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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진가 김영수 씨 꽃 사진의 산뜻한 재발견
꽃 싫어하는 여자는 드물다. 그러니까 꽃을 담은 사진은 여성 관람객에게 웬만큼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동시에 흔한 소재이니만큼 지금까지 보아온 무수한 꽃 사진 속에 묻힐 위험도 그만큼 높다.

사진가 김영수 씨가 시장 한복판에 앉아 잠시 쉴 때 조수가 찍어준 사진. 그는 전국의 5일장을 돌며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을 촬영해 전시 <장을 보다>를 열었다.

12년 전 사진가 김영수 씨가 <행복> 9월호 표지 작품인 ‘맨드라미’를 촬영할 때도 이런 고민이 그를 괴롭혔다. 이 작품은 1996년에 구두 회사 에스콰이아의 VIP 고객을 위한 한정판 고급 달력을 제작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에서 광고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직후인 1986년부터 에스콰이아 패션 제품의 카탈로그 사진을 맡아온 그에게 패션 제품은 익숙한 소재였으나 꽃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디가 그리 예쁜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나 프로페셔널 사진가였던 그는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작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출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연말마다 들어오는 달력 중 이 달력이 집 안에서 제일 좋은 곳에 걸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1년 동안 벽에 붙어 있기만 하면 브랜드를 알리는 광고 효과가 엄청날 테니까요.” 소비자들, 그중 안주인들은 매년 들어오는 수많은 달력 중 예쁘지 않은 순서대로 버리지 않던가. 그러니까 이 달력은 주부들의 시선이 머문 지 5초 내에 존폐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이발소 그림’ 같은 평범한 꽃 사진이어서는 안 된다.

“꽃 사진의 콘셉트를 이렇게 정했어요.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당시 관상용 꽃은 대체로 꽃꽂이가 된 상태로 판매했는데, 그 정형성을 깨고 화기나 데커레이션을 최소한으로 한 꽃을 찍어봤지요. 더불어 한 달 내내 매일 보아도 지겹지 않아야 하니, 볼수록 정겹고 즐거운 느낌을 연출하기로 결정했지요.” 리서치가 끝났지만 아직도 숙제가 남았다. 평생 꽃을 사본 적이 없었던 이 남자, 어떤 꽃이 예쁜 건지 판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같은 종류의 꽃 중에서 좀 더 잘생긴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이게 예쁜가, 저게 예쁜가 하다가 플로리스트를 초빙했지요. 사진 작업을 할 때마다 오라고 할 수 없으니, 집중 과외를 받기로 한 거죠.” 무수한 꽃을 가지고 함께 실습한 끝에 그는 잘생긴 꽃을 찾는 법을 터득했다.

촬영에 들어가면 플로리스트나 스타일리스트 없이 그가 직접 꽃을 배열했다. 그의 스타일링을 보고 플로리스트는 생경하다며 웃곤 했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꽃꽂이 사진을 찍으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이 지점에서 그의 장점이 발휘되었다. 가령 요리로 치면 그는 재료 본연의 맛을 최고로 살리고 양념을 최소한으로 한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꽃 사진도 그랬다. 꽃 자체가 일단 아름답기 때문에 이 좋은 재료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양념(배경, 소품, 조명)을 티 나지 않게 더해서 촬영했다. 여기에 그가 여느 제품 광고 사진을 촬영하면서는 담을 수 없었던 여운을 보탰다. 평면적인 홀림이 아닌,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자기장 같은 감성 말이다. 그 결과 탄생한 ‘그림 같은’ 꽃 달력은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매년 동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꽃 사진을 시작으로 걷어내길 거듭한 끝에 작년 10월, 파인아트 사진가로 데뷔한 전시 <장을 보다>에서 재래시장에서 갓 건진 쪽파, 가지, 죽순 등에 재료 본연의 담박한 맛을 찾아낸 사진을 선보였다. 10년 전 간암세포와 싸우고자 마라톤에 매달린 끝에 몸에 근육만 남긴 그는, 이제 작품을 통해 단단한 근육을 드러낼 예정이다. 또 다른 레이스가 시작됐다.

1 ‘백합’(1996)
2 본지 9월호 표지 작품 ‘맨드라미’(1996)
3 ‘거베라’(1999)


* 사진가 김영수 씨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미국 브룩스 인스티튜트에서 포토 일러스트레이션을, 1984년 오하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 사진을 전공했다. 1986년부터 에스콰이아 등 유수 기업의 광고 카탈로그 사진을 촬영했으며 2007년 10월 성곡미술관에서 개인전 <장을 보다>를 열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