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1세기 첨단 건축의 척도, UN 스튜디오 수학으로 건축을 그리다
2004년 압구정동 갤러리아 홀 웨스트가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건축 그룹 UN 스튜디오가 한국에 남긴 작품으로, UN 스튜디오의 수작으로 꼽히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은 지금 현대산업개발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이번엔 아파트이다. 또 하나의 수작이 탄생하길 기대하며 UN 스튜디오의 건축 세계를 살펴본다.

빌라 NM. 뉴욕 근교의 넓은 숲과 초원을 배경으로 경사진 대지에 자리했다.


벤 판 베르컬. UN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그는 수학적 모델에서 건축의 답을 찾는다.

상자를 비틀고 회전시켜 집을 만들다1988년 건축가 벤 판 베르컬 Ben van Berkel이 암스테르담에 설립한 UN 스튜디오는 이제 세계적 명성의 건축 설계 사무소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갤러리아백화점 레노베이션을 맡았고, 현재 현대산업개발과 함께 수원 아이파크 시티의 아파트 입면 설계를 진행 하고 있다. UN 스튜디오의 건축은 수학적 모델에서 출발해 발명에 가까울 정도의 과학적 방식으로 설계해 미학적으로 완성한다. 1998년에 지은 ‘뫼비우스 하우스’를 보면 이 집의 아이디어가 이름처럼 뫼비우스 띠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네덜란드 집을 원하는 남편과 1920년대 건축처럼 상자형 주택을 원하는 아내를 위해 찾아낸 구조였다. 남편과 아내의 생활 동선을 분리해 각각 독립적인 공간을 갖추면서도 띠의 교차점에는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7년, UN 스튜디오는 뉴욕 근교에 ‘빌라 NM’을 완성했다. 뫼비우스 하우스 이후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 좀 더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집의 형태를 풀어나갔다. 상자처럼 생긴 두 개의 모듈을 수평축으로 회전시켜 그 과정에서 포착한 다섯 개의 공간을 따라 집 안 구조를 만들었다.


1, 3, 4 빌라 NM. 2007년 완공한 이 집은 상자처럼 생긴 두 개의 유닛을 회전시켜 마치 꽈배기 같은 모양의 공간을 만들었다. 벽이 구부러져 바닥이 되고 천장이 되는 형태로 내부에 공간이 생겼다.


2 뫼비우스 하우스. 1998년 지은 이 집은 이름처럼 뫼비우스 띠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뫼비우스 띠의 구조는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두 부부에게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콘크리트도 편안한 거주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는 프로젝트였다.

UN 스튜디오가 이처럼 손으로 종이를 가지고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듯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만의 ‘다이어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그램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은 것으로 구조를 풀어나가는 데 일종의 규칙인 셈이다. UN 스튜디오가 생각해낸 공간의 다양한 모델들이 다이어그램을 거치면서 하나의 공간으로 정리된다. 종이를 구부려 만든 뫼비우스 띠가 다이어그램을 거쳐 하나의 공간 모형이 되듯이 말이다. 다이어그램은 UN 스튜디오가 과학적인 발명을 하듯 건축 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 요소이다.
UN 스튜디오의 건축이 기계적으로 보이지 않고 감성적인 건축으로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표면에 대한 끈질긴 연구 덕분이다. 건축의 표면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들은 반사와 투영의 효과를 활용한다. 갤러리아 홀 웨스트의 건물 외벽에 붙은 여러 개의 원판들이 제각기 빛을 반사시켜 오묘한 색을 만들듯이 빛의 반사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다채로운 색을 발산하게 하는 것이다.





공간을 위해 수학을 탐구하다 앞서 언급한 뫼비우스 띠, 나선형, 트레포일 trefoil(클로버 잎) 구조, 클라인의 병 Klein bottle(클라인의 대롱이라고도 하며, 독일 수학자 클라인이 발견한 것. 뫼비우스 띠의 면을 닫아 대롱처럼 굴린 것으로, 안팎의 구분도 없고 방향도 없이 계속되는 형태이다) 등은 모두 수학 원리에 근간을 둔 모델이다. UN 스튜디오는 상자 같이 생긴 모더니즘 건축에 반기를 들고 비정형 건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학적 모델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UN 스튜디오 작품 중에 트레포일 구조에 대한 연구의 결정체는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이 뮤지엄은 벤츠의 역사적 모델과 새로운 모델을 전시하는 전시장과 숍, 레스토랑, 스카이라운지, 어린이 뮤지엄, 극장 등이 있는 복합 공간이다. 프로펠러처럼 생겨 프로펠러 구조라고도 불리는 트레포일 구조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면 그 안에 세 개의 겹치는 원이 있는데, 그 세 원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을 비워내 삼각형의 아트리움으로 만들었다. 이를 중심축으로 클로버 잎에 해당하는 각 유닛들을 회전시켜 6층으로 만들었다. 건축계에서는 이를 두고 메르세데스-벤츠의 엠블럼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다이어그램은 일종의 도구다. 뫼비우스 띠와 그것의 3차원적 변형인 클라인의 병, 트레포일과 나선형 등은 다이어그램을 통해 하나의 건축 형태로 변환된다. 다이어그램은 달리 말하면 설계 모형이다.” _벤 판 베르컬


