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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캠페인 '행복 나누기']콩을 심어 아프가니스탄을 살찌우는 권순영박사 권 박사와 기적의 콩나무
국제적으로 콩비지는 ‘오카라おから’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비지’라고 부른다. 이 땅에 처음으로 콩을 심은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3년 전의 일이다. 30년간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 콩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영양실조에 걸려 종잇장처럼 가볍던 아이들의 볼에 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 미국 네슬레에서 의료 식품 개발 책임자로 일하던 권순영 박사가 아프간에 심은 희망의 씨앗이 이렇게 뿌리내리고 있다.

나의 달란트로 배고픈 땅을 살찌운다면 세계적인 기업에서 인정받는 임원이었던 권순영 박사는 어떤 까닭으로 아프간까지 가서 손에 흙을 묻히며 지내게 된 것일까? “그곳에 봉사하러 간 지인이 전화로 이렇게 알려왔어요. ‘영양실조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달란트가 필요한 때입니다’라고요. 친한 이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두려웠습니다. 외국인들도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가는 곳이니 말이지요.” 2003년 5월, 결국 휴가를 내고 아프간으로 갔다. 그리고 보았다. 암담, 처참, 속수무책…. 실상을 읊기엔 어떤 형용어도 빈곤했다.
“우리네 여자들은 임신을 하면 장차 태어날 아이에 대해 꿈을 품습니다. 누굴 닮았을까, 태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아프간 여성들은 임신하면 두려움을 품습니다. ‘아, 나도 옆집 여자처럼 애 낳다가 죽는 게 아닐까’하고요.” 이 두려움은 열 달 뒤 현실이 된다. 영양실조에 걸린 산모가 그나마 남은 체내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해주느라 골반 뼈의 칼슘이 모조리 빠져나가 골반이 좁아진다. 그래서 아이가 산도를 통과하지 못해 여섯 시간 동안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간다.
출산 중 사망률이 세계 최고인 아프가니스탄. 주원인은 영양실조다. 국가가 집계한 공식 통계만 해도 50명 중 1명의 여성이 출산 중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지역인 아프간 동북부 바닥샨 주의 경우는 출산 도중 사망자가 여성 6명 중 1명꼴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으면 아내와 그 자녀들은 먹고살 길이 없다. 아프간에서 여성들은 2등 시민도 안 되는 지위로, 일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구호 단체의 손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곳은 한국전쟁 직후 우리 어머니들이 식당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버텼던 상황보다도 더 열악하다. 사회 구조가 총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쩌면 정성껏 모아 보낸 구호 물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지도 모른다.

(위) 식품영양학 박사이자 전 미국 네슬레의 의료 식품 개발 책임자인 권순영 박사. 미국에 사는 그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런데 마음은 아프간 ‘콩밭’에 가있는 듯했다.


1, 2 수도 카불에 있는 도그하바드 마을의 비정규 학교에 모인 아이들과 여성들. 부모의 허가하에 일하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글을 배우러 이곳에 온다. NEI는 9백여 명 되는 이들에게 이틀에 한 번 두유와, 콩 분말을 넣은 난을 급식 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려면 사회 구조나 전쟁의 비운을 통탄할 여유도 없었다. 권순영 박사는 우선 원점으로 돌아갔다. 영양학 교과서 1장. “영양실조는 결국 단백질 결핍의 문제입니다. 콩, 그중 대두의 34%는 단백질이지요. 이곳의 기아를 해결할 대안은 콩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국토의 95%가 농토 아닌가. 또 다른 단백질 덩어리인 육류, 우유, 계란이 너무 비싼 이곳에서 대두만이 희망이었다. 곧바로 일을 추진했다. 2년간 이곳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한 재배법을 찾다가 드디어 2005년, 아프간에서 대두 재배가 성공했다.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국제 영양과 교육 협회(Nutrition and Education International, NEI)를 조직했다. 기업의 후원도 없었다. 지인들의 모금 활동으로 콩 씨앗을 사다가 아프간 전역에 전달했다. “예닐곱 명의 협회 회원들이 그 넓은 땅을 전부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농축산부, 공중보건부, 여성복지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2006년과 2007년에 1천 톤, 가뭄이 심했던 2008년에 8백 톤을 생산했고 내년에는 6천 톤의 콩 생산을 앞두고 있다.
콩이 수확되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국민의 영양 증진은 교육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 콩을 심어야 하는지, 콩의 영양학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일일이 교육시킵니다.” 두유 같은 가공 산업을 발달시키는 일, 콩을 재배하지 못하는 지역으로 콩 분말을 보급하는 일도 추진했다. 그리고 콩 한 쪽도 나눠 먹을 방법을 고안했다. “콩 씨앗 1포대를 심으면 40포대의 콩이 수확됩니다. 그중 1포대를 NEI에 되돌려주도록 합니다. 이렇게 모은 콩으로 우리는 두유를 만들어 배급하지요. 또한 가족들이 먹고도 콩이 남으면 우리가 도로 사주기도 합니다.” 특히 임산부와 수유기 여성들의 영양 섭취에 주력한다. 콩 분말을 섞은 빵, 두유 등을 급식하도록 지원하는데, 이 일은 여성복지부가 맡고 있다. “급식을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나면 앙상했던 아이들의 볼이 발그레해집니다.” 콩 분말을 10% 넣은 빵은 100% 밀가루 빵을 먹을 때보다 단백질 섭취량이 두 배가 넘는다. 아프간 식문화의 작고 강한 혁명이다.


