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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 스스로 자라게 하라]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의 어머니 최현숙 씨 천재를 만든 50%의 달란트와 50%의 믿음
화초에 물을 줄 때 뿌리까지 흠뻑 젖게 주듯 아이가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건 맘껏 하도록 했다. 그래서 딸은 탐구심 강하고 성실한 천재가 됐다.
10여 년 전 강원도 원주의 ‘피아노 신동’ 손열음 씨는 열세 살 나이에 금호 영재 콘서트를 통해 음악계에 데뷔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조기 입학한 뒤,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음악가 집안 출신도, 예중・예고 출신도 아니다.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책 읽기를 즐겨 했다는 그가 촉망받는 예술가 반열에 오른 비결이 궁금하다.

(왼쪽) 최현숙 씨는 절대 음감을 타고 난 딸 손열음 씨가 음악과 무관한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오히려 행운일 지도 모른다고 한다. 섣부른 자만심이나 부담감 없이 연주했고, 제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므로. 

딸이 천재인 줄 몰랐다 어머니 최현숙(강원도 횡성고등학교 국어 교사) 씨의 첫마디는 ‘비결이 없다’였다. “열음이가 음악적으로 천재인 줄도 몰랐으니까요. 천재는 괴짜 기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는 어릴 때부터 수더분했거든요.” 얌전하고 평범한 이 아이에게 다른 점이 몇 가지 있기는 했다. 서너 살 된 열음이에게 “엄마가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면 딸은 그 밋밋한 일상의 이야기를 습자지처럼 흡수했다. 또 놀이터에 가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며 혼자만의 놀이에 몰두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천재의 기질이라더군요.”
세 돌 반 되던 해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다. 피아노 선생님 왈, “열음이는 절대 음감입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말로는 복잡한 화음을 쳐도 모든 음을 동시에 인지한다더군요. 중학교 음악책을 보여주면 모르는 노래인데 쭉쭉 부르고,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피아노로 따라 쳤고요.” 모녀는 재능을 하나씩 발견하며 함께 커갔다. 최현숙 씨가 해준 일이라고는 매일 오후 2시 정만섭 씨가 진행하는 KBS 1FM의 <명연주 명음반>을 들려준 것이 전부다. 엄마가 음악을 몰랐던 게 오히려 딸에게 자만심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아 다행이었다.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다” 그는 피아노 연습을 강요한 적이 없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네게는 달란트가 있다. 이 달란트는 혼자 쓰기에는 크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하자.” 딸은 달란트를 다지는 연습을 즐거이 감수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하루 4~5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우선순위를 둬라 일곱 살 때부터 최현숙 씨는 딸과 함께 매일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주위에서는 돈을 어떻게 대려고 음악을 시작했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괜찮을까?’하는 의심도 없었어요. 딸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열세 살 때부터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장학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녀 교육에서 우선순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과 레슨 이외는 우선순위 밖이었다. 그래서 딸이 수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도 연연하지 않았다. “학업에 관련된 학원을 보낸 적이 없어요. 우선순위 없이 자녀가 모든 것을 잘하기 바란다면, 천재도 둔재가 될 수 있어요.”

갈증 풀릴 때까지 원하는 것을 다 해보게 하라 손열음 씨는 이번에 쇼팽의 ‘녹턴’을 피아노와 관현악 합주로 편곡해 연주한 음반 <피아노와 현을 위한 녹턴>을 냈다. 피아노 연주 기량도 탁월하지만, 편곡에도 관여해 쇼팽의 원곡을 창의적으로 되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제가 탐구심이 강한데 독서 덕분인 것 같아요. 엄마가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원하는 책을 다 사주셨어요.” 최현숙 씨는 딸이 좋아하는 역사책을 역사 선생님에게 물어봐서 구해주었고, 손열음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국사대사전>을 정독하고는 갈증을 해소했다. “우리 집의 화초는 잘 크고 꽃도 잘 펴요. 비결은‘물을 줄 때 뿌리까지 흠뻑 젖도록 실컷 준다. 그러고 나서 바짝 말랐을 때 또 준다’예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은 맘껏 하도록 해야 해요.” 그 바탕에는 딸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손열음 씨의 <피아노와 현을 위한 녹턴>을 듣다 보면 그가 악보에 없는 음을 읽어내며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천재라서 다르구나! 이때 최현숙 씨의 일침. “누구에게나 달란트가 있어요. 그 달란트를 자녀가 실컷 발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믿고 길을 열어주면 누구나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되지요.”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