5, 6 무무트 MUMUTH.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의 새로운 음악당으로, 유닛에 기반한 볼륨(극장)과 움직임에 기반한 볼륨(로비 및 통로)의 두 개 볼륨으로 구성된다. 내부 공간은 나선형 구조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마치 음악의 리듬을 타고 흐르듯 내부 공간에서 리듬이 느껴진다.

건축도 피부에 신경 써야 한다 UN 스튜디오의 건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중요한 시선 중 하나가 앞서 이야기한 구조적 부분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건축의 외피, 즉 표면에 대한 접근이다. 새로운 기술이 강조된 건축에서는 재료의 표현도 그만큼 중요하다. 낯선 공간이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져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 이는 결국 재료의 역할인 셈이다.
네덜란드 알메레에 있는 비즈니스 센터 ‘라 데팡스 La Defense’의 표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 3M과 함께 3년간 연구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건물 표면이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보라색, 녹색의 다채로운 색상을 보여준다. 이 건축물을 위해 UN 스튜디오는 자외선을 막고 그늘을 만들어줄 수 있는 유리를 떠올렸다. 그때 빛에 따라 색이 계속 변하는 금속판을 발견한 것이다. 매일 매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강한 잔상을 남긴 소재였다. 바로 이런 경험을 토대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건축을 생각해냈다. 그 결과 구조적으로 많은 재미를 줄 수 없었던 공간에 색채 하나로 3백65일 다른 경험을 안겨주는 ‘잔상의 건축’을 완성했다.

21세기 건축은 정해진 형태가 없다 건축가 벤 판 베르컬은 유년 시절부터 건축가의 꿈을 꿨다. 10세 때부터 땅 위로 솟아오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고 다리에도 관심이 많았다(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것도 ‘에라스무스’라는 다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위트레흐트는 네덜란드 건축의 아버지 게리 리트벨트의 고장이요, 당시 건축적으로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도시였다. 매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며 10년 가까이 새로운 건축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 갤러리아 홀 웨스트. 외관에 4천3백여 개의 둥근 유리 디스크를 부착해 낮에는 빛이 반사되고 밤에는 빛의 쇼가 열리게 했다.
2 라 데팡스 오피스. 유리 패널에 여러 색의 포일을 겹쳐 시공해 일조량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또 마주하는 입면들끼리 서로 반사를 일으켜 끊임없이 색상이 바뀐다.



3~6 슈투트가르트 벤츠 뮤지엄. 세 개의 원에서 비롯된 트레포일 구조로 건축 형태를 완성했다. 세 원의 교집합 부분을 비워내 아트리움을 만들고, 트레포일을 회전시켜 만든 나선형 구조를 이용해 바닥에서 벽, 천장으로 이어지는 곡선미를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을 경험하게 했다. 내부로 날렵하게 감겨 들어가는 듯한 외관은 자동차의 속도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벤 판 베르컬은 UN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때부터 그는 모더니즘의 건축이 보여준 사각형 공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건축이 안고 있는 철학적・과학적 원리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다양성이다. 같은 세대일지라도 작품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따라서 ‘표준을 벗어난 건축’을 공통분모로 우리의 작업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형 건축으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이다. 벤 판 베르컬의 스승이던 자하 하디드가 그 대표적이다. 그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를 실제로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해야만 도면을 그릴 수 있다. 이런 작업 과정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공간을 발견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준 혜택이다. 벤 판 베르컬은 스튜디오 이름조차도 ‘United Network’의 이니셜을 땄다.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통합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아 건축가는 물론, 빌딩 컨설턴트, 그래픽 디자이너, 품질 조사원,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뉴 미디어 디자이너들이 모여 협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학자를 만나 아이디어를 얻고, 소니의 전자 제품 개발과 출시 과정을 벤치마킹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한다. 이런 UN 스튜디오의 건축을 사람들은 첨단 건축이라 평하며, 그 누구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축 그룹으로 꼽고 있다.



“UN 스튜디오와 함께 진행하는 수원 I’PARK City는 차별화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도시 개발 사업이다.
현재 UN 스튜디오는 아파트 입면 설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세계 건축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으며, 자연에서 찾은 패턴으로 디자인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독특한 입면만큼이나 설계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혁신적 디자인과 품질로 주거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해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_현대산업개발 주택설계팀 장경일 상무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