초콜릿 토스트 얇게 자른 바게트 몇 조각을 팬에 굽기 + 초콜릿 페이스트(중탕해서) 올리기 + 플뢰드솔 혹은 핑크 레이크 솔트 뿌리기
3 딸기 요구르트 신선한 유기농 플레인 요구르트를 그릇에 담기 + 어느 한 군데 멍들지 않은 싱싱한 딸기를 슬라이스해 올리기 + 캐나다산 메이플 시럽 뿌리기

“그때부터 푸드 포르노(광고나 요리 쇼, 요리책에 등장하는 화려한 음식 장면이나 요리 사진) 중독자가 되었어요. 영국에서 일주일에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리 쇼만 하는 채널을 발견했거든요. 아주 귀엽게 생긴 남자 셰프가 눈길을 끌어 채널을 고정하긴 했지만 그 뒤로 리드미컬한 도마 소리, 냄비 뚜껑을 열며 훅 끼쳐 오는 스팀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랐죠.”
그렇게 빠져든 요리 세계는 알수록 흥미롭고 겪을수록 재미있었다. 요리책과 요리 쇼를 통해 ‘독학’으로 익힌 음식이기에 시행착오도 많고 고난도의 음식을 만드는 데 무리가 따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조립 레시피’라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떠올린다. 좋은 것들의 단순한 조합은 훌륭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믿음. 요리 초보자에게는 반가운 제안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집을 구할 때 학군이나 교통, 시세, 전망보다 ‘맛집’과 ‘마트’ 등 식재료를 구입하기에 좋은 동네를 최우선으로 꼽는 이유가 되었다.
적당히 시끌시끌하면서 신선한 생맥주가 있는 펍 하나, 뭐든 포장되는 손맛 좋고 메뉴 좋은 음식점 두세 개, (중략) 거기다 야채와 과일의 신이 아닐까 의심되는 미스터리한 청년의 야채 가게와 여기까지 헤엄쳐 온 듯 눈알이 번쩍번쩍 빛나는 해물이 가득한 생선 가게가 있다면 정말 훌륭한 동네다.


1, 2, 3 사진 찍는 일을 즐기며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수집하고, 이동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를 통해 빈티지 헬멧을 낙찰 받는 사람.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도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둘 줄 아는 사람. 그가 바로 이주희 씨다.

유희형 요리인의 죄의식 없는 식사
이주희 씨의 매력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쉽게 재단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먹고 싶은 것은 꼭 먹고 마는 이기적인 사람,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당당한 아가씨. 그런 그에게 발견한 의외의 이미지는 가끔씩 이타적인 식생활도 실천한다는 점이다.
“1~2년 전 동물 학대 동영상을 본 뒤로는 단 며칠이라도 채식을 하려고 노력해요. 이른바 ‘파트타임 베지테리언’이지요.”
고기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먹는 게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모두 버린 ‘풀타임 베지테리언’(그의 표현대로라면)이 되기는 조금 힘들다고 한다. 대신 자연에서 얻은 우유와 치즈, 달걀까지는 허용하는 방법으로 한 달에 며칠은 채식주의자 생활을 하는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지구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북극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후손을 위해’ 같은 환경보호 슬로건은 ‘나 죽고 난 뒤 일을 내가 알 게 뭐람’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그 와중에 북극곰을 만나 그나마 일말의 양심을 지키고, 코딱지만큼이나마 내 몫을 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장 좋은 식단은 사실 한식이죠. 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식사는 평범한 집 밥이에요. 갓 지은 밥과 반찬 한두 가지, 밑반찬, 그리고 국이나 찌개 하나로 이루어진 완벽한 세트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죠. 밥이 지어지는 20분 동안 반찬과 찌개를 완성해내는 건 마치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의 테이프를 끊는 기분과 같아요.”
평범한 밥상을 차리면서도 ‘20분간 완주해야 하는 레이스를 즐기는 기분’으로 사는 사람. 몇 년간 광고 회사에 근무했고 현재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서인가.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방식이 확실히 남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김밥은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크기를 첫 번째 ‘맛’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마가렛트’와 ‘빅파이’의 중간 정도? 아마 우리 반에서 제일 큰 김밥이었을 거야. 한 줄을 먹으면 밥 두 공기는 될 것 같은.
엄마의 김밥을 그리워하는 부분에서도 독자를 웃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그가 추운 겨울 즐겨 먹는 메뉴를 선보였다. 뜨끈한 조개탕과 한창 제철인 굴을 얹어 지은 굴밥, 겨울밤 술 한잔 생각날 때 안주로 제격인 데친 주꾸미를 보니 군침이 절로 돈다. 그의 간단명료한 재료와 유쾌한 레시피는 음식을 즐겨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모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심어 준다. 그의 표현대로 가끔은 ‘참을성과 함께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냄비에 코를 박을 것 같은 집중력으로’ 요리를 만들어보자. 어쩌면 당신에게도 잠재되어 있는 천재 요리사의 소질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4 이웃에 사는 호주인 친구, 브렌다에게 배운 레시피로 차린 ‘파트타임 베지테리언’을 위한 밥상.


