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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전략_남편에게 보여주는 페이지 여보, 우린 민주주의적 여행을 원해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자스민처럼, 여행을 떠났다가 부부싸움 끝에 사막 한가운데라도 내려버리고 싶은 적 있었나? 가족 낙원을 경험해야 할 여행에서 그들은 왜 싸우는가? 행복한 여행을 위한 해법을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에게 들어봤다.

내가 산에 오르게 된 것은 남편의 권유에 의해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역할이 바뀌었다. “여보, 등산 좀 갑시다” 하면 “다시 내려올 산을 뭐 하러 올라가나!” 한다. 십수 년 전엔 아이젠을 달고 눈밭을 헤치면서까지 열심이었는데, 산에서 취사가 금지된 후로 남편은 산에 가는 취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남편 중심적인 사고도 버리고, 건강을 위해 함께 등산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각자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가 취미를 함께하는 건, 특히 여행을 즐기는 건 성공적인 부부생활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여행만큼 대화의 폭을 넓혀주는 취미 활동도 없으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복잡한 일상사와 가정 문제에 대한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환경을 체험하는 가족 여행이야말로 가족 낙원을 경험하는 기회이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한 여행이 떠나기 전부터 부부싸움의 빌미가 되는 경우도 많다. 목적지를 정하는 일에서 여행용품 챙기기, 시댁과 친정 중 어느 쪽 부모님을 모시고 갈 것인지, 여행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숙박과 식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등. 이 모두가 부부간의 갈등을 야기하는 주제로 등장한다. 이를 예방하려면 아내의 불만을 사전에 줄이고자 하는 남편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남편이 앞장서서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도록 주선하면 좋을 것 같다. 회의의 중요한 주제는 여행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일이다. 회의할 때도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보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족이 각각의 여행계획서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통일된 계획서로 만들어보자. 계획서에 따라 제반 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된다.

가족 여행단의 총감독이 되라 여행을 계획할 때 아내는 교향악단의 지휘자 역할을 하면 된다. 가족 개개인에게 역할을 분담하고 책임을 완수해가는 과정을 점검하고 종합하는 역할, 이를테면 가족 여행단의 총감독이 되는 것이다. 이는 여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아내와 엄마에게 맡기고 재미와 열매만 챙기려는 가족들의 욕심을 사전에 차단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평소 무관심했던 가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살림살이에 대한 아내의 애로 사항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여행용품을 챙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떠날 때 바쁜 것을 핑계로 여행 가방을 챙겨주지 못했다. 엄마가 돌봐주지 않으니 자신이 모든 것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아이는 가족 여행에서도 자기 짐은 알아서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스스로 짐을 챙겼으니 돌아올 때도 잃어버린 물건 없이 챙겨서 돌아온다. 다른 아이들이 버린 물건까지.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엄마의 불성실함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줄 하는 아이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 남편은 예약 사항 및 여권 챙기기 등 구체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마련인데, 엄마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서 역할을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자녀들은 비상약 챙기기 및 가족 오락 프로그램 만들기, 식단은 전 가족이 함께 꾸미는 등의 일은 가족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고, 엄마가 여행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가족들은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여행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할 것이다.

돈 안 드는 아내표 귀족 여행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무조건적인 돌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이 배우고 익히는 교감의 시간이다. 이곳저곳을 다녀왔다는 자랑거리를 만들거나 명품을 쇼핑하는 것이 여행의 주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왜곡된 여행 문화가 부부간의 갈등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내들은 경제적인 여건으로 쇼핑을 마음껏 하지 못할 경우 남편을 원망하기도 한다. 여행은 마음에 영양분을 주기 위한 삶의 이벤트이지 물질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회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여행 자체가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머무는 편안한 곳에 자신을 맡기고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안정을 찾는 것이 ‘명품 여행’ 또는 ‘귀족 여행’이 아닐까. 이 아내표 귀족 여행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서 좋다.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남편과 아이들만 있으면 만사 해결이다. 가족과 부부가 평소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면서 사고를 전환하고 창조력을 일깨워 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여행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즐겨 보는 방송 중에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교육 선진국의 대안학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다. 방송을 보면서 저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게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면 만사 제치고서라도 그 대안학교로 가족 모두가 체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나이로 볼 때 그런 의미와 권리가 상실되었으니 서글픈 대목이다.

김용숙(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대표),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