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여행이 나를 치유한다] 캘리타앤컴퍼니 최성희 대표 머리를 비우면 가슴이 채워진다
여행은 삶에서 혼탁한 것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것을 다시 채워 넣는 행위입니다. ‘떠남’에 있어 좀처럼 망설이지 않는 여행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여행’이라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 그들의 두 눈에서는 여린 재충전의 시간이 되는 여행.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지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 한 장만을 읽을 뿐이다.” 모든 것을 대신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삶의 영감을 얻는 기회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과정이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이 그들이 여행길에서 발견한 평생을 책 한 장으로 마감한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또 있을까요. 이 여름, 길을 따라 나서보는 겁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소중한 보물들을 주워 담을 마음의 채비를 하고 말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짐을 꾸리고 신발 끈을 단단하게 조일 때까지, 떠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근심걱정이 일상의 길모퉁이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없이도 회사는 잘 운영될까?’ ‘남편과 아이들 끼니는 어떻게 하지?’ 그런 사람들에게 명함, BI, 초대장 등 스테이셔너리 전문 디자인 회사 켈리타앤컴퍼니 최성희 대표의 이야기는 적당한 기폭제가 될 듯하다.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CEO이자 일주일에 두 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거기다 초등학생 아들까지 둔 엄마인 최성희 씨.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그는 ‘떠남’에 있어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다.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닌다는 네 귀가 닳은 까만 다이어리를 살짝 들춰보니 숫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1월 26일 프랑크푸르트, 퀄른, 뒤셀도르프, 2월 17일 동경, 3월 23일 하노이, 4월 20일 방콕, 6월 3일 상하이, 6월 11일 동경, 7월 15일 파리, 밀라노, 베니스….’ 그간 수도 없이 짐을 싸고 푼 여행의 흔적이 빽빽이 적혀 있는 다이어리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최성희 씨에게 여행은 일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종의 견학과 같은….

(왼쪽) 여행 중에 본 것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 최성희 대표.


(왼쪽) 독특한 외관을 가진 멜라네시안 문화 센터. 세계 5대 건축물 중 하나로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다. 
(오른쪽) 최성희 대표가 멜라네시안 문화 센터를 보며 그린 스케치.


“10여 년간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면서 모든 걸 소진해버린 느낌이었어요. 2001년 ‘켈리타앤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면서 제 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 백지 상태로 텅 비어버린 머리와 가슴은 오히려 여행에 도움이 됐어요. 그만큼 흡수할 수 있는 공란이 많다는 뜻이니까요.” 2003년부터 시작된 여행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간 최성희 대표의 망막에 비친 것은 그야말로 ‘무작위’다. 어느 날은 발아래 놓인 야생 풀잎에 새겨진 독특한 문양에, 또 어느 날은 도시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거리 간판을 보면서 ‘아이디어’라는 일의 밑천을 얻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지구촌 방방곡곡을 누비고 나면 그제야 한국이라는 지구 한구석, 고요한 땅으로 되돌아올 마음이 들었다. 그렇듯 발로 뛰며 일일이 채집한 아이디어 때문일까. 최성희표 디자인은 남다르다. 그저 잠시 잠깐 눈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닌 마음에 울림을 가져다주는 디자인이다. 최성희 대표는 매년 연말경, 한 해 동안 방문한 여행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행지 한 곳을 정해 그곳의 정취와 감성을 담은 캘린더를 제작해오고 있다. 2006년 프랑스, 2007년 이탈리아, 2008년 모나코, 2009년 뉴칼레도니아를 담은 캘린더가 그것이다. “어느 때인가, 여행의 기억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다운 기록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죠.

(왼쪽) 뉴칼레도니아의 푸른 해안에 있는 삼각 지붕의 수상 가옥들.
(오른쪽) 최성희 대표가 뉴칼레도니아 여행을 다녀와 그린 스케치. 실제로 2009년 캘린더에 사용되었다.


그때 캘린더를 떠올렸어요.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건네면 그것만큼 좋은 연말 선물이 없겠구나 싶었죠. 처음에는 그냥 선물용으로 몇 권 제작하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큰 연중 프로젝트가 됐네요. 이제는 연말이 되면 내년에는 어느 나라 달력을 만들 거냐고 사람들이 먼저 물어봐요.” 프랑스 루이 13세 뮤지엄 앞에 걸린 간판과 파리 시내의 번지수를 적어놓은 현판, 베트남 경찰의 제복과 가판대 과일 장수 할머니의 옷차림, 그리고 뉴칼레도니아의 전통적인 뗏목과 하늘과 바다가 투영하는 자연의 색감, 와인 병에 붙은 라벨, 초콜릿에 새겨진 디테일한 문양 하나까지 최성희 씨는 여행지에서만큼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것에 집중해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고, 사진으로 남겼다. 한 여행지에서 스틸 컷만 5백장도 넘는 사진들. 그는 매일 밤, 호텔로 돌아와 노트북에 그 사진들을 띄워놓고 느낌을 스케치로 옮겼다. 무릇 모든 디자인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기에 감동을 더해야 좋은 디자인이다. 그런데 감동은 억지로 생기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따뜻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시선, 그것이 출발 이다. 최성희 대표는 때때로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면, 여행지에서 그린 스케치들을 꺼내놓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다. 일은 즐겁게 해야 성공한다고 했던가. 여행지의 정취를 한껏 담은 스케치들은 마법처럼 지친 마음은 물론 실타래처럼 엉켰던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주었다. 몇 년 전,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속을 뻥 뚫리게 해주었던 한 광고 문구가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런데 최성희 대표는 말한다. “열심히 일할 당신, 먼저 떠나라!”



1 ‘리얼 로열’ 콘셉트를 보여주는 모나코의 한 부둣가에 값비싼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2, 3 세계적인 부호들의 별장이 모여 있다는 모나코의 고급 호텔들.
4 최성희 대표는 모나코 곳곳에서 발견한 독특한 문장과 건축물을 스케치로 남겨두었다.
5 제복을 갖춰 입은 모나코의 경찰들. 최성희 대표는 여행지의 멋진 건축물은 물론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아둔다.
6 프로방스의 상징과도 같은 보랏빛 라벤더. 최성희 대표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라벤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라벤더 향기가 밀려오는 듯하다고.
7 프로방스에 있는 한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그윽한 향도 좋았지만 그에게는 오랜 전통을 지닌 와인의 독특한 라벨 디자인이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성희 대표가 귀띔하는 유용한 여행 정보 사이트 최성희 대표는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책보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주로 이용한다. 그가 살짝 귀띔하는 사이트는 www.Luxecityguides.com. 현지인들이 선정한 최신 트렌디한 곳들이 열거돼 있다. 방콕, 호찌민, 프로방스, 파리, 로마 등 1백여 개에 달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휴대하기 좋은 작은 크기의 가이드북도 제작한다. 세계적인 도시의 유명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판매한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