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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전략_남편과 함께 보는 페이지 "마누라님, 내게 여행은 고행이라오!"
부부로 살 만큼 산 남편들은 가족의 품을 탈출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무척 크다. 하지만 많은 남편들은 ‘함께 떠나야 하는’ 가장이다. 여기서 남편의 여행 기피증이 시작된다. 평소에 부족했던 것까지 만회해야 하는 수고로운 여행, 그것이 문제로다.

“두 번 다시 당신하고 여행 가나 봐라!”아내의 볼멘소리다. 가족 여행의 끝은 늘 이렇다. 코스도 내 마음대로 정하고, 바꾸는 건 기본이고, 아내가 어디를 정하면 남편은 늘 결점만 찾아내서 불평을 늘어놓고, 특산물을 먹는 재미도 여행의 묘미일진대 돈 아깝다고 만날 먹는 된장찌개나 고르는 걸 보면 남자 맞는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가족을 위한 자리라면 한턱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다 그놈의 버럭 성질 하고는! 아이들이 어릴 땐 그나마 참아주었는데 어느샌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불쌍한 듯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는 날이면 아내는 부끄러움까지 올라와 분노가 더 쌓인다. 도대체 이 남편, 왜 그러는 걸까 

지금 당장 하고파 남자들의 감정 곡선은 급상승했다가 추락한다. 무슨 정보를 얻으면 곧장 시작하고픈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특히 여행과 같은 일이 결정되면 지금 당장 출발해야 직성이 풀리고, 출발 전 합리적인 아내가 준비물이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동안을 기다리지 못한다. 감정 곡선이 정점에 있으므로 아내를 배려하는 것도 못할뿐더러 최소한의 말조차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때 아내가 ‘어드바이스’해보지만 남편은 ‘어험, 어디서!’로 반응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남자들의 고질병이다. 남자의 DNA는 여자를 수직관계의 하위로 두고 있기에 아내가 아무리 현명한 어드바이스를 해도 무시한다. 그 내용이 탁월할수록, 그런 생각을 못해내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 더 크게 화를 내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그런 남편도 다른 여자에겐 경청과 공감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탁월한 상담사가 된다. ‘남편’이란 말은 ‘남의 편’ ‘남들에게는 편하게 해주는 사람’ ‘남들은 편안해하는 사람’과 동의어 같다. 현명한 아내라면 이것을 역이용해서 제3자의 힘을 끌어들여야 한다. 여행지의 음식점, 호텔에서 그곳 사람들을 매수하라. 화장실 간다며 살짝 나와 현지인에게 여행지와 추천 음식을 말해달라고 부탁하라. 서로에게 이득이다. 남편의 버럭 성질은? 아내에게만 작동하지 제3자에겐 작동하지 않으니 효과만점이다.

어린 왕자가 되고파 여행이란 심리학적으로 어린이 자아(free child)가 발동하는 때다. 어린아이란 잘 못 참고 금세 지루해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졸라대고 보채는 존재다. 영락없는 어린 왕자다. 그래서 남편은 여행이란 말만 들어도 흥분하고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며 조금이라도 굼뜬 행동을 보이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성질을 낸다. 준비물이 많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말만 나오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착각한다. 단무지형이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만 알고.’ 여행에선 남편의 어린 자아를 발동시켜야 한다. 소풍 온 어린아이처럼 놀게 하라. 각종 이벤트에 참가하고, 나도 함께 놀아줄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다. 혹시, 여행이라는 것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남편이라면 돈 때문에 바들바들 떨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럴 때는 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실제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월 몇만 원씩 따로 저축했다가 여행 경비로 쓰는 것이다. 경비를 준비한 내력과 가정경제에 손실을 초래하는 지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 안정감을 느낀 남편의 화를 잠재울 수 있다. 그 보상은 풍족한 먹을거리, 놀거리다.

영웅이 되고파 남자에게는 특별한 병이 있다. ‘해결사 신드롬(메시아 신드롬)’이라고 하는 병이다.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고질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특별한 장식품이었던 내비게이션은 이제 일반화되어 허름한 차에도 장착되어 있다. 한 남편은 아직도 그 기계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자칭 ‘인간 내비게이션’이니까. 그래도 그 ‘인간 내비게이션’이 지난해 가을 향락객으로 미어터지는 설악산에서 돌아오는 샛길을 안내해주더니 일약 영웅이 되었다. 자신이 영웅이 되는 자리니 기사 옆에서 몇 시간째 꼼짝도 안 하고 길안내를 했다. 나도 그의 아내도 혀를 둘렀다. 운전할 때, 남자들은 길 묻는 것을 무능력과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절대 길을 묻지 않는다. 아내들이여, “휴게소에 들러서 길 물어보자”라고 하지 말 것. 주목적이 길을 묻는 것이므로 남편은 화를 낸다. “휴게소에 들러서 음료수 사 올게”라고 하고 오는 길에 길을 물어보겠다고 하라. 주목적이 음료수이므로 화를 내는 대신 웃음을 띨 것이다. 현대판 조삼모사다. 길 묻지 않는 남편 버릇 고치겠다고 덤비지 마라.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7일이면 갈 가나안을 못 가고 광야에서 왜 40년이나 방황했는지 아는가? 지도자들이 죄다 남자들이어서 길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이병준(가족상담 전문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