이기적이지 않은 겨울밤을 위한 레시피
1 굴밥
재료 쌀・굴・채 썬 무・물 1컵씩 양념장 간장 1/3컵, 참기름・고춧가루 1/2큰술씩, 잘게 썬 달래 약간, 다진 파・다진 마늘・참깨・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쌀은 씻어서 1시간쯤 불린 후 체에 밭쳐놓는다. 2 무쇠 냄비에 ①의 쌀과 물을 담고 채 썬 무를 올린다. 3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중간 불에 끓이다가 뚜껑을 덮고 약한 불로 줄여 뜸을 들인다. 4 밥이 다 되면 굴을 올리고 다시 뚜껑을 덮어 5분쯤 2차 뜸을 들이며 굴을 익힌다. 5 양념장 재료를 고루 섞은 후 ④의 밥에 비벼 먹는다.

2 데친 주꾸미
재료 주꾸미・밀가루・끓는 물 적당량 초고추장 고추장 2큰술, 식초 1큰술, 꿀 1 또는 1/2큰술, 고추냉이 약간  만들기 1 주꾸미는 구입할 때 손질을 부탁한다. 2 손질한 주꾸미에 밀가루 1큰술을 넣어 주무른 다음 물에 깨끗이 씻는다. 3 끓는 물에 ②의 주꾸미를 머리부터 넣어 데친다. 머리를 눌러봤을 때 라면 먹고 잔 다음 날 볼처럼 탱탱하면 다 익은 것. 4 초고추장은 정말 입맛대로 만든다. 나는 식초 대신 갓 짠 레몬즙을 더 좋아한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면서 신맛과 단맛, 매운맛을 잘 맞춰본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초고추장을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도 물론 있다.

3 조개탕
재료 각종 조개 적당량, 사케나 청하 등 먹다 남은 술・실파・다진 마늘・홍고추・청양고추・소금 약간씩 
만들기 1 잘 씻은 조개를 조개가 겨우 잠길 정도의 물에 붓고 끓인다. 마시다 남은 사케를 살짝 넣어도 된다. 2 거품은 깔끔하게 걷어내고 조개가 입을 벌리면 건진다. 3 ②의 국물에 송송송 썬 실파와 다진 마늘, 홍고추, 약간 매운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서 한소끔 더 끓인다. 불을 끄고 조개를 다시 넣으면 끝.

이주희 씨가 편애하는 맛있는 식재료가 있는 곳
셰프 마일리스 Chef Meili’s 오스트리아 출신 셰프가 직접 만든 연어와 수제 햄은 이 집이 최고다. 문의 02-797-3820
패션 파이브 Passion 5 다른 사람은 케이크를 많이 사던데, 나는 잡곡빵을 사러 자주 들른다. 스펀지케이크를 사다 생크림, 과일, 초콜릿으로 장식해 나만의 케이크를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의 02-2071-9505
한남슈퍼마켓 채소 살 때 꼭 들르는 가게로 루콜라나 엔다이브 등 집 앞 채소 가게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구입하러 간다. 문의 02-702-3313
포린 푸드 마켓 Foreign Food Market 향신료와 소스 등 외국 식재료가 많은 곳. 바스마티 쌀이나 라임, 피타 브레드나 난과 같은 동남아와 아랍 식재료는 이곳에서 구입한다. 문의 02-793-0082
라 보카 La Bocca 카페와 델리, 와인 바를 겸하는 곳. 조금 비싸긴 하지만 프로슈토 햄이나 생모차렐라 치즈, 올리브를 사러 가끔 들른다. 문의 02-790-5907
트레비아 Trevia 이탤리언 레스토랑인데 여기서 파는 치아바타가 정말 맛있다. 천연 효모로 꽤 오래 발효시켜 만든다. 빵 속의 적당한 구멍과 쫄깃한 맛에 반한 곳. 문의 02-795-6004
인 더 파크 Inn The Park 저렴하게 마시는 테이블 와인이 아닌, 정말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와인 사러 가는 곳. 셀렉션이 좋고 추천 와인을 구입해 실패해본 적이 없다. 스위스 호텔학교 출신이라는 젊은 사장님의 센스와 서비스 마인드가 훌륭하다. 문의 02-793-4697
노량진 수산시장 겨울에는 일주일에 한 번쯤 들락거릴 정도로 자주 간다. 가리비로 시작해 산낙지, 대게, 석화, 주꾸미 등 그곳에 가면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이기적 식탁> 사용법
첫째, 이 책의 절반은 앞에서, 절반은 뒤에서 시작하므로 원하는 방향부터 본다.
둘째, 레시피 페이지를 보며 요리를 하고 싶을 때는 ‘뻥’ 하고 뚫린 작은 구멍에 연필을 꽂는다. 이렇게 하면 요리가 끝날 때까지 책이 90도 자세로 꼿꼿이 서 있다. 셋째, 가운데에 있는 빨간 색지와 파란 색지는 당신만을 위한 메모장이다. <이기적 식탁>에 환호할 사람은 먹는 거 좋아하는 독신자, 신혼부부, 직장맘 등이다. 요리를 잘할 필요도 없다. 먹는 걸 좋아해서 먹어본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시도를 할 정도면 충분하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