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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1번지, 명동이 부활한다 명동별곡
명동 明洞, 1950~60년대를 풍미한 문인과 예술인의 사랑방. 최근 이곳에 사라졌던 문화 부흥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화려하던‘명동 시대’를 반추하며 낭만이 돌아올 2009년의 명동을 조심스럽게 꿈꿔본다.

34년 만에 다시문을 연 명동예술극장의 외관

명동이란 이름은 조선 초 지명인 한성부 남부 명례방 明禮坊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 명동은 주택가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백화점, 극장, 금융기관 등이 들어섰다. 1930년대 시인 이상이 우리말로 보리를 뜻하는‘무기’라는 다방을 명동에 열면서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이른바‘다방 문화’의 시작이었는데 당시 다방은 문학 강연과 독립투사 추모회, 요리 강습회까지도 수용한 일종의 의식 있는‘문화센터’개념이었다고.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의 질곡을 겪으면서 명동은 여전히 대한민국 문화1번지로 남았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명동 거리를 휘적휘적 다니거나 다방에 앉아 있는 당대 문인과 예술인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시인 박인환은 명동의 노래로 회자되는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를 남겼고, 수필가 전혜린은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돌체다방을 드나들었다.‘명동 백작’이라 불리던 소설가 이봉구는 배우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하던 선술집‘은성’에 매일같이 들러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은성의 풍경화’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의 중심에는 1957년 자리 잡은 명동국립극장이 있었다.


옛 명동국립극장

역사와 함께 핀 문화의 꽃, 명동예술극장 2009년 6월 5일, 옛 국립극장 자리에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백발이 성성한 원로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이곳, 명동예술극장의 역사는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10월, 일본 다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본인을 위한 영화 전용관으로 바로크 양식의 ‘명치좌’를 건립했다. 대지 5백5평, 건평 7백49평, 객석 8백20석의 3층 건물로 당시로는 상당한 규모였다. 명치좌는 해방 이후 서울시의 시 공관으로 각종 공연과 정치 집회 장소로 쓰였다. 한국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이 주연한 베르디 오페라 <춘희>(1948)의 초연이 열린 곳도, 이해랑이 연출하고 최무룡이 주연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햄릿>(1949)을 국내 최초로 공연한 곳도 이곳이었다. 1957년 ‘중앙국립극장’이란 이름을 걸고 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공연장임을 알리자, 각지에서 예술인들이 모여들었고 자연히 국립극장 인근의 다방과 주점은 이들의 사랑방이요, 토론장이 되었다. ‘동방쌀롱’에 가면 이해랑 선생을 비롯한 연극계 인사들을, ‘천동다방’에서는 공초 오상순 선생을 비롯한 많은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오비스캐빈’ ‘쉘브르’ 같은 술집에서는 포크 가수들의 노랫가락이 시원한 맥주의 안줏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1973년 국립극장이 이전한 후 중심지를 잃고 절망한 예술인들은 명동을 떠나갔고, 명동국립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명동예술극장
1 명동예술극장 5층 옥상에 만든 야외 공연장.
2 외관은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내부는 현대적 공연 시설의 무대를 마련했다.
3 과거 3층 건물을 4층으로 만들어 층마다 창문의 모양이 다르다. 창을 통해 보이는 명동 거리가 새롭다.


문화의 핵이 빠져나간 자리는 공허한 소비와 유흥만이 감돌았다. 위기감을 느낀 명동상가번영회의 중심인물들이 명동 옛 국립극장의 복원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마침내 정부에서 극장의 부활을 약속했다. 30여 년 만에 명동예술극장의 막이 다시 오른 것이다. 새롭게 문을 연 명동예술극장은 현대식 공연 시설을 갖춘 연극 전문 극장으로 운영한다. 1층 로비에는 옛 국립극장 시절의 공연 포스터와 공연 사진, 명동 내 다방 지도 등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놓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코끝 찡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순수한 국내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통해 스러져간 연극 문화의 불씨를 살리고 중・장년층 관객을 불러들이겠다는 이들의 각오가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7월 10일부터 26일까지 최인훈 작, 한태숙 연출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가 무대에 오른다.(문의 1644-2003)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한 후 명동이 시들해지더군요. 명동을 다시 살리기 위해 극장을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행 건물 위에 극장만 새로 크게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건 아닙니다. 뿌리가 있어야지요. 옛 문화의 뿌리가 그대로 존재해야 가치가 있는 거지, 무조건 새로 크게만 짓는다고 과거의 영광이 돌아오지는 않아요.”(김장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명예회장은 1982년 회장직 취임 이후 20여 년에 걸쳐 헌신적으로 명동예술극장 복원에 공헌했다.)