3 카불의 산악 지대에 들어선 달동네. 우리네 풍경과 닮았다.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찾아 먼 시골에서 상경한 아프간 사람들이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살아간다.

“마약만큼 수익이 나는 작물인가요?” 권순영 박사의 프로젝트가 현재는 정부뿐 아니라 입소문을 통해 전 국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3년 전 그가 농축산부의 도움으로 콩 재배를 권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의외의 난항이 많았다.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마약 재배보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가난한 집에서 8~10명이나 되는 애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최고의 수익을 내는 마약 재배가 성행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말도 들렸다. “콩은 생전 본 적이 없다. 실패해서 1년 굶으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목소리도 들렸다. “일단 자식들을 좀 먹여야 하지 않겠소. 식량을 재배하도록 합시다.” 콩 재배도 장기적으로는 수익이 나는 산업임을 설명해, 결국 시범 재배에 들어갔다.


1, 2 아프간에서 수확한 대두를 분말로 만든 뒤, 이 분말을 섞어서 이들의 주식인 난(화덕에 구운 넓적한 밀가루 빵)을 만든다.



“아프간은 민족적 자긍심이 아주 높은 나라입니다. 타국의 원조를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수치스러움과 부담을 느끼지요. 전쟁 전처럼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다가갔습니다. ‘우리도 한국전쟁을 경험해서 헐벗고 굶주리다가 죽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그 경험을 안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경계심을 풀었습니다.”

작은 정성으로 기적의 콩나무를 키운다 왜 콩 프로젝트가 아프간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곳의 수석 경제 고문인 자킬리월 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많은 선진 국가들이 우리를 도우러 와서는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모델’이라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대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권 박사는 맨몸으로 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기르지도, 먹어보지도 않은 콩을 경작하다니요. 그런데 그는 우리와 똑같은 심정으로 고심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창조했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얻었습니다.”


3, 5 아프간은 한 가정에 아이들이 최소 네 명, 많으면 열 명 정도 된다.


4 권순영 박사와 NEI 회원들은 난에 콩 분말을 섞어 굽도록 빵집 주인들을 계몽하고 있다. 콩 분말이 섞인 구수한 난이 일반 난보다 훨씬 더 인기있다. 어느 미망인이 운영하는 빵집 앞에서 콩 분말이 섞인 난의 시판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NEI의 아프간 디렉터인 강길상 씨, 권순영 박사, 아프간 보건복지부 관료 하룬 라졸리 씨.

권순영 박사는 콩 프로젝트에 더 전념하기 위해 지난해 조기 은퇴를 했다. 가뭇하게 그을린 얼굴로 그는 푸르게 웃는다. “가족처럼 귀한 아프간 민족을 존경하고 존중할 뿐입니다. 잘 살 수 있음에도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거든요. 두 발로 일어나도록 함께 고민했습니다. 점차 마을 이장, 농부들, 아녀자들 모두 우리를 환영했습니다. 환영에 그치지 않고 동반자가 되어 일하는 모습이 제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우화가 떠오른다. 마법의 콩을 심었더니 하늘을 향해 거대한 콩나무가 뻗어간다. 두려움을 잊고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그 끝엔 거인이, 아니 건강과 희망이 있다.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아프간 민족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정성은 기적의 콩나무를 더욱 튼튼히 키울 수 있다.




6 아프간에서 두유 생산을 총괄하는 변영수 씨. 피부 질환이 심한 아이들이 많아 연고를 상비하고 다닌다.

권순영 박사와 NEI를 도우려면
올해에는 1만 명의 아프간 농민들이 콩 씨앗을 받고자 NEI에 신청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25%의 농민들에게만 씨앗을 나눠주었다. NEI는 기업의 후원 없이 개인적인 모금에 의존해 콩을 재배하고 있다.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프간을 푸른 땅으로 만들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여성과 아이들을 살찌우는 콩을 재배하도록 작은 정성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콩 씨앗 보내기 한 가족을 여섯 명으로 봤을 때 한 가족이 1년간 필요한 콩은 약 300kg. 이는7.5kg의 콩 씨앗(운송비 포함해 약 2만 5천 원)으로 수확할 수 있다. 2만 5천 원으로 아프가니스탄 한 가족을 1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이렇게 재배한 콩에서 콩 씨앗을 얻어 평생 경작할 수 있으니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셈이다.
두유·콩 분말 생산 시설 지원 기계 한 대만 들여놓으면 3천 명이 하루 먹을 분량의 두유를 매일 생산할 수 있다. 콩 분말은 한 번 만들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멀리까지 유통시킬 수 있다. 1천5백만 원이면 콩 분말 공장 한 곳을 개설할 수 있다. 권순영 박사는 “콩을 원료로 하는 기업에서 유휴 설비를 기증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후원금 모금 사단법인 한국기아대책기구를 통해 후원금을 모집한다. NEI를 위한 후원 계좌(하나은행 353-910002-51604, 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로 송금한다.
문의 NEI 코리아 신치호 회장(02- 761-8601, www.neifoundation.org)

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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