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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시민의 품에 작품을 전시하다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대중이 쉽게 감상할 수 없는 대규모 작품을 구입해 많은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전시한 기업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예술에 투자하고 있다. 귀뚜라미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공공 미술품은 시민들의 호응이 좋은 작품으로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만든 대표적인 예다.


1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에 있는 귀뚜라미그룹 사옥 앞에 설치한 조너선 보롭스키의 조각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2 보롭스키의 작품 ‘Human Structures’. 



3 중국 베이징의 올림픽공원에 설치한 거대한 ‘People Tower’의 작은 버전으로 ‘표 갤러리 서울’에 전시되어 있다.
4 작품을 설치하러 한국에 내한한 보롭스키.


귀뚜라미그룹의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서울 강서구청 사거리의 귀뚜라미그룹 사옥 앞. 얼마 전부터 길을 건너는 사람들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가파르게 솟은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에 일곱 명의 사람이 줄지어 걷는 모양의 조각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공공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 Jonathan Borofsky의 작품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Walking to the Sky’이다. 30m 높이의 거대한 규모 때문에 전체를 관망하려면 반드시 하늘을 보게 되는 재미난 조각품이다.

귀뚜라미문화재단이 지난 10월 29일 설치한 이 작품의 명패에는 ‘예술과 공학의 만남’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대형 설치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고난도의 공학 기술이 밑받침되어야 했던 것이다. 귀뚜라미그룹은 “40년 동안 보일러, 에어컨 등을 생산해온 기업으로 공학도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작품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설치하기 위해 내한한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를 만나 작품 설명을 들었다. 그는 광화문 흥국생명 앞의 ‘망치질하는 사람’과 국립현대미술관의 ‘노래하는 사람’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다. “서류 가방을 든 여인, 노인, 어린아이 등 기둥 위에서 걷고 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은 모든 인류의 상징입니다. 직업도, 피부색도, 나이도 다르지만 한뜻으로 미지의 미래 세계를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어릴 적 고갱의 어느 작품에 감명을 받았다는 보롭스키는 그 작품만큼이나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요즘 그의 화두이기도 한 이 글귀가 작품에도 녹아 있다. 오랫동안 세계 각 지역에서 공공 조각 작업을 해온 그는 공공 미술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다. “공공 미술품은 갤러리에 전시하는 작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더 오랜 시간 노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인류에 두루 유익한 작품이어야 하지요.” 그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하게, 그러면서도 희망에 찬 메시지를 담아 작품을 만든다.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재미난 사진이 연출되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카메라를 꺼낸다. 하늘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 인물상 하나에 감정 이입도 해본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은 연일 불황, 전쟁, 질병 등으로 암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일 희망을 기억하며 살아가라는 응원가가 담긴 작품이다.

‘표 갤러리 서울’은 조너선 보롭스키의 다른 조각 작품 및 드로잉 작품을 12월 31일까지 전시한다. 문의 02-543-7337


1 광화문에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뒤쪽에 설치한 LED 갤러리는 사옥 준공을 기념하기 위한 한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콘텐츠를 교체해가며 영원히 상영된다. 
2 LED 갤러리를 디자인한 이정교 교수.



3, 4 도예가 신상호 씨의 아트 타일로 화려하게 마감한 건물 외벽.

금호아시아나그룹의 ‘LED 갤러리’
하늘이 가뭇해지는 저녁 6시 정각,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신사옥 뒷면에 반짝이는 그림이 흐르기 시작한다. ‘SEOUL’의 알파벳에 단청 색을 입힌 이미지, 부채 패턴 위에서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이미지, 한글 훈민정음 캘리그래피…. 시시각각 색과 형태가 바뀌는 디지털 미디어 캔버스로, 이름은 ‘LED 갤러리’다. 폭 23m, 높이 91.9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가 행인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덕수궁과 시청 방면에서 보면 신선한 서울 야경이 연출된다.

‘뒷면이 더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자 하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이 화려한 LED 갤러리는 건물 뒤쪽에 설치했다. 아직은 생소한 디지털 미디어 작품을 도심 한복판에, 그것도 대규모로 전시한 것은 참 과감한 시도다. 고 박성용 회장 재임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 등 다방면의 문화와 예술 분야를 대대적으로 후원하며 메세나 활동을 실천해온 기업에서 나올 수 있는 혁신적인 발상이 아닐까. 금호아시아나그룹 디자인 광고팀장 김범서 씨는 “변화하는 화려한 영상 콘텐츠의 키워드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룹의 경영 철학과 기업 문화와도 일맥상통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아름다움을 작품에 구현한 작가는 홍익대학교 이정교 교수. “자세히 보면 건물의 유리 외벽과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 통로 사이에 막대 형태의 LED 소자 6만9천 개를 붙여서 만든 작품입니다.” 이렇듯 세로로 긴 LED 작품은 세계 최초라고.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분들까지 시민 누구나 보게 될 랜드마크 같은 캔버스에 어떤 콘텐츠를 담았을까? 이정교 교수는 “현대적·공간적·전통적(한국적)·예술적·미래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도 호응할 수 있는 현대적인 이미지는 물론 나이 든 세대가 공감할 전통적인 이미지도 두루 아울렀다고.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 네 시간씩 상영되는 만큼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특히 종이비행기가 ‘휭~’ 날아다니는 이미지는 어린아이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총 26가지 콘텐츠가 상영되고 있는데 그중 기업 광고는 전혀 없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이 밖에 신사옥의 건축 외장재로 도예가 신상호 씨의 아트 타일 작품 ‘Fired Painting(구운 그림)’을 쓰고, 로비에는 설치 미술가 존 폴 필립의 작품을 전시해 건물 전체가 마치 갤러리 같다. 앞으로 한 기업의 사무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광화문의 창의적인 문화 명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LED 갤러리는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뒤쪽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신문로의 남쪽 방향인 남산3호터널, 덕수궁, 시청 쪽에서 멋진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www.kumhoasiana.co.kr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