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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는 가정의 최고 경영자]다둥이 가족의 행복 만들기 가지 많은 나무에 열매도 많다
세계 2위의 저출산 국가에서 세 자녀 이상을 둔 ‘다둥이 가족’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의 소중함, 동반자로서의 형제애 등이 그것이다.다둥이 가족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보릿고개 시절에도 집집마다 대여섯 명은 아기를 낳았던 것에 비하면 세월이 많아 달라졌다. 젊은이들이 아기를 더 낳지 않으려고 하는 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 젊은 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 현모양처 역할만을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여자와 남자, 젊은이와 노인, 가정과 기업, 사회와 국가 모두가 한팀이 되어 아기를 한맘으로 길러야 한다. 노인 숫자가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수보다 많아지면 어린 세대가 져야 할 짐이 너무나 무겁다.
1976년 내가 셋째 딸을 낳았을 때 모두 나보고 야만인이라고 했다. “일하는 여자가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아 기르겠다고 하니 정신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놀림도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엄마가 학교에 출근한 후 이 세 아이들은 집에서 어울려 노느라 엄마가 집에 없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놀이 친구가 집에 있기 때문에 목을 빼고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관찰한 후부터 난 제자들이 박사 과정에 입학하려 하거나 취업을 원할 경우에도 반드시 두 명 정도 낳는 것이 아이를 위해 좋다고 설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직장을 이유로 아이를 한 명만 기른 선후배들이 자녀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두 명 이상 낳는 것이 좋겠다’며 동의해주었다. 왜냐하면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이는 원천적인 외로움을 느끼며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최근 내가 세 딸에게 “엄마가 일을 해서 너희들 외롭고 섭섭했지?” 했더니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 적 없는데요” 했다. 직장 일을 계속하고 싶은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최소 두 명은 낳아 길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형제자매에게만 좋은 것일까? 나는 세 아이를 기르며 영유아기를 다시 살았다. 어린 시절에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해보며 즐거움을 느꼈고, 내 심리적 상태의 근원을 알게 됐으며, 내 인성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하게 됐다. 노처녀로, 또는 결혼했더라도 무자녀로 살았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인격 변화의 기회도 가져보았다. 아이들은 나를 비추는 반사경 같은 존재여서 내 말이나 행동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퇴직한 후에는 아이를 셋 낳기 잘했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일과 연결 지어 만난 이들은 일이 끝나면 떠나가거나 관심이 멀어졌지만 자식들은 더욱 가깝고 배려하며 즐거운 경험을 함께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갈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찡하게 다가오는 때가 많다. 아이 기르는 게 힘들어서 낳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소중한 것은 힘들게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기를 위해 어른들이 희생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아기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행동을 관찰하기만 하면 아기를 기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재미있기도 하다. 엄마가 ‘머리카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기억했던 두 살 된 아이가 아빠의 다리에 난 털을 보고 ‘아빠 다리카락’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웃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아기가 자라 말이 통하는 관계가 되면 우리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훨씬 많
은 것을 아이들은 우리에게 준다.

사회적 차원, 특히 기업은 가정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며, 집안일을 서로 나누어 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기업 문화는 전혀 가정 친화적이지 못하다. 엄마 아빠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또 회식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기업 전체가 늦어도 저녁 일곱 시까지는 엄마 아빠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문화로 바뀐다면 여자들도 아기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생활을 중요시하는 유럽에서는 90% 이상의 기업이 엄마 아빠를 집으로 일찍 돌려보내기 때문에 저녁 여섯 시나 일곱 시에는 가족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정을 나눈다. 모든 상점도 오후 다섯 시면 문을 닫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는 늦게까지 연다. 가정이나 나라나 돈은 많이 벌어도 아이들을 잘못 키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랫동안 유아교육 현장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우리 정부도 하루 빨리 가정 친화적 정책을 펴라고 제안하고 싶다. 젊은이들이 출산과 양육을 걱정하지 않도록 만 6세까지의 보육과 유치원 교육은 전면 무상으로 해야 한다. 지금은 차상위 계층의 저소득층 중심으로 보육비나 무상 교육비를 지원하나 전국의 만 0세부터 6세 이하의 모든 유아로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종교개혁가 루터는 아무리 성주가 재물을 많이 모은다 해도 그것을 지킬 인재를 기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이 나라가 번영하려면, 각 가정이 행복하려면 영유아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엄마들이 안심하고 두세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이원영(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