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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_샤토 라 라귄의 여주인 캐롤린 프레이 샤토에서는 누구나 가족이 된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메도크로 향하는 길, 가장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샤토 라 라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공주님처럼 예쁜 여인이 나타나 “봉주르”! 인사를 건넨 뒤 와인을 권한다. 평소에는 장화 신은 양조장 주인인 그는 얼마 전 포도 수확도 끝나고 1차 발효도 마친 덕에 날씬한 하이힐로 갈아 신고 본격적인 손님맞이를 시작한다.


(왼쪽) 붉은 담쟁이가 그림을 그려놓은양조장 입구의 담벼락이 늦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오른쪽) 다이닝 룸에는 그의 컬렉션인 ‘사모바르’라 불리는 찻주전자와 은식기가 놓여 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보르도의 늦가을이 찬란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포도밭, 급작스레 뚝 떨어진 기온은 그 어느 해보다 포도나무 잎사귀를 붉은빛이 감도는 노란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였다. 메도크 루트의 아름다운 자갈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샤토 라 라귄 Château La Lagune은 1730년에 지어진 이후 보르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클래식한 샤토 중 하나로 손꼽힌다(샤토는 프랑스어로 ‘성城’을 뜻하는데, 와인에서는 양조장을 의미한다). 우아한 자태로 우리를 맞은 이는 캐롤린 프레이 Caroline Frey. 이곳 샤토의 소유주인 장 자크 프레이 Jean Jacque Frey의 첫째 딸로, 2004년 아버지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은 젊은 여성 오너다. 장 자크 프레이는 2000년에 이 샤토를 인수한 후 2004년까지 레노베이션 공사를 통해 기술적인 생산 시설을 갖춘 청결한 양조장과 주거 공간을 완성했다. 캐롤린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다시 보르도 대학에 진학해 포도주 양조 전공 학부를 1등으로 졸업했으며 오놀로그 oenologue(그 지역의 환경에 맞게 포도를 재배해서 포도주를 빚는 양조학자) 자격증을 땄다. 샤토 라 라귄에서 만든 그의 첫 번째 빈티지는 2004년. 아버지가 터를 닦고 딸의 전문성이 더해졌다.


1 가족과 오랜 세월을 지낸 가구, 샹들리에, 벽난로, 초상화 등으로 클래식하게 꾸민 리빙 룸.
2 곳곳에 놓인 사진들을 통해 가족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3 캐롤린의 취향에 따라 플라워 패턴 패브릭과 조명, 가구로 화려하게 꾸민 침실.
4 차 마실 때 필요한 기구를 올려놓는 차 전용 가구로 ‘세르비퇴르 뮈에’라 부른다. ‘벙어리 서비스맨’이라는 뜻.


“샤토에서의 삶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조용한 삶은 아니에요. 포도 수확철이나 와인 병입 시에는 무척 바쁘고, 그 외에는 전 세계로 시음회나 프로모션을 하러 다닙니다. 밭에서 장화 신고 일하다가 판매하러 갈 때는 하이힐로 갈아 신지요.”앞뒤로 포도밭이 펼쳐진 이 아름다운 샤토를 레노베이션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편안하게 꾸미는 것이었다. 양조장과 숙성실, 셀러를 제외한 중앙 샤토는 침실 세 개와 리빙 룸, 다이닝 룸, 서재, 키친, 개인 와인 저장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프레이 씨의 가족이 이곳에 머물지는 않지만 가족의 스토리를 존중하는 캐롤린의 취향과 거기에 그만의 감각이 더해져 공간 곳곳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리빙 룸에는 예전부터 사용하던 가구들을 배치해 집처럼 편안한 느낌, 가족적인 분위기에 젖을 수 있도록 했다. 붉은 스트라이프 벽지로 마감한 다이닝 룸은 1850년산 마호가니와 쿠바 나무로 만든 영국식 의자 세트, ‘세르비퇴르 뮈에 serviteur muet’(벙어리 서비스맨)라 부르는 티 가구, ‘사모바르 samovar’라고 하는 찻주전자 등으로 전형적인 영국식 세팅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려하고 클래식하지만 커튼이나 카펫 같은 다양한 패브릭과 가족용 가구, 조명등을 이용해 방마다 각각 다른 콘셉트를 부여했다. 손님용 침실은 중국식 룸, 데이지 룸, 루이 16세 스타일의 황제 룸 등 세 가지로 꾸몄다. 다양한 꽃무늬 패턴, 페르시안이나 인디언 등의 이국적인 장식품, 컬러풀한 패브릭, 우아한 태피스트리와 끈 장식, 인조 대리석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샤토 라 라귄에는 캐롤린의 취향과 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5 샤토 라 라귄의 와인 생산과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캐롤린 프레이.


1 전통 요리인 양고기 케이크가 메인 요리로 제공됐다.
2 에마뉘엘 집사와 라묄 셰프.



3 이곳에서는 입술 닿는 부분이 얇고, 무게 중심은 아래 쪽에 있는 리델 사의 비티스 카베르네 소비뇽 잔을 사용한다.
4 디저트는 배를 넣은 크로켕부슈와 초콜릿.


