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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현모양처의 행복 가정 경영법]스타일리스트 조희선 씨가 말하는 워킹 맘의 '살림 경영' 디자이너는 살림 컨설턴트, 가족 관계 디자이너입니다
고액권 화폐 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된 것을 두고 잡음이 많았습니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적 판타지 속에서 신화화한 ‘현모양처론’의 희생물이라고 여기저기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진 어머니면서 착한 아내’, 현모양처만큼 멋진 여성의 이름이 있을까요? 신사임당은 처가살이하는 남편을 위해 ‘남편 기 살리기’에 힘썼고 그의 능력이 발휘되도록 독려했습니다. 딸들에게도 글과 그림을 가르치고(16세기 예술가 매창이 그의 맏딸) 다른 자녀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율곡에 대한 사랑을 자제하는 어머니였습니다. 또 시와 서화 실력을 갈고 닦으며 뚜렷한 자아상을 만들어간 여성이었습니다. 명실상부한 ‘어진 어머니, 착한 아내’였지요. 세상이 변하면서 ‘현모양처’란 말은 봉건주의의 잔재가 되어 골방으로 쫓겨났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아내들이 재테크에 몰입된 ‘쩐모양처’로, 교육이라는 ‘가족 사업’의 대리자로 내몰리면서 현모양처의 뜻은 더 왜곡되고 말았지요. 이제, 아이를 기르고 살림을 꾸려가며 ‘허스프렌드husfriend’(남편의 친구로 사는 아내를 뜻하는 신조어)로 살아가는 일의 귀함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가정의 최고경영자로 살아가는 아내들을 만났습니다. ‘주부 상위시대’를 선언하는 또 하나의 사회인입니다. 직업이 있든 없든 그 경계는 무의미합니다. 新지아비, 현부양부賢父良夫가 대한민국 남성의 최고 가치로 인정되는 날, 신현모양처의 자리매김은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전업주부 출신’ 스타일리스트 조희선 씨는 ‘가족 관계 디자이너’의 꿈을 꾸고 있다. 가족이 살 집을 디자인하는 건 단지 인테리어 디자인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살림 컨설팅’이라 믿기 때문이다.디자이너가 오를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전당은 바로 ‘살림 컨설턴트’ ‘가족 관계 매니저’라는, 조희선 씨만의 꿈.

울울한 청년의 수림에 머물러도 되는 건지, 이제 중년의 조락에 발 담가야 하는지 서성이게 된 서른의 시절에 조희선 씨는 ‘주부는 가족을 책임지는 파수꾼’이라 생각했다. 또 ‘부엌은 주부의 사무실’이라 여기며 ‘현모양처’로 살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수입 자동차 딜러’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빛나는 과거, 일본디자인학교로 유학 가 삶을 또 한 번 ‘리모델링’하고 싶었던 열망 대신 한 뼘의 땅에 뿌리내리는 선택을 했다. 함께 솥단지를 걸고 함께 날마다 벌거벗고 자야 하는 결혼, 사내아이를 둘 낳고 정성으로 키우는 평균적인 가족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피터 드러커가 남긴 유명한 말 “성공한 경영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찾아내는 능력(do the right thing)’이다”처럼 그는 ‘그때’ ‘바로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찾아냈고 열심히 살았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두 살. 그는 유명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8년 전 직접 고친 자신의 집이 잡지에 소개되면서 스타일리스트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잡지나 광고 화보 스타일링부터 홈 드레싱(구조 변경 없이 벽지?바닥재와 같은 마감재, 가구, 조명 등으로 인테리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 인테리어 레노베이션(구조 변경, 철거를 통해 인테리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 등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이라 이름 붙여진 그 무엇에 대한 열망, 숙제 같은 미련이 늘 있었지만, 아이가 자랄 때까지 바깥일 안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었어요. 우리 엄마도 일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학교 갔다 와서 빈집 문을 여는 아이의 맘을 알아요. 그래서 그 말에 수긍했죠. 아이들이 제법 자랐을 때 우연히 잡지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 횟수가 거듭되면서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죠.” 1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살던 그에게 삶을‘리모델링’해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한 건 살림하며 여행하며 찾아낸 ‘살림보감’ 덕분이었다. 20평대 전세 아파트에서 자기 소유로, 또 대출받아 40평대 집으로 옮겨가며 ‘살림 불리는 재미’를 체험한 그는 좁은 아파트가 ‘홈 드레싱’만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는 묘미를 깨닫게 됐다. 또 여행 마니아인 그는 전업주부 시절에도 전 세계
를 다니며 리빙 숍 정보를 취합하고 스크랩해왔다.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그 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리빙 잡지 서너 권을 탐독한 후 트렌드의 핵이 되는 매장을 돌아보는 것을 여행의 낙으로 삼았다. 그가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나라의 숍 정보는 호텔 프런트 직원을 붙들고 물어물어 찾아다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살림보감’은 그가 지금 ‘바로 해야 할 일’로 직행할 수 있는 터빈 엔진이 됐다.


