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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한민국 가족 다문화 가족 새로운 대한민국 가족 다문화 가족
다문화 가족,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마트에만 나가도 달라진 풍경을 실감할 것이다.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주부들이 부쩍 늘어났고, 식품 코너에도 외국 양념류부터 각종 해외 식자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백만 명에 이른 시대다. 이제 대한민국은 행복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열 때다. 자녀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당신의 작은 참여가 필요하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슬하의 담비・바다네 가족. 담비와 바다는 잠시도 떨어져 있지 못할 만큼 우애가 돈독하고, 부부는 때론 말보다 눈빛이 더욱 진실하다고 믿을 만큼 서로를 깊이 신뢰한다. 이 가족을 통해다문화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 및 국제화 시대에 이들과 이웃 사촌이 되어 더불어 사는 길을 소개한다.

혼혈이 아닙니다, 다문화 가족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매년 결혼하는 커플 중 10% 이상이 국제결혼이고, 2012년 이후에는 초등학교 입학생 10명 중 1명이 다문화 가족의 어린이이며, 2020년에는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다문화 가족일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1백만 명 시대. 다문화 가족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다문화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길라잡이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다문화 사회란 말 그대로 문화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를 뜻한다.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한건수 교수는 여기서 핵심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막국수와 식탁 위의 다문화주의’라는 글에서 “가령 한약방의 약재 서랍에 다양한 약재가 층층이 잘 보관되어 있는데, 이렇게 보관된 상태가 다문화 사회가 아니다. 약재가 약효를 내려면 다른 약재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약재 서랍에 간직하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경계를 넘나들며 각각의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과 상상력을 넓혀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 걸림돌이 있다. 우리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나 단일민족주의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세상에 ‘순혈’이란 게 정말 존재할까? ‘순혈’이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닌 관념이자 허상이다. ‘토종 한국인’이라 믿는 사람도 한두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에 이곳에 이주한 몽골인 혹은 조선 땅에 정착한 청인이나 일본인의 피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느 민족이든 항상 생김새가 다른 민족과 섞이며 살았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러한 섞임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졌다. 즉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대한 이질감에서 ‘순혈이냐 혼혈이냐’의 편 가르기라는 허상을 만들어냈다.
한 사회에서 특정 문화가 차별받지 않으려면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과 유연성이 커야 한다. 잠깐, 이는 글로벌 인재로 자라기를 바라는 우리 자녀가 익혀야 할 덕목이 아닐까? 예컨대 요즘 자녀를 해외로 어학 연수 보내는 가장 큰 이유가 언어 훈련 및 문화에 대한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서다. “어학 연수도 좋지만, 이곳에서 다문화 가족 이웃에 대한 연수를 먼저 해보는 건 어떨까요? 세계 시민이 되는 길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족이 늘고 있는 현상은 한국 사람들이 단일 문화성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요? 혼혈이라는 말부터가 ‘다른 피’를 염두에 둔 발상이니, 다문화 가족으로 정정하고요.” 국제이해교육학회 부회장 강순원 교수의 말처럼 다문화 사회는 다문화 가정과 이웃사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럼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슬하의 담비・바다네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며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는 첫발을 떼어보자. 아울러 다양한 문화 배경에서 자란 어린이야말로 글로벌 인재라는 점을 주목한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한국과 베트남 문화가 어울린 강담비・바다네 가족
“엄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이곳에 왔단다”
13년 전 호기심 많은 남자 강정필 씨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친구의 소개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인 베트남 여인 진정수 씨를 만났다.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전형적인 이 한국 남자가 그녀에게 받은 첫인상은 이랬다. ‘키도 참 작구나. 이목구비와 몸매가 어쩜 저리도 동글동글하다냐….’ 우선 낯이 설었다. 눈에 익숙해지고 나니 진정수 씨의 남다른 면모가 보였다. ‘와, 정말 똑똑한 여자다!’ 사회주의 국가인지라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 기관의 장長이 여성인 경우가 흔하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유난히 일 잘하고 현명한 진정수 씨를 만나니 놀라웠다.
남자의 서툰 영어와 여자의 유창한 영어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베트남 땅에 매료된 강정필 씨는 베트남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진정수 씨에게 부탁했다. 매일 출근 전, 8시부터 9시까지 제자가 스승의 집에 찾아가 배웠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낯선 땅에서의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얼마 뒤 강정필 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진정수 씨는 종종 베트남에서 영어로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런데 영어가 서툰 남자는 반년 넘게 편지를 받기만 했을 뿐 답장을 쓰지 못했다. 결국 후배를 시켜서 영어 편지를 써 보냈다. 2년여간 전화와 편지, 휴가 떠난 베트남에서의 데이트로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을 키웠다. 그리고 어느 날, 강정필 씨는 진정수 씨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결혼합시다!”
