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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전시] 사진가 구본창 씨가 안내하는 대구사진비엔날레 2008 어제를 꿈꾸고 내일을 기억하는 사진

<동북아시아 100년>전 중 우리나라를 기록한 사진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익숙하고도 낯설다. 
(위) 독일 헤어초크 재단이 소장한 서울 남대문로의 사진.


“켜켜이 쌓인 기와지붕들을 보세요. 날이 개면 사라져버릴 구름 같습니다. 1백여 년 전 서울 남대문로 일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흑백 사진이지만 총천연색 사진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음에도 이 사진을 보고 가슴 깊이 애틋하다면 여전히 우리의 혈관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사진가 구본창 씨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고르더니 촉촉한 음성으로 말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내로라하는 작품들과 겨루는 그를 울린 작품은 한 장의 흑백 사진이었다.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총디렉팅하며 오랜만에 ‘큐레이터 구본창’으로 나선 그가 선보일 수백여 점의 사진 중 한 작품이기도 하다.
구본창 씨 하면 대체로 청아한 달항아리 시리즈를 낸 ‘사진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독일 유학 이후 우리나라에서 굵직한 사진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이기도 했다. 많은 기획 중 한국 사진사에서 묻힐 뻔했던 사진가 정해창 씨의 작품을 우리 앞에 멋지게 귀환시켰던 전시나 우리나라 사진가의 작품으로 구성한 <컨템포러리 코리안 포토그래퍼스> 전시를 해외에 소개했던 프로젝트는 사진계에 길이 남을 것이다.

1백 년 전 아시아의 흔적을 더듬어야 하는 이유 올해로 2회를 맞이하는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총감독 자리를 제의받고부터 개인 작업은 거의 접고 전시 기획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10월 31일 개막이 임박했는데도 여전히 ‘국제적으로’ 바쁜 기운이 느껴지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크게 보면 굵직한 전시 다섯 개가 있는 셈입니다. 그중 ‘주제전’으로는 한국·중국·대만·일본의 현대 작가 39명의 작품 3백여 점을 전시하는 <내일의 기억>전, 그리고 19세기 사진 3백50여 점을 모은 <동북아시아 100년>전이 있지요. 이 밖에 특별전으로는 <변해가는 북한 풍경>전, 신세대 작가들의 <공간유영>전,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보석 같은 작가들을 모은 <숨겨진 4인>전 등이 있습니다.”

그중 구본창 씨가 <행복이 가득한 집> 독자에게 1순위로 추천하는 전시는 <동북아시아 100년>전이다. 그가 직접 큐레이터 박영미 씨와 함께 기획한 전시로, 1백여 년 전 서울 시내를 담은 사진을 비롯해 한국, 중국, 일본의 19세기 사진 중 수준 높은 작품을 모은 자리다. 미국의 클라크 우스윅 컬렉션, 프랑스 기메 박물관, 독일 헤어초크 재단, 호주의 조지 로제, 스위스의 미숑 21 컬렉션, 한미사진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류은규 컬렉션 등 여러 곳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퀄리티 높은 앤티크 사진 수집으로 유명한 독일 헤어초크 재단(건축가 헤어초크 드 뮈론의 형제가 운영하는 재단)의 작품은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동북아시아 100년>전은 단지 오래되어 귀한 사진을 모았기 때문이 아닌, 한·중·일 삼국의 사진을 한데 전시했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1백여 년 전에는 삼국의 역사가 파란만장했을 뿐 아니라 쳇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지요. 당시는 정치·경제·문화적 혁명기였는데, 중국이 급성장한 요즘도 새로운 혁명기에 접어들었고요. 그래서 지금 삼국의 1백 년 전 모습을 사진으로 돌아보는 것이 더욱 의미 있어요.”
대표작들을 살펴보자. 중국의 풍경은 한눈에 ‘와, 그림 같다!’는 탄성이 나온다. 먼 산 앞으로 펼쳐진 끝없는 평원 한가운데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장군 석상이 서 있는 풍경이나 바다처럼 넓은 호수 한가운데 솟은 건축물은 특히 아찔하다. 거대한 스케일과 대륙적 풍모가 느껴진다. 일본 풍경 속 문화와 예술 풍경은 가히 당시 유럽 예술계에 돌풍을 일으켰을 법하게 세련되고 정교하다. 무사든 게이샤든 완벽을 추구하는 패셔너블한 의상을 갖추고 있고, 사진 속 정황이나 포즈가 의도되어 부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신비롭다. 

1 여인들의 머리채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작품.


1904년 이전 규방의 여성을 담은 작품으로 기메 박물관 소장. 
3 사진가 펠리스 비토가 1971년 한강 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의 클라크 우스윅 컬렉션.


당시 우리나라의 풍경이 궁금하다. “순박한 정서가 묻어납니다. 담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감성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시 한국의 풍경은 유럽에서 발간한 동양에 관한 사진 화보의 귀퉁이에 작은 사진 몇 컷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 해외의 유수 사진 컬렉션을 통해 구한 19세기 우리 사진은 더욱 각별하다.

사진가는 과거를 꿈꾸고 미래를 기억한다 구본창 씨는 당시의 이러한 풍경을 생생한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1백여 년 전의 시대상과 사진가들의 감성을 지금 보여주지 못하면, 요즘 발표되는 우리나라 현대 사진 작품들도 역사성을 획득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조망한 사진 전시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사진에 담긴 희귀한 풍물로 흥미를 끄는 형식이 대부분이었고, 저 같은 사진가의 눈으로 기획한 전시는 거의 없었습니다. 프린트 퀄리티도 썩 좋지 않았고요.”

