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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에세이] 엄마에게 물려받고 싶은 보물,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보물
뼈와 살을 나눠준 육친의 엄마. 엄마란 말은 왜 이렇게 가슴을 서글프게 문질러대는 건지요. 일곱 명의 여자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보물,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보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자에게서 여자로 대물림되는 여자의 인생, 여자의 역사가 그 물건에 깃들어 있습니다.

백은하 씨는 자신의 엄마가 쓴 동화 공책 두 권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긴다. 얼마 전 첫 동화책 <사자야 전화 왔어>(백은하 지음, 키득키득)을 낸 그는 조만간 엄마의 동화 공책 속 스토리에 자신의 그림을 더해 또 하나의 동화책을 낼 생각이다.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여고생이 백은하 씨 엄마다.

꽃잎 그림 작가 백은하 씨, 엄마의 동화 공책 10년 전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강아지와 어떻게 살았고, 토끼와 닭과 고양이가 어떻게 살았나 하는 이야기. 그 이야길 들으면서 얼마나 재미났는지, 나는 엄마에게 글을 써보시라고 했다. 단순 담백, 기쁨 충만, 에너지 빵빵한 우리 엄마, 다음 날 어린이 노트 두 권 사가지고 와서 모나미 볼펜 한 자루로 줄줄줄줄 동화를 써 내려갔다. 생각의 흐름만큼이나, 구술 속도만큼이나 수루루루루룩. 기승전결이니 드라마니, 이런 형식도 없고, 잘 써보겠다는 자의식도 없는, 막 건져올린 물고기같이 싱싱한 글을 쓰셨다. 엄마는 글 따로, 사람 따로가 아니라, 그냥 ‘글’이 ‘몸’ 같다. 그녀 자신 같다. 재고 계획한 글쓰기가 아니라 유기적인 생물 같다.
다음 날 엄마는 그 공책을 딸내미에게 보내려고 우체국으로 달려가셨다. 소포 겉봉엔 ‘은하 엄마’라고 쓰고, 그림도 그리고 캘린더에서 오린 사진도 붙여 보내셨다. 이 공책은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됐다. 소중히 간직하다가 꼭 필요할 것 같은 친구에게 빌려줬다. 한번은 입원한 친구에게 빌려주려고 부산행 기차를 타고 갔다. 공책을 전해주며, 엄청난 보화를 잠시 꺼내 보여주는 것처럼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보면서 무지 행복해야 한다고. 친구는 퇴원 후 공책을 돌려주면서 아주 행복했다고 했다.

공책은 지금 또 다른 친구에게 가 있다. 어렵게 아기를 갖게 돼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에게, 마음을 풀어 헤쳐줄 이야기, 마냥 웃게 할 이야기, 그래 우리 엄마 동화가 딱이다. 오늘 그 친구와 국수를 먹는데, 친구가 그 동화 속 토끼를 흉내 낸다. 칼국수 먹는 토끼. 엄마는 토끼를 강아지처럼 키웠다. 우리 사남매가 귀찮아서 풀을 안 뜯어 오니까, 엄마는 토끼에게 사정했다. 어쩔 수 없구나, 니가 식성을 바꿔라. 그래서 밥도 주고 국수도 주고. 토끼는 엄마와 맘이 잘 통해서 하라는 대로 잘 했다. 앞니빨 사이로 국수를 호로록 호로록 먹는 풍경이 신기해 사람들이 구경을 다 왔단다. 이 동화 공책은 모두 엄마와 동물이 어떻게 지냈나 하는 이야기다. 개집에 고양이도 닭도 들어가 세 놈이 같이 산 이야기, 엄마가 사랑하던 개 ‘해피’ 이야기. 해피가 교통사고 났을 때 몸집 작은 엄마가 그 큰 녀석을 메고 울며 울며 들판을 걸어오는데… 그 풍경은 우스우면서도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내게 옷도 보석도 물려준 적 없지만, 이 멋진 동화 공책을 물려주셨다. 상상력과 유머를 물려주셨다. 세상을 만나는 법(덥석! 장벽 없이!)을 물려주셨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저절로 이야기가 되고 글이 되는, 특이한 구술법을 물려주셨다.
얼마 전 나도 동물을 소재로 첫 동화를 냈다. 이번엔 내 동화책을 엄마에게 전하러 경춘선 기차를 탈 거다. 엄마는 안경을 찾아서 읽으시겠지. 사자에게 말을 걸 듯 “사자야, 따르르르르르릉, 전화 받아!”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읽으시겠지. “뚜루루루룽~! 코끼리야, 전화 왔어! ” 나는 상을 쿵쿵 치며 배를 잡고 웃겠지!
내년이나 그 후년, 엄마와 함께 책을 낼까 보다. 엄마의 그 동물들 이야기에 내 그림을 더해서. 그다음엔 외할머니의 전쟁통 공연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야지. 그렇게 당신들이 물려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만들고 싶다. 내게 물려주신 것들에 대한 작은 보답, 혹은 세상에 다시 흘려보내야 할 숙제니까. 글 백은하(www.fullbut.com)