(왼쪽)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일하는 엄마’ 조희선 씨는 부엌일하면서 아이와 눈 마주치며 대화하려고 바 형태의 싱크대를 만들었다.별도의 식당 공간이 있는데도, 가족이 모두 이곳에 모여 ‘둘러앉는’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 됐다. 그는 디자인으로 일상이 변화하는 이런 일을 ‘살림 컨설팅’ ‘가족 관계 매니지먼트’라고 표현한다.
(오른쪽) 수납공간이 부족한 20평형대 아파트에 수납 공간을 만들다 보면 오히려 집이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그는 틈새 공간에 디자인 수납장을 만들어 실용,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성공한 경영자의 두 번째 법칙처럼 그는 ‘지속적으로 실행하기’의 덕목도 지켰다. “엄마가 일할 수 있는 3대 조건이 아이의 도움, 남편의 도움, 그리고 근무 조건이래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준 가족이 있으니 전 운이 좋은 거죠. 일 때문에 한 달에 몇 번씩은 새벽 두세 시에 들어오는데도 ‘우리 엄마는 왜 그러지?’라고 불평하지 않아요. 남편도 원 없이 일해보라고 격려해주고요. 하긴, 얼마 전에 작은아들이 ‘내 소원은 엄마가 학교 와서 청소하는 거’라고 하대요.”
그가 아무리 일상의 변속 기어를 조절해왔다고 해도, 삶이란 본질적으로 파워 게임이란 진실이 남는다. “처음부터 일하는 아내였다면 공유와 협조, 분배의 역할도 지금과는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가정에 올인해 내조만 하는 아내를 봤던 남편은 지금 굉장히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음악과 같아요.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죠. 미안한 마음, 서운한 마음을 피해가며, 또 풀어가며 조율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죠. 하긴 나도 잘 못해요. 하하.”

조희선 씨가 찾아낸 또 한 가지 덕목은 문제의 본질을 단순화시키는 ‘고슴도치 콘셉트’. ‘고슴도치 콘셉트’대로 가정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 그는 ‘스태프’가 아닌 ‘파트너’ 개념의 젊은 스타일리스트를 키우고 있다. “그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면 난 일 잘하는 사람은 되지만 엄마 역할은 잘 못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내가 발로 뛰어야 하는 시간에 나와 일하는 친구들이 뛰어주니까 집안일도 조율할 수 있어요.”
이렇게 ‘살림보감’에서 끌어낸 지혜를 일로 연장하다 보니 그는 디자이너보다 ‘살림 컨설턴트’라는 호칭에 더 익숙하게 됐다. “공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육아, 살림, 남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에 대해 건설적으로 조언하는 친구가 됐죠. 예를 들어 멋쟁이 남편이라면 침실 한쪽에 과감히 가벽을 덧대 작은 쇼룸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러면 그 아내와 남편은 당분간 핑크빛 무드일걸요? 살림 컨설턴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 관계 매니저’가 아닐까요? 인테리어의 작은 변화로 가족 관계에 좀 더 훈기가 돈다면 전혀 과장된 이름이 아닐 것 같아요.”
어디든 집이 있는 풍경은 금방 구워낸 빵 같은 온기가 넘쳐나야 한다. ‘전업주부 출신’ 스타일리스트 조희선 씨의 꿈처럼 디자이너가 오를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전당은 바로 ‘살림 컨설턴트’ ‘가족 관계 매니저’가 아닐까. 일상의 사소한 부딪힘이나 삐그덕거림마저도 모두 다 곰삭혀 가족을 위한 집으로 만들어내는 그 일은 바로 가정 경영, 살림 경영의 또 다른 완성일 것이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