초등학생도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만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사진 전시회는 어떠해야 할까? “비주얼 이미지가 친숙해진 요즘, 사진은 이제 쉽고 대중적인 소통 방식입니다. 그러니 사진 전시회는 이 시대에 축제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요즘은 사진 작품에서 콘셉트가 중요한데, 그럴수록 사진이 출발한 계기인 기록성과 역사성을 조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기록의 기능과 역사적 의미를 잘 살리는 사진이란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유럽처럼 사진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1백60여 년간의 컬렉션이 단단하게 축적되었고, 그 토대 위에서 컨셉추얼한 사진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진 박물관이 얼마 전 처음 생겼을 정도로 토대가 미비하다. 그래서 바로 지금, 구본창 씨는 한국의 비주얼 아트에서 역사성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1 <동북아시아 100년>전에 전시되는 중국의 농부 사진. 미국 클라크 우스윅 컬렉션의 작품.


2 <동북아시아 100년>전의 일본 작품으로 일본 리자와 고타로 컬렉션의 작품.
3 1870~1880년 사이 아퐁라이가 촬영한 ‘가마를 탄 영국인’.


올해의 주제인 ‘내일의 기억’의 의미도 이 흐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반짝이고 있는 찰나는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사진가가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할 때, 예민한 신경은 그 장면이 잉태한 미래를 감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진가는 그 시대에 만주에 첫 이주한 한민족을, 고색창연한 경복궁을 필름에 담으며 이미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흔한 과거’라 치부하는 장면 속에서 꿈을 발견한다.
“현대 사진전의 일부 작품은 작가의 주관과 콘셉트가 강하게 실려 있어서 다소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뿌리를 기록한 사진들은 보는 순간 아련한 마음이 들 테지요. 특히 어린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시각 이미지를 통해 감성에 쉽게 접속하는 요즘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생생하고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겁니다.”


4 대만의 숨겨진 작가 장조당의 작품 ‘무대 뒤’(1974).
5 <변해가는 북한 풍경>전에 전시되는 일본 작가 야니스 콘토의 작품.


그리고 작가 구본창의 감성이 녹아난 전시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한·중·일 삼국의 사진 전시 중 가장 큰 행사일 것이다. 사진 예술이 발달한 일본은 사실 굳이 포토 페어를 열지 않더라도 일찌감치 해외 전시회에 초청되곤 했고, 유럽의 웬만한 대형 서점에 일본 사진집이 진열되어 있다. 중국 역시 요즘 현대 미술이 전 세계의 집중 조망을 받으면서 해외 관람객들이 중국의 전시장을 찾아가고 있다. “외국 서점에 가보면 그 나라의 정체성을 시각 이미지로 잡아낸 개성 있는 사진집이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한국을 방문한 외국 작가들이 어디에 가면 한국을 사진으로 잘 표현한 책자를 구할 수 있느냐 묻는데 그때마다 제가 대답할 길이 없더군요. 사진 전문 책방도 없고요.” 그래서 구본창 씨는 우리나라야말로 감동적이고도 날카로운 기획력으로 아시아의 사진 예술을 조망하는 전시를 열어 해외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 <동북아시아 100년>전 외에도 그가 방점을 찍은 몇몇 전시가 있다. 요즘 한창 해외 작가들의 호기심을 끄는 지역인 북한의 1950년대부터 요즘까지의 풍경을 포착한 <변해가는 북한 풍경>전과 <숨겨진 4인>전이 그것이다. “특히 <숨겨진 4인>전은 동북아시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원로 작가들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입니다. 1930년대의 티베트를 다룬 중국의 장주벤, 제가 20여 년 전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반한 대만의 장조당, 여백의 미가 기가 막힌 일본의 쇼지 우에다, 그리고 1950년대의 우리나라를 서정적으로 순간 포착한 한영수 씨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이지요. 모두 시간과 세월의 흔적을 담은 작가들입니다. 일상이라는 ‘관성’에 묻혀버려 눈에 띄지 않는 장면이나 감성을 세밀하게 표현했지요.”
문득 기억 속 구본창 씨의 작품을 되불러본다. 작은 인화지를 실로 꿰매어 만든 인화지에 무용가의 몸을 담은 사진, 미세하게 금이 간 백자 표면을 포착한 사진, 아련하게 떠오른 달항아리 사진…. 그의 작품은 눈으로 보면서도 보지 못한 세계를 낯설게 묘사한다. ‘작가 구본창’의 감성이 ‘큐레이터 구본창’의 기획 어딘가에 드러나기 마련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동양의 보석 같은 원로 작가를 발굴한 그의 눈은 바로 ‘작가 구본창’의 눈이었다.

제2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엑스코, 대구문화예술회관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이 기간 동안 다섯 개의 큰 전시 외에 특별한 행사도 열린다. 이 중 <대구의 하루>는 사진 전공 학생, 고등학생 등 총 80여 명이 9월 19~20일 동안 대구의 일상을 기록한 작품 1백30여 점을 계명대학교 내극재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전시. 또한 <꿈꾸는 카메라>는 대구 영생 애육원 초등학생 30명이 카메라를 통해 꿈과 희망을 찾는 행사다. 문의 053-601-5052, www.dauguphoto.com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