프러포즈를 한 뒤 남자는 한국에서 애가 탔다. 진정수 씨가 한 달 가까이 전화도 받지 않고 편지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여 만에 여자는 승낙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대한 진정수 씨의 변. “저는 독신주의자였거든요. 오빠가 일곱 명이나 있는 터라 귀여움을 받고 자랐고, 남편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직장에 다니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법대에 다니던 차였고, 내친김에 박사 학위를 딸 계획이었거든요. 그러니 프러포즈를 받고 고민스러웠죠.” 그런데 결심이 선 것은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안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둘은 베트남에서 한 번, 한국에서 또 한 번 결혼식을 올렸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 vs. 한 나라에 적응하는 어려움
베트남에서 법대에 다니던 진정수 씨는 첫아이 담비를 임신하고서 학교를 그만두었고, 몇 년 뒤 둘째 바다를 낳을 때까지 부부는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살았다. 그러다 4년 전 완전히 한국에 정착했다. 진정수 씨는 베트남에서 외국 회사에 근무한 경력을 살려 현재 여의도에 있는 금융 회사의 국제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는 흔히 ‘베트남 신부’ 하면 떠오르는 경우(혼기를 넘긴 농촌 총각에게 시집오는 경우)와 사연이 좀 다르다.
강순원 교수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오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최근 국제결혼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언론이나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사연들이 부각되다 보니 ‘한국인・동남아시아인’ 부부는 모두 이런 경우라고 여기지요. 그러나 이들이 결혼하는 사연은 실로 다양합니다. 한국 남성이 동남아시아로 출장을 갔다가 그쪽 여성을 만나기도, 동남아시아의 전문직 여성이 한국에서 일하다가 한국 남성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섣불리 일반화하는 것은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담비네 가족처럼 한국에서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나라를 오가는 다문화 가정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의 언어 습득 문제다. 강정필 씨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다가 일곱 살 때 한국으로 돌아온 담비는 한국어를 거의 잊고 베트남어만 하던 상태였어요. 더 어린 바다는 아예 베트남어만 할 줄 아는 상황이라 아빠인 저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요. 담비가 한국에서 학교에 입학했는데, ‘나는 베트남 사람인데 잠시 한국에 유학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가, 나, 다’도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4년 동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이제는 한국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합니다.” 그동안 강정필 씨는 담비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전전긍긍했다. 직접 한글을 가르쳐보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엄마 대신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한글을 모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며 안심시켜주더란다.


현재 담비는 베트남어를 전혀 못한다. 학교에서는 물론, 엄마도 집에서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엄마가 베트남어 단어 몇 가지를 떠올려주면 어렴풋이 기억해내는데, 발음이 아주 좋다고 한다. 조금만 훈련하면 베트남어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담비와 바다는 엄마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다문화 사회의 해답은 ‘가족’에 있다
언어 문제는 진정수 씨에게도 큰 어려움이다. 키가 좀 작다는 것만 빼고는 외모가 언뜻 한국인과 흡사한 진정수 씨. 그러나 시장이나 공공장소에서 한국말을 못하면 무시를 받았던 경험이 많다고 한다. 강순원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순혈주의나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일본이나 프랑스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국 언어를 쓰지 못하면 차별받는 경우가 많지요”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일하던 재미교포들이 얼마나 서러움이 많았던가. 다문화 사회를 이해하려면 역지사지 易地思之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4년 전 담비네 가족이 한국에 정착했을 때 강정필 씨의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선진국이 아닌, 어려운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웃의 괄시나 따돌림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고 무척 신경이 쓰였어요. 또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걱정되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이제는 한마음 한뜻으로, 마치 한몸과도 같은 사이인지라 자녀가 ‘혼혈’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도 아이들을 ‘혼혈아’로 생각하니까요.”
진정수 씨는 다문화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가정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른 일반 가정과 비슷해요. 남편과 아내의 심리가 달라서 때론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티격태격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가정이든 서로의 다른 점을 사랑해야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다문화 가정은 이미 부부가 의식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좀 더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녀의 주장에도 더 귀 기울이는 편인 것 같아요.”