갤러리 람 대표 송경미 씨, 두근두근 속닥속닥 앤티크 주얼리 “영국에 미술 공부 하러 갔을 때 런던 V&A 박물관에서 앤티크 주얼리를 처음 만났지요. 그때부터 어머니를 졸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어요.” 동양화를 전공한 어머니의 안목, 경제적 원조에 딸의 정보력이 더해져 둘의 컬렉션은 막강해졌다. 진지한 취미는 곧 송경미 씨의 직업과 일터로 발전했다. 이렇게 수집한 작품들로 그는 6년 전 국내 최초의 유럽 앤티크 주얼리 전문 숍 ‘갤러리 람’을 열었다.“엄마가 런던에 오시는 날은 둘의 소풍날이었어요. 여고 동창처럼 팔짱 끼고 벼룩시장, 앤티크 전문 숍을 다니며 앤티크 주얼리를 보러 다녔어요. 집에 돌아오면 서로 걸쳐보며 이게 잘 어울리네, 이게 마음에 드네, 밤새 이야기 나누고요.” 두근두근, 속닥속닥…. 모두 모녀의 수집에 얽힌 사연이 녹아 있지만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특별히 아끼며 손에 쥐여준 작품들이 있다. 몰타 십자가 펜던트, 뚜아 앤 무아 반지, 두 줄짜리 팔찌 등이다. 모두 어머니가 애착을 갖고 지니던 것들이고, 섬세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되어 있다. “각각에 엄마와 쌓아온 시간과 추억이 담겨 있어요.” 글 나도연 기자

(왼쪽) 어릴 적 일본에 살았던 송경미 씨와 엄마의 사진. 그리고 모녀의 사연이 듬뿍 담긴 앤티크 주얼리.


(왼쪽) 젊고 건강했던 엄마를 기억나게 하는 돌확.
(오른쪽) 배지은 씨가 오두막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그린 상상 북. 손뜨개로 만든 설아의 원피스와 인형 옷은 배지은 씨 어머니의 솜씨다.


