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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나를 치유한다]라디오 방송 작가 김동영 씨 외로움이 나를 치유한다
여행은 삶에서 혼탁한 것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것을 다시 채워 넣는 행위입니다. ‘떠남’에 있어 좀처럼 망설이지 않는 여행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여행’이라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 그들의 두 눈에서는 여린 재충전의 시간이 되는 여행.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지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 한 장만을 읽을 뿐이다.” 모든 것을 대신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삶의 영감을 얻는 기회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과정이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이 그들이 여행길에서 발견한 평생을 책 한 장으로 마감한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또 있을까요. 이 여름, 길을 따라 나서보는 겁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소중한 보물들을 주워 담을 마음의 채비를 하고 말입니다.

광화문 스펀지 하우스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는 김동영 작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여행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점 직원에게 여행 책을 한 권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수십 권의 여행 책 속에서 내가 메모해간 책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저기,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 보세요. 이달의 베스트셀러 여행책은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 금방 찾으실 겁니다.” 어느 날인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소개되었기에 그저 한번 훑어볼 요량이었는데 베스트셀러라니!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수많은 여행 책 중에서 그의 책에 주목하는지 궁금했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저자 김동영. 서른 살 초반의 한 남자가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인 방법으로 230일 동안 미국을 횡단했다. 행선지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수단은 털털거리는 중고차 한 대. 동력은 밤낮을 들쑤시고 다닐 수 있는 청춘의 몸부림…. 언뜻 보기에는 치기 어린 젊은이의 배낭여행기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서점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몇 장을 꼼꼼하게 들춰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건 분명 매력적인 여행이었고,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겪어보고 싶은 아니, 어쩌면 반드시 겪어봐야 할 여행이었다. 2009년 봄,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 마지막 방송을 막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여행의 기술이오? 음, 외로움이죠. 생각해보세요, 230일 동안 홀로 낯선 곳만 골라 다녔다면… 누구나 치가 떨리도록 외로울 거예요. 여행을 하는동안 봄, 여름, 가을 세 차례나 계절이 바뀌고, 혼자 생일도 보냈죠. 하지만 결국 그 외로움이 이번 여행의 동력이 돼주었어요.” 김동영 작가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추천한다.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면 더더욱 홀로 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문득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한 문구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는.

1 김동영 작가가 미국 횡단 여행에 이용한 인적이 드문 66번 도로.
2, 3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지구촌의 친구들. 김동영 작가는 취향도, 성격도, 하는 일도 다른 그들을 만나 ‘사람을 포용하는 법’에 대해 배웠다고 말한다.
4 미국 횡단 여행 중 김동영 작가의 이동 수단이었던 중고 자동차.


그는 서부에 가면 꼭 들러야 한다는 디즈니랜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도 가지 않았다. 유명 여행지는 어렸을 때부터 다큐멘터리나 달력에서 수도 없이 봤다. 굳이 또 봐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공원, 길거리, 레코드 숍을 전전했다. 그곳에 가면 바쁜 스케줄로 종종걸음을 걷는 여행자들 대신 ‘한량’같은 여행자들이 있었다. “230일 동안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냈죠. 한국에서처럼 저와 취향이 맞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았죠. 그게 매력적이었어요. 그들 때문에 제 여행은 풍요로웠어요. 사람을 이해하는,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겼죠. 그것이 제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시카고 여행 중 한 레코드 숍에서 만난 ‘제니’라는 이름의 여자친구. 똑같이 ‘서프잔 스티븐스’라는 음악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둘은 금세 국경과 시간을 초월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버팔로에서 만난 ‘데이빗’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술 한 잔 걸치고 나눈 그와의 취중진담은 의외로 건질 만한 게 많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바다 처럼,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라는 걸, 데이빗은 오랜 여행으로 지치고 불안했던 김동영 작가에게 인생의 값진 진리를 귀띔해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고, 설렘이다. 하지만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용기가 필요하다. 다만, 김동영 작가의 표현대로 큰 것도 아니라 그냥 토스트 한입을 씩씩하게 베어 물 용기 정도면 된다. 커다란 트렁크에 이것 하나 더 챙겨가는 거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왼쪽) 중고숍에서 구입한 폴라로이드. 노출을 설정할 수 있는 데다가 가격도 22달러밖에 안 해, 쾌재를 부르며 구입했다.

김동영 작가가 이야기하는 미국 횡단 여행 노하우
김동영 작가가 이번 미국 횡단 여행에 이용한 길은 66번 도로.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길이다. 새로 난 40번 도로에 비하면 66번 도로는 구불거리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우리로 치면 66번은 국도, 40번은 고속도로다). 하지만 66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40번 도로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루발로, 바스토, 플래그스텝 등과 같은 고즈넉한 정취의 작은 도시들
을 만나게 된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