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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이 나를 치유한다]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 손혜원 씨 컬렉션은 소유가 아닌 나눔의 행복이다
중국에는 ‘책에 미치면 사랑하는 첩과도 바꾼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 자신도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일평생 명화를 모으는 데 재산을 탕진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수집의 대상을 물건으로 바라보면, 이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핍한 삶의 어려움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주는 만족이 더 컸다면 렘브란트는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수집을 생각하면 사물을 떠올리지만 정작 그 사물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수집은 이성보다 감성에 이끌리는 행위로, 객관적인 잣대로 가치와 소용과 합리성을 이야기하면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사물과 소통하는 ‘행복한’ 수집가들을 만났습니다. 다양한 수집품과 함께 그들이 내보여준, 수집을 통해 얻은 마음의 풍요와 열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만나보았습니다.
브랜드 네이밍과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크로스포인트 대표 손혜원 씨. 힐스테이트, 처음처럼, 트롬, 위니아, 엑스캔버스 등 굵직굵직한 대형 브랜드를 탄생시킨 그는 자신을 모더니스트라 말한다. 하는 일이 그러하거니와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모더니스트 손혜원 씨가 자개장을 수집한다고 하면 모두 의외라는 반응이다. 최첨단의 일선에서 오늘의 감성과 유행을 선도하는 그가 심취해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 공예품인 자개장이라니! 그가 자개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무형문화재 송방웅 선생의 작품을 만나면서다. 자그마한 자개함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송방웅 선생에게 정중히 구입을 의뢰했지만 ‘이것은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개를 알게 된 처음 마음과 다름없는 그 자개함을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하던 중 비로소 자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자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장인의 혼이 전해진다. 그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울린 것은 단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장인의 혼이었다.
대부분의 수집가가 그러하듯 처음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하디귀한 물건이 내 것이 되는 것이 너무나 황홀했다. 그렇게 개인적인 만족감으로 시작한 수집은 한 점 두 점 자개장을 모으면서, 점점 명맥을 잃고 생활 속에서 사라져가는 자개 공예를 보호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했다.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이 생긴다지만 그는 불어나는 자개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많은 것을 이고 지고 혼자 즐기면 무슨 소용인가?’ 세상에는 혼자 즐기는 기쁨도 있지만 함께 나누어서 더 커지는 기쁨도 있다. 손혜원 씨는 자개장 수집을 통해 함께 나누는 행복을 계획하고 있다. 바로 자개 박물관을 세우는 일이다.

(왼쪽) 촬영 중 막 도착한 이 자개장은 맨해튼의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것이다. 3년 동안 열 번도 넘게 찾아온 그에게 주인이 ‘한국으로 가져간다’는 조건 하에 이를 내주었다.18세기 전후 조선 궁중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장은 적칠장으로 원래 붉은색이었다. 어떤 미국인이 수십 년 전에 덧칠한 검은색 도료가 떨어져 나가면서 곳곳에서 붉은색이 드러나고 있다.


1 음일천 선생의 화각 공예경대.
2 앤티크 자개함.
3 맨위 자개함이 바로 손혜원 씨를 자개에 눈뜨게 해준 송방웅 선생의 작품. 붉은색 함은 손대현 선생의 작품.


그가 자개장을 수집한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귀한 것을 내주기도 하고, 물건도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야 하는 법이라며 좋은 작품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자개장을 모으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그에게 장을 하나 선사했다. 그것은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장이었다. 민비 생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귀한 물건을 선뜻 내준 것이다. 처음 이 장을 받았을 때 맨 아래 칸이 잠겨 있었다. 친구는 1년 후 열쇠를 찾아다 주었는데 그 안에는 버선이 세 켤레나 들어 있었다. 다른 친구 왈, 버선은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부터 엄마가 딸에게도 버선은 다 주는 것이 아니라 했다고. 자개장을 선물한 친구는 친정어머니가 장 안에 버선을 꽁꽁 숨겨두고 그 장을 물려준 연유를 몰랐던 것이다.

수집을 하다 보면 마음은 설레고 머리는 고민에 빠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손혜원 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을 뉴욕 맨해튼에서 맞았다. 맨해튼 27번가의 앤티크 숍에서 맞닥뜨린 자개장 하나. 그 웅장함이나 금속 장식에 새겨진 용 문양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이는 분명 조선시대 궁에서 사용한 물건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떠나 그는 이 자개장을 국내에 들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 이 장을 소개했지만 사람들은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맨해튼을 방문할 때마다 그 앤티크 숍을 찾았다. 지난 3년간 자개장을 보려고 그곳을 찾은 것이 열 번이 넘는다. 3년간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고 맨해튼 한복판에서 외롭게 자리하고 있던 자개장을 서울로 들여오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바로 자개 박물관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작품을 수집함으로써 전통 공예에 일생을 바친 장인들을 정신적・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고, 박물관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전통 자개 공예의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손혜원 씨. 언젠가 그가 세상과 함께 나누게 될 자개 박물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오른쪽)  맨 앞의 것은 손혜원 씨가 자개장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내준 것. 친구의 친정
어머니가 버선장으로 사용하다 딸에게 물려준 것으로, 민비 생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쪽 왼편의 자개장은 송방웅 선생 작품, 오른쪽은 이불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19세기 말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서재 한쪽 이탈리아 가구와 멋스럽게 어우러진 자개상은 무형문화재 송방웅 선생 작품이다.
2, 3 손혜원 씨가 수집한 화각장으로 모두 음일천 선생의 작품이다. 화각은 얇게 자른 쇠뿔에 화려하게 그림을 그려 장식한 것. 쇠뿔과 나무가 모두 숨을 쉬는 소재라 아무리 주의해도 세월이 지나면 쇠뿔이 들뜨는 현상이 생긴다. 원형 보존이 어려운 만큼 보관 상태가 좋은 옛것을 만나기 힘들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