방송작가 고혜정 씨, 돌확과 엄마 노릇 대부분의 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친정에 가면 뭔가를 잔뜩 가져온다. 대부분 김치와 밑반찬이지만 종종 편한 슬리퍼, 쓰기 편한 솥이나 화분…. 싫다고 싫다고 말은 하지만, ‘딸은 주고 싶은 도둑’이라며 하나라도 더 싸주려는 친정엄마 때문에 더 그런 거 같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욕심 내는 꼭 하나의 물건이 있다. 친정집 뒤꼍에 있는 돌확이다. 돌절구처럼 깊지 않고 동그랗고 넓적한 돌확. 엄마는 그 돌확에 고추를 갈아 김치를 담그고, 들깨와 찹쌀을 갈아 죽을 쑤어주시기도 했다. 그 들깨죽에 김치를 얹어 한입 먹으면… 바로 꿀맛이었던 기억. 그 후에 믹서가 보편화되면서 친정엄마도 믹서에 드르륵 갈아서 들깨죽을 해주셨다. 예전 그 맛이 아니라는 건 엄마도 우리도 알았지만 맛있다며, 예전과 똑같은 맛이라며 먹었다. 이제 엄마는 허리 아픈 할머니가 되었기에. 그 돌확은 처치 곤란의 물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급 한정식 집에서 돌확에 금붕어 키우는 걸 보니 운치 있어 보였다. 그 후 친정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거 나 줘.” “뭣 허게?” “여기다 금붕어 키우니까 멋지더라.” “호랭이 물어가네, 뭐 헐 짓이 없어서 그런 디다 금붕어를 키워?” “어차피 엄마는 안 쓸 거잖어. 나 줘.” “주는 것은 안 아까운디 어떻게 가져갈라고 그려? 저 작것이 보기는 저리도 얼매나 무건지 아냐? 야야 아파트에다 저 작것 갖다 놔봐라. 무거워서 거실 바닥 무너지믄 너그 집 밑에 사는 사람 대가리 깨져 죽어야.” “아파트가 뭐 그렇게 약한 줄 알어? 알아서 할 거니까 주기나 해.” “그믄 나 죽거든 가져가.” “왜? 엄마 저거 쓰지도 않잖어.” “안 쓰지만… 그리도 나는 저것을 봐야 혀. 시방은 어깨가 아퍼서 저 작것을 써먹을 일이 없지만… 저것에다 들깨도, 보리도 문질러 너그들 해 먹였잖여. 저것이라도 봐야 내가 보람이 있제. 내가 해놓은 것이 뭣 있는가 싶을 때 저놈 보믄 위안이 되드라. 너그들한테는 택도 없었겄지만 나도 최선을 다히서 엄마 노릇을 헐라고 응게.”
엄마, 나도 알아. 그래서 더 갖고 싶은 거야. 엄마 없이 난 못살 거 같은데, 엄마는 자꾸 내게서 떠날 시간을 향해 가는 거 같아서 너무 맘이 아파. 엄마 없으면 난 어떡하지? 살면서 힘들 때 전화해서 “엄마~”하고 부르면 “오야 내 새끼~” 하고 대답해줄 사람 엄마밖에 없는데. 비 오는 날 엄마 목소리 듣고 싶으면 어떡해? 그래서 난 엄마 젊었을 때 우리를 토방에 주르륵 앉혀놓고 맛있는 거 해주겠다며 들깨를 갈던 그 돌확이 갖고 싶은 거야. 젊은 엄마, 씩씩하고 건강한 엄마를 기억하고 싶어서. 글 고혜정(방송작가,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원작자) 장소 협조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

판화 작가 배지은 씨, 딸아이를 위한 오두막 세 돌 지난 딸 설아를 위해 배지은 씨는 작년부터 오두막 지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곧 설아도 식탁 밑, 책상 아래를 자신만의 비밀 공간으로 삼을 테니까. 어릴 적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 비밀 아지트에서 모태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테니까. 마당에 지을 오두막도 하나 설계하고, 설아 방을 오두막처럼 바꾸는 설계도 하나 했다. 그 안에 놓을 가구와 놀잇감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더해 ‘상상 북’으로 만들었다. 키 100cm 전후의 설아가 놀기에 마침맞도록 집의 크기, 가구의 높이를 계산하고, 오두막에서 신을 슬리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올 법한 설아 의자까지 그려 넣었다. 설아가 친구와 만든 음식을 밖으로 나르기 쉽게 창문도 달고, 엄마 아빠 동태를 살필 수 있게 ‘엿보기 구멍’도 뚫은 오두막이다. 딸과 손녀에게 크기만 다른 쌍둥이 옷을 떠서 입히는 설아 외할머니의 손맵시가 이 오두막을 더 환하게 채울 것이다. 이 오두막에서 설아가 여자로 자라나면, 배지은 씨가 어머니에게서 서정과 열정을 물려받은 것처럼 설아도 엄마에게서 섬세하고도 단단한 자아를 물려받을 것이다. 모녀 3대가 만드는 아름다운 역사, 여자의 역사. 글 최혜경 기자