“와이너리라고 해도 포도주 하나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와인이 샤토의 삶 속에 완전히 녹아 있는 것이 중요하지요. 생활 속의 예술(l’art de vivre)이 샤토 라 라귄의 철학입니다. 누구라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샤토 라 라귄의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도록, 포도밭 한가운데서 와인과 함께 사는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세심한 부분은 집사와 셰프가 맡아줍니다. 지역 특산품을 이용하는 프랑스 전통 메뉴를 준비하는데, 셰프의 실력이 뛰어나서 같은 음식을 두 번 먹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예요. 집사는 고객의 요구를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지요. 전체를 감독하는 일은 제 몫이고요.”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정하고 시음 와인을 선택하는 일은 항상 그가 직접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샤토의 문을 열고 고객과 지인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다이닝 룸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기능적으로도 뒤지지 않는 넓은 키친이 나온다. 멋스러운 황제 룸보다도, 우아한 리빙 룸보다도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이 키친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돌로 된 아치 모양의 둥근 천장, 커다란 벽난로와 옛것을 떼어내 설치한 화덕, 앤티크풍 조리대, 줄 맞춰 걸려 있는 구리 팬, 한가운데 놓인 긴 테이블은 마치 꿈에 그리던 ‘키친 종합 선물 세트’ 같다. 키친 내부는 이미 주변 전나무 숲에서 따 온 전나무 가지와 붉은 열매, 빨간 아마릴리스, 솔방울, 오너먼트, 리스, 선물 상자 등 크리스마스 상징물로 오색찬란하게 꾸며져 있다. 수놓은 초록색 테이블클로스는 집 꾸미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그의 어머니가 구입한 것으로 크리스마스 때마다 제 몫을 톡톡히 한다. 키친은 식기 창고, 허브 텃밭, 개인 와인 저장고로 이어져 있으며, 중앙 현관으로도 연결돼 몇 걸음만 옮기면 포도밭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함께 즐기는 공간을 샤토의 가장 중심부에 두고 싶었던 캐롤린의 마음이 느껴진다.

 
5, 6 둥근 천장이 아늑한 느낌을 주는 키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그린&레드로 미리 장식했다.


7 프랑스식 식사에서는 메인 요리 다음에 반드시 2~3가지 치즈가 나온다.

그 아름다운 키친에서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식탁 위에는 오늘의 메뉴가 적힌 카드와 리델사의 비티스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잔, 크리스마스 문양을 앙증맞게 수놓은 냅킨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해리포터’의 해리를 닮은 에마뉘엘 집사는 캐롤린에게 와인 시음을 권했고, 캐롤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 테이블을 돌며 와인을 따랐다. 그러고는 또다시 테이블을 돌며 음식을 적당히 덜어주었다. 그의 손길은 섬세했고, 모든 감각 안테나는 캐롤린과 우리를 향해 있음이 느껴졌다. 세심하게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게. 오늘의 메뉴는 바닷가재와 대하를 넣은 토마토소스 라자냐, 양고기 케이크, 세 가지 치즈, 배를 넣은 크로켕부슈와 초콜릿. 이 음식에 캐롤린은 물랭 드 라 라귄 Moulin de La Lagune 2003, 샤토 라 라귄 2000, 라 뮬 블랑슈 La Mule Blanche 2006을 매치했다. 음식과 와인의 훌륭한 마리아주로 그는 우리에게 그 어떤 식사보다 만족스러운 샤토에서의 점심식사를 선물했다.


1 샤토의 중앙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아하고 정갈하게 세팅된 공간이 손님을 맞는다. 이 분위기는 와인 샤토 라 라귄의 맛과도 일맥상통한다.
2 키친과 연결된 개인용 와인 저장고.



3 이탈리아 유람선에서 구입한 은 소재의 샴페인 쿨러와 잔 세트.
4 샤토 라 라귄은 전통 방식으로 양조와 숙성 과정을 진행한다. 메인 와인인 샤토 라 라귄과 세컨드 와인인 물랭 드 라 라귄, 마드무아젤 L.


승마 실력이 수준급이고, 클래식 카 애호가인 캐롤린은 크리스마스를 보낸 뒤 부모님 소유의 스위스 별장으로 날아가 스키와 등산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장화를 신고 포도밭을 가꿀 것이고, 주말이면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즐길 것이다. 이렇게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서른 살 아가씨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루고 포도밭에서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덧버선 신고 벽난로 앞에 놓인 편안한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예요. 그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와인 한잔 하며 음식을 나누는 것, 그것이 행복이겠지요.”와인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따라서 와인에서는 그 사람이 묻어난다. 입 안에 퍼졌던 와인 맛이 기억나고 캐롤린의 모습이 떠오르며 두 기억이 절묘하게 하나로 겹쳐진다. 어느새 샤토 라 라귄에 캐롤린의 우아함이 퍼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샤토 라 라귄은 1855년에 지정된 그랑 크뤼 클라세 3등급 샤토로 80만㎡에 이르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고, 이 지역에서 가장 완벽한 테루아로 평가받는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프티 베르도 등 이곳에서 재배한 포도는 수확하자마자 손으로 일일이 선별해 좋은 포도만 발효 통에 담아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샤토 라 라귄에서의 하룻밤을 경험하고 싶다면 www.chateau-lalagune.com에서 예약하면 된다. 1박과 저녁・아침 식사를 포함해 1천7백 유로. 주소 33290 Ludon-Medoc-France 전화 33 (0)5 57 88 82 77

 
5 중앙 뜰에서 바라본 샤토 라 라귄. 왼편으로는 새로운 시설을 갖춘 양조장과 숙성실이 있고, 앞뒤로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