진정수 씨의 고향은 베트남 중부 고산지대 ‘달랏’이다. 강정필 씨는 아이들이 큰 후엔 아내와 함께 달랏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단다. “1000m가 넘는 고지에 있는 이 마을은 1년 내내 가을 날씨거든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덥지 않은 지역으로 참 아름답고 평온합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살 텐데,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많은 변화를 겪겠지요. 저희도 그중 한 구성원으로서 많이 배우고, 또한 기회가 되면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베트남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 왼쪽부터 김동희・강담비・김미옥・강바다・곽인환・박세영・김동주 어린이.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우리는 한국인이자 베트남인이며 세계인입니다”
2012년 이후에는 초등학교 입학생 10명 중 1명이 다문화 가정 어린이일 정도로 이제는 다문화 사회의 이슈 중 어린이 교육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우리 자녀의 친구이자, 나아가 한국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NGO와 각종 사회단체 및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 등을 주축으로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 Kids of Asia는 그중 돋보이는 프로젝트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두 문화를 배경으로 한,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잠재력이 있는 아이입니다. 이 점을 주목해 부모 나라를 이해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수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나금융그룹 김기홍 차장의 설명대로 하나 키즈 오브 아시아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가 한국에 일방적인 적응을 하도록 만드는 기존의 논리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1기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지역을 확대해 장기적인 사회 공헌 활동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우리 사회에 행복 하나 더하기’라는 TV 광고 캠페인을 떠올리면 다문화 가정 지원 프로그램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베트남 엄마를 두었지만 / 당신처럼 이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합니다. / 축구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 스무 살이 넘으면 군대를 갈 것이고 /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할 것입니다. / 당신처럼. /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일, / 내일의 행복을 위한 길입니다”라는 메시지가 흐르는 광고처럼, 물설고 낯선 땅에 온 다문화 가정 사람을 돕는 일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이 프로그램은 국제 아동 기구인 ‘세이브 더 칠드런’과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학과 학생들이 함께한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하나금융그룹 사옥에서 ‘토요 학교’를 연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견학하고 베트남 수상 인형극, 베트남 유물 전시회 등을 관람하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도 마련한다.
특히 베트남어학과 학생들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하며 베트남어 교육은 물론 엄마 대신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는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담비와 바다는 ‘멘토 언니’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언니가 친절하게 숙제도 도와주고, 베트남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들려줘요. 그럼 어릴 때 베트남 외갓집에서 먹은 카레가 떠오르기도 해요.” 멘토의 보살핌 덕에 자신감을 찾은 담비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수줍게 웃는다.
강순원 교수는 앞으로 ‘아시아 문화’라는 공통점을 잘 이해한 프로그램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베트남이나 타이 같은 아시아 사람들이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감동하지, 유럽 사람들은 그 정도로 열광하지 않습니다. 아시아라는 공통 정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적극적인 프로그램으로 주변국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겠지요.”

“우리 이웃에 다문화 가정이 있다면 이렇게 어울려요”
이웃에 다문화 가정이 있지만 어쩐지 서먹해 친해지기가 어렵다면 강순원 교수의 조언을 참고해보자.
1 명절 전후에 마음 나누기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 여성이나 근로자들은 홀홀단신 한국으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고국에 있는 친정에 갈 기회가 적다. 주부들이야 잘 알겠지만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 친정에 못 가면 얼마나 서운한가. 명절 전이나 직후에 명절 음식도 나눌 겸 이웃의 문을 두드려보자. 그리고 같은 며느리 혹은 딸의 입장으로 ‘수다’를 나눠보라. 말이 서툰 외국인 여성이라도 이런 심적인 이야기는 ‘만국 공통어’인 몸짓과 표정으로 통하기 마련.
2 요리 배우고 가르쳐주기 가령 베트남 여성이라면 김치 담그는 법 배울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먼저 그에게 쌀국수 만드는 법을 전수받는 식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배워보자. 그들은 한국에 오면 온통 ‘한국을 이해하라’는 시선을 받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러니 거꾸로 그들에게 요리부터 인테리어 아이디어 등을 배워보도록 하자.
3 글로벌 친구 되기 잘 생각해보면 다문화 가정의 여성은 우리가 학창 시절 그리도 갖고 싶었던 ‘해외 펜팔’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때의 설렘을 떠올려, 다문화 가정 여성을 통해 글로벌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의식적으로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우선 마트에 함께 간다든지, 운동을 함께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여자 대 여자로 친구가 되어보자.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