(오른쪽) 배지은 씨 모녀의 지난겨울 모습, 그리고 상상 북.


(왼쪽) 통통한 볼이 곽정 씨 남매를 꼭 닮은 앙리 인형.
(오른쪽) 황주리 씨의 어머니가 70년동안 살림에 쓴 늙은 가위.


하피스트 곽정 씨, 우리 엄마가 못다 한 말, 앙리 인형 이복자 씨(은산문화재단 회장)는 엄한 엄마였다. 하프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딸이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칭찬 한 번 해준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장학금 받고 다닐 만큼 실력이 남달랐던 딸. 전화로 “엄마, 이번 졸업식 때 상 여덟 개 받아” 하면 그리 기쁘고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애써 억누르고 “어, 그랬니? 건강해라” 하고 끊었다.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딸은 엄마의 속마음을 알까? 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지낸 엄마의 눈에, 이탈리아 골동품 가게에 진열된 ‘앙리 인형’이 들어왔다. “장식장에 넣어 자물쇠를 채워서 진열하는 인형이 있더라고요. 80년 넘은 고목으로만 만드는 앤티크 스타일 목각 인형이에요.” 장인이 100% 수공으로, 정해진 에디션만 만드는 명품 인형이다. 딸이 그리울 때마다 하나씩 사서 20년 동안 모았다. 딸이 보고 싶으면 수화기를 드는 대신, 인형 뺨을 한번 쓰다듬었다. 행여 연습하는 데 방해될까 봐.
곽정 씨가 똑 부러지는 자신의 엄마도 ‘천생 엄마’임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다. 아침에 어머니가 앙리 인형에게 “아가야, 잘 잤니”하며 안아주는 모습을 보았다. 철갑 속에 숨어 있던 엄마의 여린 속살이 보였다. ‘앙리 인형은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던 엄마가 그의 결혼 선물로 인형의 반을 선물했을 때, 딸은 가슴이 메었다. 글 나도연 기자

화가 황주리 씨 어머니의 칠십 살 먹은 가위 내 어머니는 손재주가 무척 좋은 분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내 옷을 모두 손수 만들어 입히시곤 했다. 그뿐인가. 우리 가족은 이발소나 미장원을 갈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가 머리를 기막히게 잘라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공주 같은 옷이 더럽혀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남들 다 타는 미끄럼틀도 타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재주는 어릴 적부터 돋보였다. 울보로 불리던 둘째 딸인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뛰어난 그림과 재봉과 글 솜씨로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셨다. 외할아버지는 따뜻한 감성을 지녔지만, 암울했던 시대를 온 몸과 마음으로 부대끼며 사신 외로운 분이셨다.
교직 생활을 하시던 외할아버지를 따라 어머니 가족은 함경북도 나남에서 8년 동안 사셨다. 그 시절 서울 갔다 오시며 손재주 좋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 둘째 딸에게 질 좋은 가위 한 개를 선물로 사다 주셨다. 그때 이후 어머니는 보물처럼 그 가위를 간직하신다. 우리 옷을 만들어 입히셨고, 머리를 잘라주신 게 바로 그 가위였다.
외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어머니 나이는 열한 살. 그 가위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추억하게 만드는 소중한 물건이다. 나는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내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그림이라는 ‘짐’이 늘어가는 일이라, 그림 아닌 다른 물건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다. 그래선지 어머니가 “이건 네가 가져라”하시며 꺼내 보여주는 반지도 목걸이도 시큰둥했다. 내가 어머니의 물건 중 가장 탐내는 물건이 바로 70년 된 이 늙은 가위다. 이 가위를 본 이후 가위라는 물건에 애착이 생겼다. 이 세상의 가위가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탓이다. 나는 가위 모양으로 그림도 많이 그렸고, 오래된 가위를 수집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했다. 가위가 적당한 각도로 양 날개를 펴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주는지, 마치 나비들이 제 몸을 접고 또 펴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꺼내본 어머니의 가위는 내 어머니처럼 녹슬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이 가위가 내겐 그 어느 작품보다 아름답다. 글 황주리(화가)

