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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 나를 치유한다]유리 조형 작가 박성원 씨 유리에 마음 속 풍경을 담는다
창작은 고통입니다. 천재적인 음악가도 세기의 문장가도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과 치유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현대 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는 성장기의 상처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전적인 작품 세계를 통해 자기 치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은 곧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연목을 다루는 목수, 흙과 대화하는 도예가, 유리 속에 자아를 담아가는 유리 조형 작가를 만났습니다. 나무와 흙, 유리라는 자연의 재료가 지닌 성정에서, 구슬땀 흐르는 육체적 노동에서, 내 안의 상처를 드러내는 정신적 창조의 과정에서, 창작의 여정을 통해 그들이 얻게 된 배움과 삶의 치유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힘줄이 끊어진 듯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고무 호수가 맥없이 터져버린다. 땀에 젖은 청바지와 셔츠가 성가시게 온몸을 휘감는다. 이마 위로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 사이로 시선을 모아 발갛게 달아오른 불덩이와 씨름을 반복한다. 벽에 걸린 온도계 눈금이 40℃를 훌쩍 넘어선다.’ 유리 조형 작업은 상상하기 힘든 고강도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박성원 씨가 들려주는 뜨거운 열기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한여름 유리 조형실의 모습이다. 기다란 쇠파이프 끝에 달린 발갛게 달아오른 유리 덩어리로 순간적인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순간적인 작업의 우연성과 작가의 손맛이 결합되어 빚어지는 유리의 화려한 조형미와 조우하는 그 순간이 바로 그가 땀을 흘리는 이유다. 박성원 씨는 우리나라의 유리 조형 작가 1세대다. 그가 유리를 처음 접한 것은 금속 공예를 공부하던 학부 시절이었다. 이미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마친 그가 다시금 예술대로 진학했던 이유는 무언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금속 공예는 기대했던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유리 공예는 박성원 씨를 다시 한 번 만학의 길에 오르게 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의 유리 공예 분야는 불모지에 가까웠기에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유리 공예로 대학 과정을 다시 밟고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1만 2천 자에 달하는 졸업 논문을 써야 하는 힘든 과정도 물론 있었지만 그는 유리를 만나게 된 그 시절을 ‘너무너무 좋았다’고 표현한다. “영국은 문화가 달랐어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졸업 전시로 개인전을 열었어요. 한국에서는 졸업 전시라 하면 다녀가는 이가 대부분 가족과 친구들이잖아요. 영국은 학생의 졸업 전시에도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요. 설마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의 작품을 누가 사 갈까 싶었는데, 그간의 유학 비용을 졸업 전시회에서 작품을 팔아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졸업 후 진로 선택에 다양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작은 공방을 택했다. 일 년 남짓한 시간 안에 가마 만드는 법 등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유리 작업의 기초를 모두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 지난해 일본의 유리 조형 작가 이에즈미 도시오와 함께했던 전시에 선보인 자화상 시리즈. 스케치 작업과 유리 조형물이 박성원 씨의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다. 평면적인 드로잉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면서 평면이되 입체이고 입체이되 평면인 작업을 시도했다.


2 2004년 코리아나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향수병 작품과 유리 조형 작가 박성원 씨.

박성원 씨는 지금도 일 년 365일 중 364일을 학교 작업실에서 보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인 그는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세상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평상복과 함께 교수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작업복을 입은 작가 박성원이 된다. 하루도 작업실을 비우지 못하는 이유는 손끝에서 ‘감’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유리 작업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래도 내 손맛을 살려 직접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조형 예술 분야는 디자인이나 모델링 정도만 직접 하고 실제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작가들도 있지만, 저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직접 땀 흘리며 작업하고 싶어요. 그러니 매일매일 작업복을 입지 않을 수 없지요.”


1 2004년 코리아나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향수병 시리즈. 향수병을 모티프로 한 커다란 오브제가 멋스럽다.
2 박성원 씨가 유리 조형실에서 블로잉 기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물에 적신 두꺼운 신문지를 사이에 두고 1000℃를 육박하는 유리 덩어리에 손맛을 더해 작업한다.



3 유리 파이프 조형 작품은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던 것으로 현재 서울의 한 병원 로비에 설치되어 있다.
4 2008년 전시에서 선보인 자화상 시리즈 작품.


몇 해 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는 어쩌면 유리 조형 작가의 길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건강이 호전되어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작업 세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의 작업이 조형미에 중심을 두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보니, 내 안에 깊숙이 숨겨놓은 상처나 수많은 생각을 표현하기에 ‘투명한’ 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더군요.” 그는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진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 숨기고 싶은 인생의 상처 등을 유리 안에 담아내고 있다. 반짝이는 유리 꽃으로 뒤덮인 두상 형태의 작품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얼굴은 스크래치로 가득하다.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상처로 얼룩진 내면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라 말하고 있다. 그는 유리 속에 내면의 정서를 담아가는 창작 과정이 치유로 다가왔듯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5 2004년에 선보였던 자화상 시리즈는 거울을 소재로 삼았다. 작품 거울 속에 박성원 씨의 사무실 모습이 보인다.

박성원 씨가 들려주는 유리 이야기
유리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지만, 유리를 조형 예술의 재료로 자유롭게 활용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유리는 현대에 와서 컴퓨터 프로그램 등 기술의 발전으로 자유로운 재료가 된 것이다.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바로 이집트의 유리 해골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유리를 다루는 데에서 조형 과정만큼 중요한 것이 유리를 식히는 과정이다. 주먹만 한 유리 렌즈 하나를 식히는 데도 한 달 이상 걸리는데 이집트 시대에 두상 크기의 유리 해골을 손상 없이 완벽하게 식힐 수 있었던 기술이 불가사의다.

유리 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
글라스빌 031-981-2727 www.glassvill.co.kr
마노공방 031-676-7815 www.mahno.co.kr
강인경 유리공방 031-972-8862, http://blog.naver.com/kik5853
플럭스 글라스 아트 앤 디자인 02-379-4424 www. Artflux.co.kr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