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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두륜산 대흥사 앞 유선여관 계곡물소리가 번뇌를 씻어주는 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전라남도 해남의 유선여관. 두륜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꺾어 드는 계곡에 자리하고 있어 물소리를 벗 삼아 하룻밤 머물기 좋은 곳이다. 계곡물 소리를 베고 누우니 심신의 번뇌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90도로 꺾이는 지점에 있는 유선여관. 여름 장마철이면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렁찬 물소리에 휩싸인다. 이 계곡물 소리는 이곳에서 쉬어가는 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남쪽의 땅 끝에는 두륜산 頭輪山이 우뚝 솟아 있다. 산 정상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데, 아래에서 쳐다보면 그 형상이 솥단지같이 둥그렇다. 그래서 산 이름이 바퀴 륜 輪 자가 들어간 두륜산이 된 것 같다. 두륜산의 좌청룡과 우백호 사이에 자리 잡은 절이 대흥사이다. 산이 양팔로 껴안고 있는 품 안에 자리 잡은 절이다. 더 좋은 점은 대흥사 터의 수구 水口가 막혀 있어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수구는 계곡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일컫는다. 수구가 터져 있으면 밖에서 그 터를 바라볼 때 휑하게 보인다. 수구는 감싸져 있거나 밖에서 잘 보이지 않아야 좋다. 무엇이 좋다는 것인가? 수구가 막혀 있으면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물은 ‘재물’이자 ‘기운’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산대사의 유품이 그 많은 절 가운데 하필 두륜산 대흥사에 보관된 이유 중 하나도 대흥사 터의 수구가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는 90도 각도로 꽉 꺾여 나가면 더 좋다. 물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유선여관은 대흥사의 수구에 해당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대흥사의 ‘수구막이’인 셈이다. 여관은 여관인데, 그 터를 보니 이게 보통 여관이 아니다. 계곡물을 가로지른 피안교 彼岸橋 바로 밑에 자리 잡았다. 비승비속 非僧非俗의 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를 넘어가면 피안 彼岸에 도달한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묵어 가는 여관이니 승려가 머무르는 승소 僧所는 아니다. 그러나 계곡물이 90도 꺾어지는 지점에 있는 만큼 거기에서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가 보통이 아니다. 주인장의 말을 들으니 여름 장마철에는 여관에서 사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린다고 한다. 하루 종일 ‘우르릉 꽝꽝’ 하는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물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진다. 물소리는 영험한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올라 머릿속이 지끈지끈한 사람이나 각종 근심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사람은 물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있으면 효과가 있다. 특히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는 명상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물은 화기 火氣를 내려준다. 요즘 사람의 병은 거의 다 신경을 많이 써서 생긴 병이다. 머리에 불이 올라와서 생긴 상기 병이다. 불을 어떻게 끌 것인가가 관건이다. 물은 머릿속과 심장 속에 쌓인 우환을 씻어 내려가게 만든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잠을 자면 효과가 좋다. 잠을 잘 때는 의식이 쉬고 무의식이 활동한다. 꿈속에서 무의식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도가 닦인다. 물소리가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선여관에서 잠을 자면 비몽사몽간에도 물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옛날 선승 禪僧들은 이처럼 계곡물 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누각이나 암자를 지었다. 침계루 枕溪樓라는 이름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침 枕 자는 베개를 의미한다. 계곡을 베개 삼아 누워 있다는 의미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으면 모든 번뇌가 씻겨 내려가고, 자기 내면의 본성을 응시하게 되어 결국에는 도가 통한다는 속뜻이 숨어 있다. 유선여관 자리가 바로 침계루 삼기에 안성맞춤인 터다. 터를 보니까 ‘유선’보다는 ‘침계’여관이 더 맞는 이름이다. 여관에는 몇 개의 주련 柱聯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 ‘계성편시장광설 溪聲便是長廣舌’이라는 글씨가 나그네 눈에 들어온다. ‘계곡의 물소리가 끝없이 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1 두륜산 대흥사에 올라 절터를 내려다본 풍경이다. 왼쪽 산 아래로 계곡물이 ㄱ자로 꺾어 드는 곳에 유선여관이 자리하고 있다.


2, 3, 4 올해로 94년째 되는 유선여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이다. 다섯 명의 주인을 거치고 현재 여섯 번째 주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간간이 개・보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오랜 세월의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다.