연극배우 손숙 씨, 엄마를 닮은 핸드백 그는 20여 년 전 엄마가 물려준 핸드백을 한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어느 날 덜컥 엄마가 폐암으로 입원하신 뒤 그의 삶에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병상에 누운 엄마를 가슴으로 안아봤습니다. 골격 큰 양반이 쪼그라들어서는 제 품에 쏙 들어왔습니다. 난 어렵게, 아주 어렵게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못했거든요. 엄마는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무대에서는 희로애락을 절절하게 투영해내는 배우가, 친정엄마 앞에서는 애정 표현이 서툴렀다. 못된 딸이었다. 엄마가 흡족할 일을 일부러 안 했다. ‘양반의 딸이 왜 광대가 되느냐’던 엄마를 모른 척하고 배우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에게 소박맞은(아버지는 열여섯에 혼인한 직후 유학을 핑계로 엄마를 떠나 밖으로 떠돌았다) 엄마. ‘자기 인생을 살지, 왜 자식만 바라보나’ 싶었고 애증이 커갔다. 그러곤 1994년 엄마의 임종 즈음. “힘든 일이 많아 넋을 놓고 다닐 때였어요. 엄마가 날 보시며 ‘밥 무은나? 꼬라지가 왜 그 모양이고?’하시데요. 임종 직전까지도 손녀딸에게 ‘니 어무이 밥 묵고 나갔나?’하고 묻더래요.”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식 끼니가 걱정되고 자식 꼬락서니가 염려되었나. 5년 뒤 손숙 씨는 연극 <어머니>를 만났다. 묘하게도 마지막 대사가 이렇다. “어무이 우리 어무이, 밥이나 잡숫다가 돌아가셨을까.”

그는 <어머니>를 20년 동안 공연하겠다고 약속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밥 먹고 물 마시듯 연기하게 되었다는 것. 더 이상 찾아갈 친정이 없다는 것. “서럽고 아프면 엄마 냄새 나는 방에 가서 한숨 푹 자고 나면 평화로워집니다. 여자에게 친정이란 곧 엄마예요. 그러니 엄마 없는 친정은 친정이 아니지요.” 멋쟁이였던 엄마가 30여 년 전에 썼던 백을 들고 다닐 때마다 부모이기에 앞서 한 여자였던 엄마가 보인다. “거울처럼 닦으셔서 겉은 멀끔하지만 속은 닳아 너덜너덜해진 백이에요. 한 많은 삶을 단정하게 살다 간 엄마와 닮았네요. 받을 때는 귀한줄 몰랐는데 지금 제겐 최고의 명품 백이에요. 명품이 별 건가요, 사연이 담기면 명품이지.” 글 나도연 기자

(왼쪽) 손숙 씨가 연극 <어머니>에서 한복 차림에 머리를 쪽 찌고 등장하면 그의 언니가 깜짝 놀란다. 사진 속 엄마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페라가모 핸드백은 세월이 지나도 빛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 백을 들고 나가면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한다.

* 연극 <어머니>에서 손숙 씨는 유별나고 극성스러운 우리 시대 어머니를 보여준다. ‘어머니들이 우릴 이렇게 키웠다’는 이야기를 내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5월 24일까지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문의 02-333-7203

최혜경・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