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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 나를 치유한다] 목수 김진송 씨 나무는 목수에게 경험적 지식의 창고다
창작은 고통입니다. 천재적인 음악가도 세기의 문장가도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과 치유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현대 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는 성장기의 상처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전적인 작품 세계를 통해 자기 치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은 곧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연목을 다루는 목수, 흙과 대화하는 도예가, 유리 속에 자아를 담아가는 유리 조형 작가를 만났습니다. 나무와 흙, 유리라는 자연의 재료가 지닌 성정에서, 구슬땀 흐르는 육체적 노동에서, 내 안의 상처를 드러내는 정신적 창조의 과정에서, 창작의 여정을 통해 그들이 얻게 된 배움과 삶의 치유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손끝에서 우아한 펜대를 거두어내고 투박한 연장을 집어 든 김진송 씨. 활발하게 활동하던 평론가이자 기획과 출판 일을 하던, 말하자면 ‘책상물림’으로 살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목수가 되었다. 그 인생의 전환점에서 낭만적인 혹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목수 일은 그저 밥벌이일 뿐’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주변에 나무가 있었어요. 그저 소일거리 삼아 가구를 만들다 보니 많아지더군요. 지인의 권유로 1998년 봄에 전시를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엉터리 물건이었는데 거의 다 팔리더군요. 전시를 한 번 더 했는데 또 다 팔리고…. 아,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목수가 되었어요.” 감성에 젖은 예술가의 촉촉한 응답이 아닌 생계형 직업인임을 강조하는 무미건조한 답변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왼쪽) 김진송 씨가 직접 지은 작업실은 탁자와 의자 같은 가구부터 작은 인형까지 그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망가진 연장과 톱날 등 쇠붙이로 만든 고슴도치와 풍뎅이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1 잣나무로 만든 좌식 탁자. 집에서 10여 년간 사용하던 것을 작업실에 옮겨놓았다. 대를 물리고 50년 이상 사용해도 끄떡없는 가구를 만들려면 못과 같은 쇠붙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무와 나무를 서로 짜 맞추고 이를 물리는 것이 더 견고하다.
2 김진송 씨는 가구를 만들어 1년 정도 다시 말린다. 이 과정에서 뒤틀림이나 어긋남이 나타나면 가구를 해체한 뒤 깎고 다듬으며 균형을 맞추어 다시 조립한다. 사진은 첫 번째 조립 후 건조 과정에 있는 의자.


그는 자연목으로 가구를 만든다. 돈을 주고 번듯한 나무를 사는 것이 아니다. 근처 야산에서 벌목된 소나무, 우연한 기회에 이웃에게 얻은 느티나무 등 주변에서 구한 것으로 가구를 만든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그는 나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제재목을 사용하는 목수나 평생 한두 가지 나무만 고집하는 전통 공예인과 달리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나무를 재료로 삼는다. 재료를 가리지 않다 보니 10여 년 동안 그가 다루어본 나무는 1백 종이 넘는다. 자연목은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7~8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온전한 재료가 된다. 이렇듯 나무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게 되니 가구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목리 木理를 깨우치고 나무가 살아 있을 때의 생태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자연목을 다루는 목수 일의 묘미를 ‘자연을 가까이서 보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디자인은 나무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눈앞에 놓여 있는 나무의 형태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나무의 목리를 따르는 디자인, 어찌 보면 나무가 제 속에 숨겨놓은 디자인을 그가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느티나무는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 판재를 얇게 만들고 섬세한 장식을 할 수 있다. 버드나무는 한쪽으로 섬유질이 강하고 뒤틀림도 많아 최대한 결을 살리는 방향으로 형태를 만든다. 물푸레나무는 단단하고 갈라짐이 적어 목수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다. 박달나무는 고유의 물결무늬가 매우 아름답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 해서 목리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봄에 벤 것인지 가을에 벤 것인지, 뿌리에 가까운 아랫동인지 윗동인지, 심재인지 변재인지에 따라 목리가 달라진다. 그는 목수에게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고 말한다.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고 목리를 온전히 이해하면 세상의 모든 나무가 목수의 손끝에서 새로운 쓰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목수와 작가 사이
김진송 씨는 가구를 직접 배달한다. 배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자신이 만든 가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가구가 놓일 곳의 채광과 습도 등 물리적인 환경도 점검하고 어떻게 건사하는 것이 좋은지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사람들에게 배달꾼이 될 때와 작가가 될 때 상반된 대접을 받곤 한다. 그를 배달꾼으로 여기고 무례하게 대하다가도 가구를 만든 사람임을 알게 되면 ‘작가 선생님’으로 대접이 달라진다고. 목수든 작가든 배달꾼이든 물건 자체의 기능과 아름다움이 존중받을 만하다면 그 앞에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작가가 아닌 목수를 고집하고 배달꾼을 자처하는 이유다.