빈민을 돌보는 데 한평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 수녀는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은 낯선 여관에서의 하룻밤이다.” 여관은 여행객이 잠깐 머무는 곳이다. 곧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주 定住하지 못하는 자의 슬픔이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속절없이 잠깐이면서도 정처 없음을 느끼기에는 여관이 최적이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그 정처 없는 나그네의 심정을 느끼기에 알맞은 ‘낯선 여관’이 어디에 있는가? 유선여관 같은 곳이 테레사 수녀가 말한 여관이 아닐까! 이 여관은 평범한 한옥 형태이다. 집 구조에 별다른 점은 없다. 흔히 보는 ‘ㅁ’자형 구조이다. 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객실이 배치되어 있다. 객실은 10개이다. 객실마다 방문 위에 나무 문패로 장미꽃방, 매화꽃방, 참나무방 등의 팻말이 걸려 있다. 객실 크기도 세 종류이다. 하룻밤 묵는 데 3만 원을 받는 2인실, 6만 원을 받는 4인실, 12만 원을 받는 8인실로 나뉜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쓴다. 방바닥은 반들반들한 장판으로 되어 있고, 벽에는 남도의 산수화 액자가 걸려 있다. 담배 냄새도 배어 있지 않아서 머무를 만하다. 여관이지만 밥도 먹을 수 있다. 저녁에 차려주는 밥상은 1인당 1만 원, 아침은 7천 원이다. 저녁 반찬은 병어찜, 제육볶음, 조기구이, 미역국, 된장국 등이 나온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유홍준 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유선여관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반찬이 좋다고 소개했던 것 같다.



여관 주인은 윤재영 씨다. 해남 윤씨라니 수백 년 전부터 이 해남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이 여관은 언제부터 여기에 자리 잡았는가?” “이 터는 역사가 약 4백 년 됐다고 들었다. 4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오두막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와 같은 여관 형태가 들어선 시기는 지금부터 94년 전이다. 한일병합 이후인 1915년 무렵에 여관이 지어진 것이다. 94년 된 여관이다. 유선여관을 지은 이는 박 목수라고 들었다. 박 목수는 당시 백양사 법당을 지었다고 하니, 상당히 실력 있는 목수였던 것 같다. 내가 이 여관을 인수한 지는 8년 되었다. 94년 유선여관 역사에서 다섯 명의 주인이 거쳐 갔다. 내가 여섯 번째 주인인 셈이다. 가장 오랫동안 이 여관을 운영했던 사람은 바로 이전의 주인이었던 여자분이다. 이름이 장화 長花라고 하는데 이 여관을 40여 년 운영하다 말년에 팔고 나갔다. 원래 기생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유선여관을 인수했다고 한다. 유선여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알고 있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여관이 수덕사 앞에 있는 수덕여관이다.” “언제 손님이 많은가?” “여름에 많이 온다. 7~8월에 가장 손님이 많다. 이때는 물소리가 대단하다.” “내가 언뜻 보기에 이 여관의 터가 센 것 같다. 그동안 터가 세다는 소리는 안 들었는가?” “간혹 풍수를 아는 분들이 와서 터가 세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랑이 그림을 걸어놓았다. 호랑이 그림이 있으면 터를 누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1 계곡물을 가로지르는 피안교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유선여관은 비승비속의 터에 있는 것이다.


2, 3 유선여관은 백양사 법당을 지은 박 목수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1990년대 초반 유홍준 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고 최근에는 TV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숙박지로 이용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터가 세다 해도 사람이 많이 들락거리는 공공장소, 학교, 식당, 숙박업 같은 것이 들어서면 괜찮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땅에서 올라오는 강력한 지기를 분산시켜버리는 작용을 한다. 유선여관은 지기만 강한 것이 아니라, 계곡의 수기 水氣가 강하게 몰려오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팔자에 불(火)이 많은 사람이 주인을 하면 궁합이 맞을 것이다. 주인인 윤씨도 띠를 물어보니 1954년 갑오 甲午생이다. 갑오생은 말띠다. 말은 불이 많은 동물이다. 태어난 시도 오 午시일 것 같으면 불이 두 개나 들어 있으니 이 터에 몰려오는 수기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불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한여름 장마철에는 이곳을 피해 있는 것이 좋다. 장마철의 수기는 엄청나다. 집주인과 그 터가 지닌 강약에 따라 궁합이 달라진다. 터가 센 곳이 오히려 주인에게 좋은 곳도 있고, 화근이 되는 수도 있다. 주인의 타고난 기질과 마음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터 궁합이 달라진다. 타고난 팔자에 불이 약하더라도 평소에 욕심을 내지 않고 담담한 심정으로 매사를 대하면 터의 기를 누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담담한 마음상태를 유지하느냐이다. 이것이 내공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찰 수백 곳을 답사하면서 숙박해본 여관 가운데 인상에 남는 곳을 꼽는다면 세 곳이다. 하동 쌍계사 앞에 여관이 하나 있다. 이 여관 역시 한옥이었고, 매표소를 지나 절 바로 코앞에 있다. 가본 지가 십수 년 전이라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흥사 앞의 유선여관, 수덕사 앞의 수덕여관이다. 사찰에 공드리러 들락거리는 불교 신도는 절에서 잘 수 있고, 사찰 구경하러 오는 일반 관광객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당일로 돌아가면 된다. 신도도 아니고 가벼운 관광객도 아닌 사람들, 이들이 문제다. 낯선 여관에 하룻밤 머물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체험하고픈 사람에게는 유선여관과 같은 호젓한 여관이 좋은 것 같다. 물소리가 뼛속에 박혀 있는 번뇌를 씻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서 하룻밤 자보면 그 미묘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아파트나 호텔 숙박과는 아마도 다를 것이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실전에 강한 강호동양학으로 유명한 그는 수식어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법으로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휴휴산방 休休山房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도가 道家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조용헌의 명문가> 등의 저서가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