4 극장1층 로비에서 옛 국립극장 시절의 공연 포스터를 만나볼 수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 & 갤러리
1 삼일로 창고극장 위층에 있는 갤러리 내부. 뒤 쪽에 보이는 벽에 극장을 거쳐간 수많은 작품과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2 갤러리 곳곳에는 나쇼날 야외전축, 색이 바랜 아코디언 등 정대경 대표가 틈틈히 수집한 빈티지 아이템이 놓여있다.
3 객석 의자는 2007년에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마련해 주었다.


공연계의 보물 창고, 삼일로 창고극장 & 갤러리 명동예술극장이 명동 상권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굴곡을 겪고 있을 때 명동성당 뒤 한쪽에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켜온 조그만 극장이 있다.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민간 소극장 ‘삼일로 창고극장 & 갤러리’이다. 이곳은 실험극장 운동을 펼친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 대표가 1975년 ‘에저또 창고극장’이라는 이름의 사무실 겸 소극장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지금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단 뒤 34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상징적 존재이다. 이 극장은 전설적인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1977)을 공연한 곳이기도 하다. 연극배우 고 추송웅이 혼자 제작, 기획, 연출, 장치, 연기까지 1인 5역을 해낸 1인극으로 당시 4개월 만에 6만여 관객을 동원한 기록이 있다. 30평도 채 안되는 지하 무대는 연일 만원 사례를 빚어 되돌아가는 관객이 입장객보다 더 많은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소극장사에 이름을 떨친 삼일로 창고극장이지만 한때 극심한 운영난에 시달려 김치 공장과 인쇄소로 쓰이기도 했다. 여섯 번째 극장의 대표를 맡은 뮤지컬 연출자 정대경 씨는 극장을 위해 사재를 털었고 단원들과 함께 직접 극장 보수에 나서기도 했다. 2004년 소극장 위층에 갤러리도 열었다. 당시 국내에 많지 않았던 드로잉 전용 갤러리로, 순수 미술 작가의 그림을 대중에게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 요즘은 예전처럼 전시가 많지 않지만 틈틈이 낮에는 전시를 하고 저녁때는 관객을 위한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마임, 오프대학로 페스티벌, 인디다큐 상영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시도한다. 상업적인 공연이 아니어서 일반 관객이 어려워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연극 정신이 남아 있는 곳. 정 대표는 이런 극장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반문한다. 앞으로 소극장이 보여줄 수 있는 독립적인 실험성과 그들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역사의 한 켜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문의 02-319-8020)

4 삼일로 창고극장 & 갤러리의 외관.

“사실 명동예술극장이 복원되었다고 해서 명동이 다시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사적 소유가 공적 소유가 되면서 문화재로서 즐기고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 서는 감사하죠. 또 이것을 필두로 명동을 비롯한 이른바 북촌에 남아 있는 건물, 문화적 흔적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명동성당과 지금 명동예술극장인 명치좌, 서울시의회와 차이나타운의 흔적, 그리고 리모델링으로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관이 보존되어 있는 미스코시 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 등은 서울시가 20세기에 온갖 굴곡의 역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죠.”(이영미 문화평론가 &<광화문연가> 저자)

명동의 가볼 만한 문화 공간
스폰지하우스 중앙
40년 전통을 지닌 옛 중앙극장 자리에 위치한 예술독립 영화관. 02-776-8866 대한음악사 1962년 창립해 다량의 수입 클래식 악보와 음악 서적 자료를 구비한 음악사. 02-776-0577 해치홀 한국형 쇼와 뮤지컬을 주로 선보이는 다목적 공연장. 8월 말까지 창작 뮤지컬 <사춘기>를 상연한다. 명동 M플라자 5층 위치. 02-727-3251 세종갤러리 1961년 개관 이래 다양한 미술 기획전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 세종호텔 1층 위치. 02-3705-9021


임희수 인턴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