요즘에는 나무 다루는 일을 쉬고 있지만, 매일같이 작업실 2층으로 출근해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오른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유화 또한 그가 나무 일을 쉬는 동안 그린 것이다.

목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에는 겉보기에 큼직하고 번듯한 나무는 모조리 주워 모았다. 그렇게 주워 온 나무 중 열에 아홉은 땔감이 되었다고 한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잘라보면 속이 썩었거나 벌레가 먹어 가구를 만드는 목재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멀리서도 그 나무가 쓸모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작은 구멍 하나만으로도 ‘이 나무는 무슨 벌레가 먹었구나. 벌레로 보아 장마철에 벤 것이겠구나. 그렇다면 이미 벌레가 속까지 먹어들었을 것이니 쓸모가 없겠다’ 하고 가늠할 수 있단다.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려면 나무를 이해해야 하고, 나무를 제대로 알려면 자연 생태를 이해해야 한다. 바른 목물을 만들고자 하는 정직한 목수의 자세는 자연스레 꽃도 보고 벌레도 보게 만들었다. 이렇듯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나무 도사가 된 것이다.
김진송 씨는 평론가나 출판인으로 계속 살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중요한 것들을 목수 일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육체적 노동을 통해 축적되는 경험적 지식을 학문적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풍조에서 그 또한 이른바 학문적 지식인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몸을 통해 얻는 경험적 지식이 글로 체계화한 학문적 지식에 결코 뒤지는 것이 아님을 나무를 다루는 목수의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속에 파묻혀 펜대의 시선으로 살았다면 절대 알게 되지 못했을 진실이다. 그는 나무를 뜯어 한입 베어본다. 맛과 함께하면 기억해내기 쉽기 때문이다. 1백 가지가 넘는 나무의 목리와 목질을 체험의 지식으로 축적해가는 그만의 방식이다.


1,2 작업실을 포함해 이 공간을 채우는 물건의 99%는 그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3,4 2004년 예술의전당에서 한 달간 열렸던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전에서 선보인 목각 인형. 1백50여 점의 인형을 선보였던 이 전시회에서는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글과 인형을 함께 소개했다. 자신은 인형과 같은 조형물을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 쓰임이 있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라고 말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전을 기억하며 이후의 전시 계획에 대해 묻곤 한다. 머리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는 작품의 제목은 ‘생각이 많은 사람’, 펼쳐진 책 모양 작품의 제목은 ‘책 속에 빠진 아이’.


목공예 배울 수 있는
그가 목수 일을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방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본인의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자가 결국은 결실을 보는 법. 목공을 하고 싶다면 방법은 스스로 깨치라고 김진송 씨는 말한다. 그의 말에 일리도 있지만 아파트 주거가 일반적인 현실에서 목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엄밀히 따지면 소음, 먼지, 이웃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톱질하고 못질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쪽이공방 www.banzzogi.net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드는 가구 http://my-diy.co.kr
헤펠레공방 www.diyhafele.co.kr
나무풍경 www.woodscape.co.kr
후아의 나무공방 www.huawood.com
만들고 싶은 것들 www.diylife.co.kr
나만의 가구 www.diycc.co.kr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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