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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인생에 주는 방학 결혼 안식 휴가] 성악가 손미선 씨 미뤄둔 꿈을 향해 달렸던 시간
노래를 사랑한 성악과 학생 손미선은 유학을 꿈꿨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꿈을 접었다. 하지만 접어뒀던 꿈은 마음 밖으로 삐져나왔다. 한이 될 것 같아, 잠시 가족을 뒤로하고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돌아온 그는 프리마돈나로 날개를 활짝 폈다.
10월 24일부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공연하는 성악가 손미선 씨. 그는 단국대학교 음대 교수이자 <아이다> <나비부인> 등 다수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아온 베테랑 소프라노이다. 화려한 치장을 한 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오늘의 그는 그러나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뻔했다. 남편과 아이를 뒤로하고 떠났던 이탈리아 유학, 그 2년 반의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결혼이 좀 일렀어요. 스물셋의 나이, 대학 졸업한 지 두 달 후였죠. 남편도, 시어머니도 너무 잘해주셔서 시집을 가면 참 좋겠구나 싶었어요. 유학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결혼해서 가라고 하셨죠. 하지만 결혼 후 금방 아이가 생기더군요. 유학의 꿈은 그냥 포기해야 했어요.” 대신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노래하고 싶은 열정을 달랬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성가대 연습을 나가면 노래하는 동안 다른 분들이 아이를 봐주고는 했다. 그렇게 꾸준히 노래하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좀 크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주변에서 그를 알던 사람들이 재능이 아까우니 노래를 해보라고 하나둘씩 권했고, 그도 조금씩 옛 열정이 되살아났다.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때는 아이들이랑 음악회를 보러 가도 내가 저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박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학을 가고 싶은데 가정주부인 내가 어찌 가겠나 하고 혼자 속상해했고요. 그러다가 가까이 아는 분의 인생이 돌연 바뀐 경우가 있었어요. MBC 기자로 iMBC 사장까지 지냈던 조정민 씨가 뒤늦게 신학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가신 일이 있었어요. 돌아와서 그는 목사가 되었죠. 그게 자극이 됐어요. 나도 나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도 많이 하고, 작정기도로 40일 동안 새벽기도도 했죠. 그러다가 어렵게 남편과 시댁에 말을 꺼냈어요.”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돌아온 대답은 한번 해보라는 것. 특히 시어머니의 허락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멋쟁이 시어머니는 자신도 성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했다가 포기하셨던 분. 어쩌면 그래서 자신을 더 잘 이해해주셨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탈리아로 날아간 그는 1997년부터 2년 반에 걸쳐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살았다. 한나절만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마음 허전한 아이들인데 몇 달씩 엄마가 없으니 오죽 힘들었을까. 아이들을 최대한 배려해 되도록 아이들 방학에 맞추어 이탈리아에 가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했던 시간 눈에 밟히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도착한 이탈리아 남부, 그곳은 멋졌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꿈꾸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친근하고 따뜻한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말이 서툰 손미선 씨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 푸근하고 서민적인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소탈하게 있다가도, 조그만 광장 음악회라도 있을라치면 정장을 반듯하게 갖춰 입고 공연을 보러 가는 모습이 얼마나 여유롭고 멋있었는지 모른다.

(왼쪽) 교수로 재직 중인 단국대 학교에서 예술대학 뮤지컬 학과 학생들의 수업을 마친 후의 그를 만났다.


1 강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선물해준 그를 빼닮은 피규어 인형. 
2 이탈리아에 머물던 시절, 공연 후 꽃다발을 받고서 찍은 사진. 열정에 가득 찬 그의 생기가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3 과감하게 떠난 이탈리아 유학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오페라 연습하고 연습 후에는 동료들과 뒤풀이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도저히 못 가질 것만 같았던 시간을 가져서, 더 열정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남편에게 무슨 생각으로 날 보내줬냐고 물어봤어요. 보내주지 않으면 한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좀 하다가 힘들다고 돌아올 줄 알았다고, 끝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요.”
그가 결혼의 임무를 잠시 쉬었던 2년 반의 시간은, 그에게 음악과 무대를 선물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엄마와 아내의 빈자리를 이해해준 가족에게 제일 감사하다. 무엇보다 남편의 외조가 가장 컸다. 가까이 있을 때는 잘 몰랐던 가족의 소중하고 귀함을 마음 깊이 알게 되었고, 가족이 그만큼 애틋해졌다. 지금도 가족들은 그의 제일 든든한 지원군이다. 오페라 공연이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부터 아이들까지 가족 모두 함께 그의 공연을 보러 온다. 몇 달 동안 고생해서 연습한 무대 위의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가끔 형부는 오페라에서 사랑하는 장면을 보고 남편에게 “오 서방, 괜찮아?” 묻기도 한다. 워낙에 점잖은 성격의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지만. 어렸을 때는 엄마의 빈자리를 불평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결혼 생활 20여 년, 아이들이 장성한 지금은 남편이 휴가를 갖고 싶다고, 자신도 가족 신경 쓰지 않고 어디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가끔 말한다. 만약 그가 휴가를 떠나겠다면 손미선 씨는 기꺼이 시간을 주고 싶다.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 20년간 봉사해온 성실한 남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다. 지금은 6개월 전부터 전자기타에 빠져 그 얘기가 쏙 들어갔지만 말이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혼한 아내가, 남편이 혼자 어디로 떠나겠다니, 그것도 오랫동안. 섭섭할 수 있지요.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저 사람이 얼마나 원했으면 그럴까, 얼마나 어렵게 말을 꺼냈을까 이해해볼 수 있잖아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결혼 휴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라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죠.”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